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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작업실 감나무
서교동 작업실엔 감나무가 하나 심어져 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기념으로 아이가 벌벌 기어 다닐 그 무렵, 식목일에 심은 감나무다. 지금 이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는 감나무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저 가을에 감을 따 먹을 수 있다 정도로 안다. 올해는 정말로 이상기후다. 봄도 아주 짧았고, 가을도 아주 짧다. 여름은 왜 그리 지랄 같았는지 그 기상이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서교동에 감나무를 심을 때만 해도 서교동은 주택가라 나무가 많은 동네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 작업실 감나무가 상당히 돋보일 정도로 나무가 사라졌다. 대신 나무가 있던 자리에 빽빽하게 연립주택이 들어섰다.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사람만 늘었으니 이상기후가 될 만도 하다. 이 감나무가 올해 보여준 면면은 나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짧았던 봄이 갈 무렵 감꽃이 피었다. 벚꽃이나 라일락보다 조금 늦게 피기 시작하는 감꽃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벚꽃은 필 때 아주 요란하다. 그해 이파리가 나기도 전에 아주 성급히 꽃을 피운다. 사람들도 그 분위기에 취해 벚꽃축제를 연다. 벚꽃축제가 열리는 동안 사람들은 밤새워 흥청망청이다. 아침이면 꽃향기 대신 음식물 쓰레기와 먹다 버린 막걸리 냄새만 진동한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라일락이 더 좋다. 그 냄새가 좋다. 라일락 꽃이 필 무렵엔 온 동네가 라일락 향으로 진동을 한다. 지금은 나무가 거의 사라지고 연립주택 촌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엔 라일락의 은은한 향을 느끼며 여름을 맞았다. 감꽃은 하얗게 핀다. 라일락꽃 같은 향도 없다. 그저 작고 하얗게 핀다. 이 감꽃이 필 무렵 초여름 비가 온다. 그래서 감나무 아래엔 감꽃이 지저분할 정도로 떨어진다. 아니 비가 오지 않아도 바람만 좀 분다 싶으면 아침마다 감나무 아래를 쓸어야 한다. 벚꽃 영상을 그리도 잘 만든다는 어떤 일본 감독도 이 감나무 꽃은 어쩌지 못할 것이다. 감나무는 정말 너무도 많은 꽃을 피운다. 그러고도 벚꽃이나 라일락과는 달리 열매를 맺는다. 너무도 지저분하게 많이도 열매를 맺는다. 바닥에 떨어진 감꽃 쓸기에 지쳐갈 무렵 이제 감나무는 어린 열매를 바닥에 뿌린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으려고 이리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예년부터 이런 경험을 충분히 한 작업실 사람들은 올봄 감나무에 거름을 충분히 주었다. 그럼에도 어린 감나무 열매는 사정없이 떨어졌다. 언제부턴가는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로 큰 감도 떨어졌다. 나는 감나무 밑에 차를 세워두는데, 주택가 골목이 조용해지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자동차 지붕 위로 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쿵쿵 제법 큰 소리를 낸다. 올해는 봄에 주었던 거름 덕인지 유난히 그 소리가 컸다는 느낌이다.

동네 사람들은 감나무에 감이 익어갈 즈음이 되면 몰래 따 가기도 한다. 밤에 지나가다 예뻐서 따 가기도 하고, 호기심에도 따 가기도 한다. 그래서 감이 빨갛게 익을 무렵이면 손에 닿을 정도 높이에 열린 감은 동네 사람들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누구도 감을 따 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감나무에 감은 정말 많이도 달렸다. 내가 감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감이 머리에 부딪칠 정도로. 동네 사람들은 감나무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른다. 그냥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며 얼마간 서서 감상을 한다. 감나무 가지가 열매 무게를 못 이기고 축축 늘어지기에 익을 감을 따내려고 사다리를 감나무 밑에 대자, 지나가던 동네 사람 하나가 그랬다. 보기 좋은데 얼마간 더 놔두어달라고. 정말로 보기가 좋았다. 빽빽이 들어선 집들 사이에서 커다란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감나무는 정말로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되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거라는 이야기가 매스컴을 뒤덮는다. 북에서 핵 실험을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아파트 값은 오른다. 이전부터 사람들은 작업실을 팔아서 아파트를 사지 않는 나에게 바보라고 했다. 1년이 멀다 하고 때가 되면 억대로 뛰는 아파트를 강 건너 물 구경 하듯 놔두고 몇년이 지나도 집값이 거의 제자리인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보 맞다. 내 주변에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작업실을 팔든지, 아니면 지금 그 집을 부수고 건물을 올리든지, 아니면 팔아서 아파트라도 사두라는 현실적인 친구와 감나무에 감이 달린 모습이 너무 좋다는 친구 두 종류가 있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에 생각을 해볼 요량이다.

나는 지금까지 디자인을 하며 살아왔다. 디자인은 상업적일 수도 문화적일 수도 있다. 1년에 책 한 권 살 생각 없고, 연극 한 번 볼 생각 없이 그저 술집만 드나드는 나에게 올해 감나무는 억대의 부가가치를 주는 아파트
의 경제적 효과가 아닌 무언가를 주었다. 그러나 부족한 내 인격은 감나무의 그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 지금 나는 단풍이 들어 누렇게 변해 떨어지는 감나무 잎을 보고 있다. 감잎이 떨어질 때마다 빨간 감이 더 탐스럽게 보인다. 우선 감을 따서 동네 사람들에게 한두 개씩이라도 나눠줘야지. 감나무 아래를 봄부터 부지런히 같이 쓸어주시던 옆집 아저씨도, 길건너 건물 꼭대기에 사는 건물 주인 아주머니에게도 몇 개 드려야지. 그리고 매일 아침 폐지를 수집하시는 할아버지에게도 드려야겠다. 그러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나의 디자인이 감나무 정도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하는지…

 

홍동원
홍익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독일 에센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다. <조선일보> 섹션 신문 <굿모닝 디지틀>과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의 신문 편집 디자인을 했다. 현재 글씨미디어 디자인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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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홍동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