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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디자인이 뭔데요? 왜 중요하죠? <황상민>

2007년 맥월드 전시장에서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소개했다. 멀티터치 터치스크린 형태의 산뜻한 디자인은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아이팟과 함께 애플의 또 다른 대박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 ‘아이폰’이 우리나라 LG전자가 지난해 말 발표한 ‘프라다폰’으로 불리는 ‘KE850’과 디자인이 흡사하다는 이야기가 유명 IT 사이트 인가제트닷컴(www.engadget.com)에 언급되었다. LG전자의 KE850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이것을 애플과 LG전자의 차이로 보아야 하나?

‘아이리버’로 유명한 MP3 플레이어 업체인 레인콤은 국내 부동의 1위 업체였다. ‘아이리버’는 대기업 제품보다 인기였다. 그런데 애플의 아이팟은 레인콤에게 재앙이 되었다. 비슷한 플레시 메모리형 MP3 플레이어지만 가격이 훨씬 싼 아이팟 나노의 등장은 아이리버의 입지를 순식간에 바꾸었다. 레인콤의 계속되는 성장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사례가 모토로라의 레이저폰이다. 핸드폰이 대중화된 초창기에 ‘스타텍’으로 우리나라 시장을 선점했지만 국내 업체에 밀려 거의 철수하다시피 했다가 레이저폰으로 성공적인 컴백을 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바로 핸드폰을 만들어 파는 회사의 시각이 아닌 핸드폰을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핸드폰에서 얻고자 하는 것,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토로라가 발견한 답은 바로이것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라도 분명한 멋진 느낌이다. 핸드폰의 기능은 전화 걸고 받는 데 편하면 충분하다. 들고 다니기 가벼워야 한다. 그러면서도 뭔가 멋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자기 표현 욕구에 부응하는, 한마디로 멋지고 매력적인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이런 선택을 오래 고민하면서도 결국은 1초도 안되는 시간에 결정한다. 모토로라는 핸드폰 만드는 과정을 과감히 바꾸었다. 디자인을 가장 핵심에 두고 소비자들을 멋있게 표현할 수 있게, 가장 ‘쌈박’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기술을 포장하는 디자인이 아닌 소비자의 구매심리와 행동을 그대로 잡을 수 있는 디자인을 구현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휴대폰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통하는 또는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가치를 찾아낸 것이었고, 그것을 제품 디자인 과정에 반영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모토로라를 핸드폰 시장에 다시 복귀시킨 레이저폰이었다.

위의 사례들은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애플의 혁신적인 디자인, 그리고 주력 제품 디자인의 강점과 개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레인콤, 소비자의 주된 욕구가 무엇인지를 제품에 그대로 반영한 레이저폰의 사례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LG전자의 ‘프라다폰’이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는 없었을까? 레인콤이 아이리버 디자인의 개성을 알았더라면, 아이팟 나노의 저가 공세에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었을까? 레이저폰이 그렇게 성공적으로 컴백하리라고 삼성과 LG의 핸드폰 디자이너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까?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한다. 기능이 비슷하고 품질이 어느 정도 균일화되었을 때, 디자인은 제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승부수로 제시된다. 하지만 정작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여전히 멋진 모양, 이상한 모양, 편리한 기능 배치 등의 물리적인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혁신적인 디자인이란 혁신적인 형태, 혁신적인 소재, 혁신적인 광고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핸드폰은 통화를 하기 위한, MP3 플레이어는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정말 디지털 시대의 디지털 제품이 소비자에게, 아니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무관심한 것이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디자인이라고 할 때, 무엇이 혁신인가? 새로운 모습인가, 아니면 새로운 개념인가? 디자이너는 이제 멋진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이 원하는 새로운 개념이나 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새로운 개념과 철학을 창조하여 구체적인 대상이나 형태로 재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바꾸고 기존의 개념을 새로운 형태로 전환시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디자인의 정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 교육 또는 디자인 전문가의 역할 변화가 기대된다. 멋진 시각 도형이나 그래픽 패턴을 만들어내는 기술자 정도여서는 안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진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디자인이다. 하지만 시각적 표현이나 형태의 디자인이 아닌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만들어내는 디자인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인간이 느끼는 것을 가장 자연스럽게 개념화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한국은 한 해 국내외 대학에서 4만 명에 가까운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나라이다. 이들이 과연 혁신적인 사고를 하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은 단지 디자인 안목이 까다로운 4만 명 이상의 소비자를 매년 대학에서 양성하는 신기한 나라가 될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학교 인간발달 소비자 광고 심리 전공 교수
황상민은 온화한 미소 속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셜록 홈스와 같은 심리학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과를, 하버드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 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 <사이버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 <너 지금 컴퓨터로 뭐 하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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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