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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에치오 만치니 교수 특별 인터뷰 Stand Up! Democracy
19대 대선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선거가 결승선이 아닌 출발점이란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 번 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과연 민주주의를 위해 디자인과 디자이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운동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서라(Stand Up for Democracy, 이하 SUD)’에서 어쩌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밀라노 공과대학의 에치오 만치니(Ezio Manzini) 교수와 일리노이 대학교 시카고 캠퍼스의 빅터 마골린(Victor Margolin) 교수는 세계 곳곳의 디자인 커뮤니티에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동참하고 자발적인 행사를 열어주길 요청하는 오픈 레터를 발송했다. 겨우 걸음마 단계의 운동이긴 하지만, 그동안 별개의 것처럼 여겨졌던 디자인과 정치가 동반자로 설 수 있음을 역설한다는 면에서 분명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월간 <디자인>은 이 운동을 기획한 에치오 만치니 교수와 특별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디자이너의 책무와 기회를 모색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서라’ 로고.

어떻게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됐나?
빅터와 나는 30년 전에 처음 만났다. 그 후로 세계 곳곳에서 우리 삶의 궤도가 몇 차례 바뀌었다. 최근 우리는 2017년 3월 초 시카고에서 만나, 국제 정세에 대해 서로 같은 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디자인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서 탈민주화 과정으로 보이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는 점에 실망했다. 이렇게 해서 디자인 커뮤니티를 향한 우리의 오픈 레터가 탄생했다.

지난 3월 세계 곳곳의 디자인 커뮤니티에 오픈 레터를 발송했다. 그 이후 활동에 얼마만큼 진척이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모르겠다. 매우 개방적인 계획이고, 우리가 통제를 하지도 않으며, 아직 시작 단계다. 우리는 친구와 동료 40명에게, 오픈 레터의 정신에 공감한다면 개인적 소견이 담긴 오픈 레터(질의서)를 쓰고, 행사를 조직해서 그 질의서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하며, 다른 친구와 동료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이 활동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라고 했다. 8주 뒤 처음으로 질의서를 쓴 집단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우리의 제안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눈덩이 효과가 시작됐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 지켜보자.

솔직히 그 오픈 레터를 읽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내려져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민주주의는 문화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다. 문맥에 따라 의미, 해석, 정치적 영향력이 달라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운동의 기획자로서 의식적으로 민주주의의 정의를 한정 짓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이 오픈 레터를 촉매 삼아 토론을 시작하도록 고취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목소리를 내고 토론을 시작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오픈 레터는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성명서 같은 것이 아니다. 오픈 레터의 목적은 행동과 대화를 촉발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성공한다면, 그에 따른 토론은 우리 계획에 두 번째로 긍정적인 결과물을 낳을 것이다. ‘행동을 촉발시키기 위한 다양한 대화가 보장되는 환경’ 역시 민주주의의 여러 정의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나. 우리가 하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에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개인적인 생각을 먼저 밝혀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에, 현재 닥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현대화된 참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나는 이를 ‘협동적, 디자인 기반 민주주의(collaborative, design-based democracy)’라고 부른다. 네트워크와 연결성의 시대에 민주주의란 결정하고 행동하기 위한 힘이 널리 퍼져 있는 환경을 뜻한다. 또한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의도한 결과를 얻기 위해 행동하는 데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과 권리가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민주화 과정은 다음의 목표를 지닌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서 행동을 위한 많은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잠재력을 높이고, 사람들이 다양한 체계에서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기회를 늘리며,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실질적인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확장하고, 대화에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 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협동적 민주주의는 디자인을 기반에 두어야 한다. 협동을 통해 결과를 얻으려면 호의적인 환경, 지원 시스템, 전용 방법론, 촉매 작용을 일으키는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이 모든 요소는 디자인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민주화 과정에는 분산된 디자인 역량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려면 디자인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디자인이 만나야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해 인권, 기본적 자유, 개인 발전을 위한 기회의 영역을 향상시킬 방안을 조사하는 데에서 민주주의 과정과 디자인 과정이 만나야 한다. 그 배경에는

민주주의란 단순히 투표하는 것 이상의 개념이며, 디자인은 실무만이 아니라 문화이고, 디자인 문화는 디자인 커뮤니티 내부의 대화로 이루어진 그물망에서 생겨난 가치 체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디자인이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픈 레터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여러 영역의 디자인 전문가들이 민주주의적 콘텐츠를 통해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제안했다.

민주주의의 디자인: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간 행동의 틀과 규제를 담당하는 구조적 요소를 다룬다. 정부, 관료, 법원, 정권 등의 기관과 법, 규제, 규칙, 의정서 같은 절차에 중점을 둔다.
민주주의를 위한 디자인: 시민들이 심의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늘린다. 투명성과 심의 방법에 중점을 둔다.
민주주의로서의 디자인: 다양한 이들이 함께 모여 민주적으로 협력하며 현재와 미래를 열어갈 무대를 만든다. 대중 사이에 디자이너가 참여해 그들의 삶 속에 드러난 여러 측면과 과정을 공동으로 디자인한다.
민주주의에서의 디자인: 민주주의의 목표에 반응하는 모든 구체적인 디자인 계획을 일컫는다. 인권, 음식, 주거지, 보건, 교육에 대한 접근과 같은 기본적 자유, 더 광범위하게는 탄력적이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다.

