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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상상력의 쾌거

은은한 조명 아래 일렬로 길게 천장을 찌를 듯이 엄숙히 서 있는 페이터테이너 뮤지엄 기둥 아래서 나는 처음 로마의 바티칸 성당 광장 앞에 섰을 때 느꼈던 전율을 느꼈다. 단순히 열주 방식의 기둥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력과 열정이 사물을 이렇게도 변화시킬 수 있구나 하는 경외감에서 더욱 그러했다. 어찌 보면 예술과는 가장 거리가 있을 법한 컨테이너가 정렬되어 가장 멋있는 뮤지엄으로 변하고, 가능 여부를 떠나서 상상치도 못했던 종이 기둥이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현실은 감동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페이퍼 갤러리에서는 ‘여자를 밝히다’를 주제로 유관순, 황진이, 명성황후 등 우리 역사 속의 대표적 여성들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재조명하여 해석했다. 당대에 선구자적 삶을 살았던 여인들을 통해 21세기에 필요한 창의성을 일깨우자는 뜻에서 전시되었다는 설명이다.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해석된, 시대를 앞서 살았던 여인들 앞에서 걸음을 멈추 고 나의 위치를 되돌아보면서 많은 상상 속에 빠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관람객이 ‘여자를 밝힌다’ 해서 자기만의 야릇한 상상을 갖고 왔다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크게 뜨고 사념하는 모습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들어진 페이퍼 갤러리가 선사한 또 하나의 선물이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컨테이너 갤러리는 또 다른 주제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 ‘브랜드를 밝히다’를 주제로 기업 브랜드와 예술이 만난 것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된 아트 마케팅으로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예술과 접목해 표현하는 새로운 장르이다. 애니콜,KTF, NAVER, 백세주 등 국내 최고의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각각 한 팀을 이루어 30여 개의 콘테이너에 전시되었다. 창작이라는 예술 행위에 자기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해부되고 그것이 미칠 여러 영향들을 세밀하게 계산하며 초조했을 기업 관계자와 전시된 작품들을 안내하면서 만족해하거나 불만을 터트리는 회사 경영진을 떠올리며 나 혼자 웃음 지어보았다. 또 이것이 앞으로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종래 단순히 홍보 영역에 머물던 관심이 예술로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론을 쉽게 할 수 있다. 앞으로는 기업 스스로 자기 회사의 이미지를 예술의 대상으로 올려놓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기업의 상업적 목적으로 예술이 활용될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는 항상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또 발전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며 고통 없는 발전은 없는 것이다.

갤러리 관람을 마치고 뮤지엄 안의 카페 드 베르를 찾았다. 녹색의 카페라는 이름처럼 푸른 하늘과 파란 잔디밭, 그리고 원래 있던 거대한 조각을 그대로 활용하여 만들어진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에 다시 한번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디자인하우스의 황태영 국장을 급히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페이퍼테이너가 던지는 교훈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첫째, 상상은 의도되어야 한다. 디자인 하우스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통렬하고 절박한 고민 속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점이다. 둘째, 일반 시민은 물론 뮤지엄 관계자나 예술인 등 전문인들의 상상력 베이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히말리아를 정복하려면 베이스캠프를 정상 가까이 설치할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페이퍼테이너는 서울의 상상력 베이스를 한 단계 올려놓음으로써 서울의 예술, 나아가 대한민국의 예술의 혁신을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셋째,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 문화예술 건축물은 가급적 규모가 크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건축자재로 지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즉 페이퍼테이너는 저렴한 재료를 활용하더 라도 분위기 있는 고급 문화 예술을 선보일 수 있고 또 해체하여 재사용할 수 있는 환경 건축물로 감동과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넷째, 서울에 부족한 문화 예술 공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었다. 이번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사례는 건축비는 약 1/5 수준에 언제든 해체하고 이동하여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장점은 반드시 제한된 공간 이외에 공원, 고궁,한강변, 일반 공터 등 어느 장소이든 필요한 기간 중에 설치해서 활용 가능케하는 것이다.
당장 나의 머리에는 내년 하이 서울 패스티벌 때 페이퍼 컨테이너를 한강 둔치에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다. 또 아직 복원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경희궁을 활용하는 데 페이퍼 컨테이너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경희궁은 고궁 속 공연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나 고궁의 분위기를 망치고 복원될 부지라는 점에서 토목공사가 허용되지 않아 사실상 방치 상태다. 그러나 종이를 활용하여 고궁의 공연장과 전시장을 건축해서 활용하면 세계적 명소가 되지 않을까.

21세기는 몽상사회라고 한다. 즉 인류는 산업사회를 거쳐 이제는 정보사회를 넘어서 몽상사회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몽상사회는 문화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이 그 요체이다. 이번 디자인하우스의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상상력의 쾌거라고 생각한다. 제2, 제3의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이 출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일 서울시 문화국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사이타마 정책과학대학원에서 석사,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협력담당관, 파리주재관 등을 거쳐 현재 서울시 경쟁력강화기획 본부장, 제3정책보좌관, 문화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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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