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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opinion] 한민호 : 디자인은 정성으로 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디자인에 관한 수많은 담론과 실험이 있었다. “디자인을 하든가, 아니면 물러나라(Design, or resign).” 대처 전 영국 총리가 30년 전 각료들에게 했다는 이 말도 이제는 오히려 진부하게 들릴 정도다. 로버트 헤이예스 하버드대 교수가 “기업은 과거에는 가격으로, 오늘날에는 품질로 경쟁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디자인으로 경쟁할 것”이라 했으나 이미 우리는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개인도 창조적 근로자가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듯 디자인이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 요소라는 데 이견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디자인의 지배를 받는다. 상품을 구매할 때, 식당에 갈 때 중요한 선택 기준이 바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범죄 도시로 악명 높던 뉴욕이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하여 오늘날 세계인이 선망하는 창조 도시로 거듭난 것도 디자인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 디자인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강원도 영월군, 부산시 중구(광복동), 대구시 중구(동성로) 등지에서 해당 지자체와 함께 수행한 공공 디자인 사업은 지역의 문화 관광 자원을 확충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이 사업은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서로간 관계를 회복시켜 공동체를 부활시켰다는 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시점에서 몇 가지 짚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디자인’ 하면 으레 ‘돈’을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돈이 있어야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뭔가 다르게 더 잘해보고자 하는 의지와 상식이야말로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다. 즉, 정성이다. 정성 없이 돈으로 하는 공공 디자인이 얼마나 흉물스러운 횡포일 수 있는지를 많은 지자체가 열심히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군수의 치적 홍보를 위해 국민의 세금을 흥청망청 낭비한다. 정성이 없으니 마감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그 과정에서 배제되어 구경꾼으로 전락한 주민 입장에서는 ‘당신들의 디자인’을 아끼고 가꿀 이유가 없다.
둘째, 디자인을 전문가(디자이너)나 공무원에게 맡겨야 할, 뭔가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우리 디자인이 그동안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유리되어 산업 디자인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그랬다 해도, 21세기 문화 시대에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디자인을 일상에서 향유하고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특히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주민들과 대화하고 참여를 보장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몇몇 사람이 밀실에서 결정해 단기간에 밀어붙이는 식으로는 좋은 공공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 위키피디아(Wikipedia)로 대변되는 집단 지성의 힘을 믿어야 한다.
셋째, 디자인을 기술 또는 기교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기술과 기교가 필요하지만, 특정 디자인이 필요한 사회적 맥락을 두루 살펴보고 인접한 분야와 긴밀히 협업하는 과정과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 디자인을 마치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의 텃밭으로 생각하고 건축 등 인접 분야에 배타적 태도를 취하는 난센스는 이제 범하지 말야야 한다. 요컨대 디자인은 문화다. 디자인은 정성으로 하는 것인데, 정성은 도덕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도덕 수준은 문화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일상에 용해되어 생활화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문화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기술이나 기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해법(solution)이 되게 하려면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인접 분야와 협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문화적 역량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목놓아 외친다고 좋은 디자인이 되는 게 아니다. 


한민호
문화체육관광부 디자인공간문화과장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예술경영(석사)을,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협동과정(박사 수료) 을 공부했다. 공공 디자인을 문화라고 생각하는 그는 디자인공간문화과에서 건축 문화, 도시 디자인, 공공 디자인과 공예 문화 전파에 온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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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한민호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