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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뿌리로 만나는 공예와 디자인
공예인과 디자이너의 창조적 조우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매우 젊고 발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공예가’라는 이름은 상대적으로 왠지 늙다리 이미지를 풍긴다.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린 현장에서도 이러한 느낌은 그대로 적중하고 있었다.

디자인 페스티벌은 발랄한 젊은이들로 입구가 붐빈 반면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열린 공예박람회는 한적하면서 긴장감도 떨어져 있었다. 이 두 전시 공간은 입구뿐만 아니라 전시 방법과 컬러까지도 대비되는 듯했다. 그럼에도 통상적인 공예 전시회를 지켜본 이들은 확실히 다른 무엇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디자인 페스티벌의 젊은 기운이 슬쩍 넘쳐서 공예 전시회장으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찾지 않던 관람객들에게 우연히 마주친 의외의 핸섬한 공예품, 혹은 전통과의 조우가 제3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필자는 처음 이 전시회 기획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매우 성공적인 실험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그 이유는 오랜 전통을 가진 다른 공예 전시회에 본선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기억 때문이다. 공예 전람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관객을 젊게 만드는 방법이다.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도 쉽지 않고 특히 젊은이들의 외면이 매우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전시회를 함께 진행한다는 전시 구상은 매우 혁신적인 뛰어난 발상이면서도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하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 두 전시회는 절묘한 듀오 매칭이 아닐 수 없다. 관람 포인트는 많다.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가 훌륭한 공예 장인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얼마나 큰 시너지를 얻게 될 것인가는 차치하고라도 다양한 디자인의 본질, 물성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노하우가 거기 숨어 있다. 디자이너가 문화의 연속선상에 서 있지않으면 성공적으로 디자인할 수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왜일까? 윌리엄 모리스는 유럽 정신 문명의 한 축으로 중세의 고딕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따라서 세련된 우리의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디자인 모티브를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모리스의 시선으로 19세기 영국을 살피는 것은 의미가 있으리라.

윌리엄 모리스는 근대 디자인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요즘 우리가 구분 짓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장인정신의 소유자이자, 전통주의자이며 디자이너였다. 손으로 작업하는 것을 즐겼으며 공동체를 지향했다. 여러 명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즐겁게 일하는 것, 그 작업을 통해 얻는 성취의 기쁨을 그는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다. 즐겁게 일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좋은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섭렵하면서 동시에 직접 만들어내는 일에도 기꺼이 참여했다. 그가 회사를 세웠을 때 모두들 실패를 점쳤다. 그 회사의 구호는 너무도 이상적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대중들이 사용할 만한 가격으로 태피스트리, 스테인드글래스, 금속세공, 조각, 자수, 가구, 벽화와 벽 장식 등 모든 디자인 영역의 작품을 제작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의 업무 현황을 발표했다.

초기 단계에는 별 주문이 없었다. 그러나 곧 기회가 왔다. 1862년 사우스켄싱턴에서 박람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모리스의 공예품이 주목을 받았고 금메달을 수상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자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연 환경으로부터 모티브를 따와 과일 무늬와 격자 무늬, 데이지 무늬, 석류 무늬를 디자인한 것은 1862~64년이며 그는 점차 원숙한 경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1875년에 이르러 인체에 무해한 식물 염료를 실험하기 시작했는데 직물, 카펫, 태피스트리 등에 아름다운 염색 작품을 남겼으며 <예술을 위한 희망과 두려움>을 발간한다.

모리스는 말한다. “예술과 문화가 식탁의 나이프나 포크의 문제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예술의 뿌리라는 풍부한 토양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합리적인 생활의 참된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 할 일이다. 미적 자각과 창조, 눈에 보이는 참된 즐거움의 향수(享受), 이와 같은 일이 일용할 양식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누려야 할 생활이 아닌가. 이와 같은 생활은 어떤 사람에게도, 또 어떤 무리에게도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

놀랄 만한 논리와 실천으로 모리스는 세계의 젊은 예술인과 지성들을 사로잡았다. 예술공예운동은 영국에서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까지 꽃을 피운다. 예술공예운동은 근대화의 출발점에서 기계 생산의 전면 부정이라는 전근대적인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혼미하고 저속한 빅토리안 전성기를 누리던 건축계와 예술계 전반에 큰 영향을 주어 건축가를 비롯하여 예술에 관련된 사람들을 각성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리스는 이렇게 디자인과 공예가 하나의 줄기를 가진 지체(肢體)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김재규 앤티크 문화 예술 아카데미 대표
<유럽문화의 수수께끼>,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혹하는 유럽 도자기>의 저자. 공예대전 본선심사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이며 유럽에서 앤티크 딜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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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김재규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