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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디자인 -1 [안티-스마트 디자인] 잠깐만! 쉬었다 갑시다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스마트뱅크, 스마트카, 스마트씽킹까지. 누군가 절실하게 “이제 그만!”을 외칠지라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만 같은 스마트 시대가 종종 숨통을 조여온다. 편리해졌다고는 하나 오히려 일상을 미친 듯이 바쁘게 만들어버린 이 똑똑한 기기로부터 잠깐이라도 도망칠 수 있을까? 세계 곳곳의 디자이너들이 고안한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디자인을 소개한다. 그들의 결과물은 똑똑하지는 않지만 몇 장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SNS 알림도, 메시지도, 사용자 밀착형 광고도 괴롭히지 않는 ‘오롯이 느린’ 시공간을 향유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느리고 진지하게 메커니즘 감상하기 로-테크 팩토리


스마트 시대를 더욱 스마트하게 살려면 복잡한 기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은 필수다. 그러나 멋진 프레임에 감춰진 구동 원리를 이해하려고 마음 먹는 순간, 주변에 널린 기기가 너무나도 많고 공학도가 아니라면 수박 겉핥기도 못할 만큼 어려운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하지만 스위스 로잔 예술대학교 학생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2014년 스위스 디자인 어워즈 기간에 선보인 <로-테크 팩토리Low-Tech Factory>에서는 말 그대로 하이테크가 아닌 로테크 방식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언뜻 보면 그 쓰임새를 절대 추측할 수 없는 6대의 기계는 각각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온전하게 보여준다. 그중 ‘스탬프(Stamp)’는 플라스틱 그물망을 날카로운 절단기가 달린 스탬프로 누르면 장식용 조명 갓을 만들어내는 재밌는 기계다. 또 흔들의자를 새롭게 해석한 ‘로킹 니트(Rocking-Knit)’는 앉은 사람이 앞뒤로 흔들거리면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그 동력으로 머리 위에서 니트 모자를 뜨도록 설계했다. 인간의 힘을 배제시켜버린 전자동 기계와 달리 ‘내가 쓸 것’, ‘내가 먹을 것’을 직접 만들며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가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사이트에 업로드된 영상을 보면 이해하기 한결 쉬울 것. 
(▷사이트 바로가기)


흔들의자가 앞뒤로 움직이는 동력을 활용해 니트 모자를 짜는 기계 ‘로킹 니트’. ©ECAL/Nicolas Genta 


플라스틱 그물망을 스탬프로 누르면 장식용 조명 갓을 만들어내는 아날로그 기계 ‘스탬프’.©ECAL/Nicolas Genta 

이기적인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다 오폰과 MP01

시도 때도 없이 충전해주어야 하고, 누군가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살펴야 하며, 쓸데없는 농담도 잠자코 들어줘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정보의 바다로 뛰어들 수 있게 도와줄 것 같던 문명의 이기가 가끔은 이기적으로 구는 연인만큼 성가시다. 맥락 없는 SNS 포스팅과 메신저에 없어지지 않는 숫자 1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의심과 싸움으로 괴로워했는가? 이러한 스마트폰의 폐해에서 단번에 벗어날 2가지 대안을 소개한다. 세르비아의 알터 에고 아키텍처(Alter Ego Architecture)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오폰(O Phone)과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이 스위스의 디자인 기반 기술 기업 푼크트(Punkt)와 함께 개발한 MP01이다. 공통점을 먼저 설명하자면 스마트폰의 기능을 모조리 없애고 오로지 전화와 문자 기능만 남겼는데 그럼에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 물론 스마트폰의 간섭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함도 있지만 디자인이 참 멋지다. 오폰은 3D 프린터로 깔끔하게 프린팅한 본체에 아마존 킨들에 사용하는 E-잉크를 사용한다. 신용카드 사이즈의 오폰에는 어떤 글자도 없이 심벌과 숫자만 새겨 넣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언어 장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대표 주자인 재스퍼 모리슨도 장식적인 요소를 과감히 없애고 단순하지만 우아하게 MP01을 디자인했다. 제품을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과 알맞은 크기도 세심히 고려했다. MP01은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유럽 시장에 첫선을 보였으며 현재는 GMS 기반의 이동통신 기술을 쓰는 유럽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www.alterego.rs, www.punkt.ch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MP01. ©Punkt


