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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훈장

책꽂이에는 표지가 까만 조그만 단행본 크기의 논문이 항상 같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나에겐 지나간 세월을 보상해주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도트 프린터로 하나하나 프린트한 탓에 자세히 보면 어느 한 장 비뚤지 않은 것이 없고, 어떤 것은 잉크가 살짝 번진 곳도 눈에 띈다. 지금 생각하면 인생의 꼭짓점처럼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IMF 시절의 어려움을 이기며 나름대로 만학의 정열과 정성을 쏟아 부었기에 그 애정은 깊을 수밖에 없다. 그 논문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옥탑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부뚜막에 얹어놓은 밥이 언제쯤 뜸이 들까 기다리듯 논문이 프린트가 되어 나오길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드디어 책으로 묶어서 학교에 제출하던 날,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구나 생각했었다. 내용이야 둘째 치더라도 그 어렵다는 영어로 논문을 써 냈다는 사실이 사뭇 기특했기에 더욱 그랬으리라.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 그것이 자신에게만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의 관심사는 한결같이 고생 많았다, 물가가 비싼데 어떻게 지냈냐는 것이었다. 작품은 눈에 띄는 것이니까 자세히 보았겠지만, 정작 내가 수고했다고 생각하는 논문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 이유가 영어 해독의 문제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가장 빛을 발했던 것은 교수 초빙 제출 서류로 필요했던 그때 뿐이었다. 유학이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든, 한국에서 다른 나라로 가든, 자기가 처한 환경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그 무엇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그 의미와 가치는 각각 다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다. 새로움에 목말라 자기 충전이나 자기 계발의 필요가 절대적인 경우도 있겠고, 주체할 수 없이 돈이 많아 관광 삼아 놀러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선진국 병에 걸린 현실 도피의 한 수단일 수도 있고, 교수직에 도전하기 위한 절대적인 방편이 되기도 한다.

갑작스레 일본으로 신혼여행 갔던 일이 생각난다. 대학원 논문을 더 이상 지연할 수 없는 초읽기에 몰린 터여서 신혼여행 일정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다소 어려운 주제를 정한 탓에 어디 눈 씻고 둘러보아도 참고할 만한 자료나 번역서도 변변치 못해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러던 신혼여행의 마지막 날, 힘들고 지쳐서 잠시 쉬자며 우연히 들르게 된 조그만 서점에서 논문의 주요 참고문헌이 될 만한 결정적인 자료를 찾게 되었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쁨에 겨웠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감생심 기회가 닿으면 유학을 꼭 가보리라 다짐했던 것도 그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학원에서의 논문이란 별 대수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요즈음같이 대학원이 보편화된 상황에선 더욱 그러할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논문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경우 자신의 관심사를 최대한 반영한 것이 논문의 주제가 되고 그것은 곧 향후 자신의 주요 전공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중의 평가야 어찌 됐든 논문의 내용에 대해선 신중하고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외국까지 나가서 학위 과정을 마친다는 것은 더 그럴는지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유학의 길을 선택하고 런던에 도착했을 때 너무도 놀랐던 것은 한국 학생들이 어느 정도 될 줄은 알았지만 한국학생회를 조직할 정도로 그렇게 많은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듣기로는 몇몇 디자인 관련 미국 학교 졸업생들은 국내 대학 동문회를 방불할 정도로 그 규모도 엄청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요즈음 신문지상에서 보면 석사 과정이 아닌 학부 과정부터 조기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이 엄청난 숫자의 학생들이 졸업해서 어디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디자인 분야에 국한해서 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이 몇천인지, 몇만인지, 아니면 몇십만에 이르는지 나는 정확한 숫자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도 알 수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러나 유학이란 무엇이 동기가 되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나이에 뻥 뚫린 공백을 두고서 자진해서 가장 소비적인 시기를 겪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면 정말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디자인은 이제 콘텐츠가 좌우하는 시대라고들 한다. 콘텐츠가 문제라면 내용으로나 의미로 나 그 엄청난 양으로 볼 때 유학을 다녀온 이들의 논문만큼 더 검증된 콘텐츠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유학 갔다 온 그 누구나 자기의 결과물에 대해 자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원하는 사람들만의 것이라도 한데 묶어서 데이터화하고 소개할 수만 있다면, 진정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이제 디자인계에도 단체나 협회, 학회 등이 제법 많다. 이런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유학 갔다 온 이들에게는 큰 대가를 치르고 다녀온 결과물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겠고, 나처럼 신혼여행지에서까지 골머리 앓는 사람들을 애초에 구제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언제까지 우리나라가 유학 수출국 1, 2위란 명예 아닌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 것인가?

이병주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영국 세인트 마틴즈에서 시각디자인 석사과정을 마쳤다. <아이매거진> 아트디렉터, 보빙사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세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이다. 번역서로 <경험디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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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