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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디자인에 관한 단상

디자인은 문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화 ‘환경’이다. 문화는 땅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내는 것이다. 문화는 자연이 아니라 인공이다. 인공이되 자연을 꿈꾸고 자연을 지향한다. 문화는 사람의 젖과 피를 먹고 큰다. 그러니 문화는 곧 사람이다. 사람은 문화를 키우고 문화는 사람을 키운다. 우리는 세계의 아주 다른 문화체계들 속에 산다. 디자인은 그 문화의 얼굴이다. 전위(前衛)다. 디자인이 전위에 서지 못하는 문화는 이미 쇠퇴한다. 그 문화를 숨쉬며 사는 사람들의 취향은 저속해지고 타락으로 떨어진다. 타락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헐뜯고 물어뜯으며 죄가 죄임을 알지 못한다.

디자인은 교양이다. 교양은 제 어리석음과 무지를 아는 것이다. 교양은 지식과 상관이 없지 않으나 지식이 곧 교양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교양은 그 앎에 단지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격의 전일함이다. 디자인은 밥이다. 정당한 수단으로 밥을 구해야 인격의 전일함에 머물 수 있다. 비굴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밥을 구할 때 사람은 누추해진다. 남이 이룬 창의성을 베끼는 것은 비굴하고 부당한 짓이다.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근친교배다. 근친교배는 열성인자들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첩경이다. 열성인자들이 반복 유전되면 그 종은 멸종한다. “이제 비극은 죽었다. 시도 비극과 함께 사라졌다. 서둘러라, 이 문드러진 앙상한 아류들아. 어서 저승으로 달려가라. 그곳에 가면 옛 거장들이 남겨놓은 빵부스러기를 배불리 먹게 될지도 모른다.”(니체, <비극의 탄생>)

디자인은 인격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인격에는 높음과 낮음이 있고, 맑음과 탁함이 있다. 청풍명월과 같은 인격은 그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으며 자유롭다. 이들은 누리고 즐기는 자유의 폭이크되 그게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굳이 돈과 출세를 피하지는 않으나 그것과 적당한 거리를 둔다. 그들은 세상에 본디 있는 것들, 이를테면 나무와 숲, 햇빛과 강물의 가치를 알고, 따라서 생태지향적인 사고를 한다. 좋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구한다.

디자인은 나무다. 어느 나무가 좋고 어느 나무가 좋지 않음이 없다. 나무들은 한데 어울려 숲을 이룬다. 모순의 두루 존재함이 세상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디자인은 그 수준이 높고 처짐이 없이 함께 간다. “나무가 있는데 푸른 잎에 자주빛 줄기, 검은 꽃에 누런 열매를 맺으며 이름을 건목(建木)이라고 한다. 키가 100길에 가지가 없으며, 위는 아홉 갈래로 꼬불꼬불 구부러져 있고 아래는 아홉 차례 뒤얽혀 서려 있다. (....) 태호(伏羲)가 하늘을 오르내렸고 황제가 가꾸고 지켰던 나무다.”(<산해경>)

디자인은 봄이다. 봄의 들판을 나가보면 기운이 생동하는 것을 느낀다. 봄은 음의 기운을 누르고 양의 기운을 북돋워 천지만물을 소생시킨다. 봄은 우주의 디자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디자인은 자연이다. 우주만물에 작용하는 근원의 힘을 동양에서는 도(道)라고 일컬었다. 노자는 “도가 만물을 생성하고, 덕은 만물을 양육한다. 그러므로 만물은 도를 존중하지 않음이 없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다.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김은 남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요, 언제나 스스로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만물을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게 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자라게 하면서도 주재하지 않는다. 이를 일러 높은 덕이라 한다.”(노자, <도덕경> 제51장)

디자인은 도덕이다. 달이 아니라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러나 달과 손가락은 위계관계에 포섭되어 있지 않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킨다고 그것이 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빚지만 그릇의 텅 빈 안이 바로 그릇의 쓰임새가 되는 것과 같다. “손가락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깨우치는 것은 손가락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깨우치는 것만못하다.”(<장자>, 齊物論)

디자인은 음악이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화창하게 하며 들뜬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좋은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며 요사한 것에 휘둘리지 않게 한다. 그러나 나라의 도덕이 타락하고 기강이 흐트러지면 음악이 먼저 알고 그 징조들을 드러낸다. 음률과 곡조들이 시끄러워지고 요사스러워진다. 그것을 듣는 자들의 마음 역시 음란과 사악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바름은 뒤집혀 기괴함으로 변하고 착함은 뒤집혀 요사스러움으로 변한다.” (노자, <도덕경> 제58장)

디자인은 시와 음악과 한 혈통이다. 훌륭한 디자이너들은 좋은 시집을 두루 읽고 좋은 음악을 날마다 듣는다. 그게 디자인 공부인 까닭이다. 그런 까닭에 시를 모르고 음악을 모르는 디자이너를 신뢰할 수가 없다. “섬세한 감각과 섬세한 취미를 가질 것. 강력하고 대담하며, 자유분방한 마음을 유지할 것. 침착한 노동자와 확고한 발걸음으로 인생을 짓밟을 것, 터무니없는 일을 당해도 마치 축제에 참가한 것처럼 즐길 것. 미지의 세계와 해양과, 인간과 신들을 기대하며 인생을 지켜볼 것. 마치 그 미지의 세계를 지키는 병사와 선원들이 잠시 동안의 휴식과 즐거움으로 피로를 잊는 것처럼, 혹은 이 찰나의 쾌락 속에 인간의 눈물과 진홍색 우수를 잊는 것처럼 음악에 귀를 기울일 것. 이 모든 것의 소유주가 바로 자신이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있을까.”(니체, <즐거운 지식>)

장석주 시인&문학비평가
최근에 지은 책으로 시집 <붉디붉은 호랑이>, 산문집 <느림과 비움>, 평론집 <풍경의 탄생><들뢰즈 카프카 김훈><장소의 탄생> 등이 있다. 경기도 남단에 있는 한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사는데, 농사는 짓지 않으며 주로 책읽기, 산책, 명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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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