E-잉크를 사용해 심플하게 디자인한 오폰. ©Alter Ego Architecture

이 시대의 노모포비아를 위한 의자 오프라인 체어

노모포비아(nomophobia)는 스마트폰이 없을 때 초조하거나 불안한 증상을 일컫는 말로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준말이다. 영국의 드몽포르 대학교에서 제품ㆍ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폴란드의 젊은 디자이너 아가타 노바크(Agata Nowak)가 디자인한 오프라인 체어(Offline Chair)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노모포비아가 돼버린 사람을 위한 의자다. 과잉 연결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오프라인 체어는 그 이름만으로도 굉장한 휴식을 기대하게 만든다. 오프라인 체어의 측면에 달린 오프라인 포켓에 스마트폰을 넣으면 와이파이와 통화 신호가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부드러운 패브릭 소재로 만들어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도와주며, 등받이는 머리 위까지 높이 올라와 외부 소음을 막아준다. 붐비는 사무실에서, 혹은 복잡한 카페에서 오프라인 체어는 아늑한 휴식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없는 자유로운 순간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준다. agatanowakdesign.com


폴란드의 신진 디자이너 아가타 노바크가 자신이 디자인한 오프라인 체어에 앉아 있다. ©Adam Markowski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라면서요 트란퀼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스마트폰 때문에 직장인들이 일주일에 11시간 더 일한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스마트폰의 오락적인 기능이 해야 할 일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 공과 사 구분 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 때문에 정작 꼭 해야 할 일을 집중력 있게 할 수 없다. 이에 사용자가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디자이너 아비드 카담(Avid Kadam), 루야 아크욜(Ruya Akyol), 줄스 맥거넌 & 용민 왕(Jules McGannon & Yong-Ming Wang)이 함께 나서 조명 ‘트란퀼로(Tranquillo)’를 디자인했다. 작동 원리는 이렇다. 이 제품의 받침대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으면 조명이 켜지면서 폰은 자동으로 방해 금지 모드로 전환된다. 그리고 본체 프레임에서 조명 부분만 분리해 내려놓으면 방해 금지 모드의 핸드폰이라도 충전이 가능하다. 물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스마트폰을 재활성화할 수 있지만 사용자에게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인지시키는 것이 트란퀼로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악보를 볼 때 조용하게 또는 가만히 연주하라는 이탈리아어 트란퀼로의 본래 뜻처럼 그 어떤 방해 없이 온전히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똑똑한 조명이다. www.fontanaarte.com 



스마트폰을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방해 금지 모드가 실행되면서 조명이 켜지는 ‘트란퀼로’. 

굴곡 있고 올록볼록한 것이 놀기 좋아요  스마트보이

게임 완승을 목표로 정신없이 눌러대다 보면 여지없이 망가져 온갖 짓을 해도 고칠 수 없던 그 버튼, 추억의 아날로그 버튼이 달린 8비트 그래픽의 게임보이를 추억한다. 매끈한 고화질 4K 화면 속의 터치 버튼은 ‘동키콩’, ‘젤다의 전설’, ‘슈퍼 마리오 랜드’ 같은 고전 게임의 맛을 살려주지 못한다. 전 세대를 아우르며 인류의 모범이 되어온 고전 문학처럼, 언제라도 하고 싶어지는 고전 게임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해 미국 하이퍼킨(Hyperkin)사가 스마트보이(Smartboy)를 디자인했다. 스마트보이는 그 똑똑한 기능의 스마트폰을 한낱 디스플레이로 전락시킨다. 

스마트보이에 핸드폰을 끼우고, 원하는 게임 팩을 뒷부분에 삽입하면 1990년대를 풍미한 게임보이와 언제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다. 스마트보이를 설계하고 디자인한 하이퍼킨의 개발팀은 다소 묵직한 목적을 밝혔다.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에뮬레이션(emulation)·인디 게임 신에서 활동하는 개발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스마트보이를 만들었다. 스마트보이가 현재의 게임 산업과 20년 전부터 근근이 생계를 이어오고 있는 레트로 게임 시장 사이의 간극을 잇는 다리가 되길 바란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운받을 수 있는 모바일 게임보다 스마트보이의 게임이 다소 번거롭고 유치할지언정 존재 이유만큼은 똑똑하지 않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안드로이드폰 전용이라는 것. www.hyperkin.com 




스마트폰을 장착한 하이퍼킨의 ‘스마트보이’. ©HYPERKIN

※ 본 기사는 9월 22일 ‘네이버 디자인’에 소개되었으며 ‘디자인프레스’ 공식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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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백가경 객원 기자, 디자인 정명진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