그동안 정치 분야에서 디자인의 역할과 기능이 과소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
실제 사람들의 일상에 디자인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람들이(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일반적으로 이 사실이 잘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는 정치가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선택을 내리면서,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사람들은 사회 기술 체계의 발전에 기여한다. 그리고 이는 물론 정치 행동이다. 나는 일상의 정치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바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재건할지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미시적인 수준의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 재생을 위한 유일한 전략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잠재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행동 방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떠오르는 21세기의 디자인을 고려한다면 디자인이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디자인 이론가이자 그리피스 대학교의 토니 프라이(Tony Fry) 교수는 저서 <정치로서의 디자인>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이 이제 한계에 부딪혔으며, 디자인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고안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그의 입장에 반대한다. 내게 민주주의는 지난 몇 세기 동안 부상한 몇 안 되는 좋은 개념 중 하나다. 물론 지금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이 위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속 가능성과 행복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저에 깔린 핵심 개념은 유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다양성을 존중할 뿐 아니라 이를 역동성과 생명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간주하고, 양성하고, 보호하는 정치 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탄력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정치 제도다. 다양성과 중복이 모든 회복력 있는 체제가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정의할 때, 민주주의는 사회의 회복력을 보장하는 유일한 정치 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위험한 시기에, 이는 우리가 지켜내기 위해 반드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가?
우리는 6개월간 지속되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은 주요 행사를 열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프로그램 효과를 증폭시킨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어떤 사람과 집단이 무엇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무엇을 공유할지에 대한 그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달려 있다. 이런 과정에서 몇 가지 부수적인 프로젝트도 등장할 것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밀라노 공과대학교 디자인학과 소속의 세 연구실(디자인 정책 연구실, 덴시티 디자인Density Design 연구실, DESIS* 연구실)에 있는 동료들이 DDP(Democracy Design Platform, 민주주의 디자인 플랫폼)라는 이름의 디지털 플랫폼을 제안했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의 성명과 개최 예정 행사를 수집, 분류, 열람할 수 있다. 이제 완성된 플랫폼을 www.democracy-design.org에서 방문할 수 있다. 여러분이 계획 중인 아이디어와 행사가 있다면 방문해서 공유하길 바란다. 우리는 오픈 레터 전파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DDP를 활용해 활동 중에 생겨나는 모든 선언과 행사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또한 지금부터 2017년 10월까지의 주요 계획 지침을 만들고 있다. 중요 행사를 조직하는 사람들에게 SUD 계획을 포함시키고 관련 주제에 대해 토론할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다는 아이디어다.

이런 식의 큰 행사가 이미 한 번 개최되었다. 로마에서 열린 EAD(European Academy of Design)의 ‘디자인 포 넥스트(Design for Next)’ 콘퍼런스에서 주최 측이 행사 시작일인 4월 12일에 SUD를 위한 토론 시간을 마련했다. 향후 행사에 관해서도 몇 가지 가능성을 논의 중이며 두 가지 중요한 행사가 이미 확정되었다. 하나는 5월 말에 덴마크 콜딩시에서 열리는 큐물러스(Cumulus) 콘퍼런스이고, 다른 하나는 2017년 10월에 토리노에서 열리는 WDO(세계디자인기구) 콘퍼런스이다.

*사회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디자인.

현재 한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정국에 처해 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런 혼란이 바로잡히길 희망한다. 이런 한국의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조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그저 다른 이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위기에는 기회가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민주주의의 위기 역시 근본적인 전진을 꾀할 수 있는 잠재력이 될 수 있다. 현재 직면한 민주주의의 위기에는 사회적 혁신의 전도유망한 물결 역시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협동적 프로젝트의 실행 가능성과 분산된 공동 디자인 활동의 힘을 보여주는 사회적 혁신은 민주주의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해준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각자 삶의 프로젝트를 정의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기회를 늘려줄 것이다. 참여를 쉽고 가벼우며 탄력적으로 만든다는 목표 아래 우리는 최고의 공동 디자인 방법론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참여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길 제안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디자이너를 위한 행동 영역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에치오 만치니 지속 가능성을 위한 디자인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공대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며 ‘지속 가능성을 위한 디자인 혁신(Design Innovation for Sustainability)’ 연구실을 이끌었고 서비스 디자인 센터(Centro Design Dei Servizi) 코디네이터를 역임했다. 지난해 황금 콤파스 (Compasso Doro)상을 수상했다.




백준상 유니스트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조교수이자 DESIS 연구실의 디렉터이다. KAIST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 UX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밀라노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빈 공대 적정기술연구소와 사회 혁신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며 지속 가능한 제품-서비스 시스템 및 마을 기업 관련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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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인터뷰: 백준상(울산과학기술대 교수), 정리: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