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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공자 왈, 좋은 디자인이란 <강무성>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가 하는 문제는 매일 고민해도 다음 날 또 고민하게 되는 문제다. 디자이너로서 직접 디자인을 할 때도 그렇지만, 편집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디자인을 의뢰하고 의견을 제시해 결과를 얻어내야 할 때는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혼자 할 때에야 직감에 의존한 주관적 결론을 따랐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이 없지만, 딴 사람의 작업 방향을 바꾸어놓으려면 설득력이란 게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좋은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정리하지 않을 수 없고 그걸 또 말이 되게 표현할 준비까지 해야 한다. 디자인 시안을 받아들고 디자이너를 앞에 앉힌 채 당장 몇 분 안에 그 고민을 모두 해야 할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일단 고개를 숙여 시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부터 하는 것은 어려울 게 없다. 나무랄 데 없이 좋은 디자인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들고 간단히 “좋소” 하면 되는데, 문제는 그지 않을 때다. 고개를 들기까지 의견이 거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심판을 기다리며 혼자서 천장을 보고 있어야 할 디자이너의 심정도 헤아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길게 잡을 수도 없다. 길어야 5분. 그때 부터 째깍째깍 소리가 귀에 들린다.

사실 아무리 페이지가 많더라도 문제점을 찾는 것은 순식간이다. 먼저 일관된 개념이 없다. 본문 페이지에 베이식이 없어서 애플리케이션이랄 것도 없다. 한때는 실험적이기도 했겠지만 한 번쯤 해보고 말았어야 할, 그것도 자신의 시도도 아닌 것들을 도전적 시도인 양 답습했다. 가령 매체의 상황과 텍스트의 성격에 맞지도 않게 수시로 본문에 닿을 정도로 바짝, 야박하고 신경질적으로 선을 그어 붙이거나 테두리를 둘렀다. 가만 보니 요즘 그런 짓을 안 하는 디자이너가 없는 것 같고, 지면을 그렇게 만들지 않는 잡지가 없는 것 같다. 원, 사람들이 그걸 좋아라들 하는지…. 그런 식으로 대충 누가 그런 시도를 처음 했고 당시엔 이런저런 의미가 있었다는 정도로 기억해둘 만한 해묵은 전위적 시도들이 목록처럼 눈에 쭉 들어온다, 순식간에.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그때부터 흐른다. 아, 이걸 어떻게 말로 하지…? 물론 상대적으로 말하기 쉬운 것들도 없지 않다. 타이포그래피의 실패는 대상화되어야 할 사람 이름이 글쓴이의 이름처럼 둔갑해버린 데서 극명하게 나타났고, 침묵의 음성 가득한 사진에 글줄을 올려놓아 맛이 사라졌다. 제일 중요한 정보 중 하나인 글쓴이의 이름은 또 왜 그리 작은 글자로 앉혔는지! 커지면 무식해 보이는 게 글자라는 것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축성을 잃어가는 내 눈의 수정체는 8포인트 이하의 글자를 만나면 초점을 맞추느라 이마 쪽에 가벼운 두통부터 불러온다. 딱히 노안을 배려해달라는 심사라기보다는 가령 400페이지짜리 책 표지 위의 저자이름이 달랑 8포인트, 이런 식이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런데 서점에 깔린 게 그런 책이다. 아무튼….

째깍째깍,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나는 아직 고개를 들지 못한다. 초조한 가운데 머릿속의 하드디스크가 뻐걱뻐걱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마침내 심리적 시한을 넘길 참이다. 그 시한을 10초만 넘겨도 상황이 아주 어색해 지면서 고개를 들어 올려 눈을 맞추기가 곤란해진다. 이러다 종내 고개를 못 들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결국 고개를 들고 만다. 정리는 안 됐고 설득력 있는 준비도 안 됐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는 수밖에. 그러나 섣불리 시작한 대화는 한참의 설왕설래를 거쳐 다음과 같은 당연한 결말에 도달하기 십상이다. “저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이게 더 좋습니다.” 그리고 침묵. 하도 답답해 좋은 디자인의 판별에 대해 공자님께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 된다. 아닌 게 아니라 공자님께서 디자인을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의미 있게 유추해볼 만한 말씀을 적어놓으셨다.

어느 날 제자 자공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까? 마을의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겠지요?” “아니다.” “그럼 마을의 모든 사람이 나쁘다고 하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란 말씀입니까?” “그것도 아니다.” “그럼…?” 공자 왈, “마을의 좋은 사람은 좋다 하고 나쁜 사람은 나쁘다 하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번안하면, “좋은 디자인을하는 사람은 좋다 하고 나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나쁘다고 하는 그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다”쯤이 되겠다. 나는 내 앞에 있는 디자이너에게 이런 요지를 전한 다음에 “내공 있는 동업자 디자이너들의 시선을 두렵게 의식하면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중에 후회되지 않을 작업이 되도록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이 돌아와 대화는 또 길을 잃는다. “저는 내공 있는 그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할 거라고 생각 하는데요.” 하긴 공자님께서 놓친 문제가 하나 있다. 좋은 사람임을 판별해줄 그 좋은 사람은 과연 어떻게 판별한단 말인가? 문득 끝날 수 없는 하나의 긴 의문문이 만들어지면서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좋은 사람을 판별할 그 좋은 사람을 판별할 또 다른 좋은 사람을 판별할 딴 좋은 사람을 판별할 어나더(another) 좋은 사람을 판별할….


강무성
고려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비록 디자인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디자이너보다 더 디자인을 잘한다고 빡빡 우기고 있다. 도서출판 정신세계사 주간을 거쳐, 현재 1인 출판사인 도서출판 느린걸음 대표로 있으며 이름처럼 천천히 책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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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