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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한국 디자인 이론을 읽는다-6 서동진의 <디자인 멜랑콜리아>

디자인에 대한 급진주의적 사고를 엿보다 

 

한국 디자인에는 이론이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한국 디자인은 있지만 한국 디자인 이론은 없는가. 디자인은 이론 없이도 그 자체로 자명한 것이지만, 이론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부가적인 것인가. 하지만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분명 실천의 경험이 이론을 생성해내지만, 또한 그 실천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론이기 때문에 그 둘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이거나 선후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 디자인에 대한 이해는 이론과 실천 모두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디자인 이론의 현실은 어떠한가. 일단 국내에서 출간한 책 10권을 중심으로 한국 디자인 이론의 지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디자인 이론의 흐름을 짚어보고 향후 방향을 전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디자인을 두고 말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글쎄요, 디자인은 쓰임새와 겉모습을 만들어내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또한 진실에 관해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_ 39쪽

서동진을 아는가. 서동진은 1990년대 문화 비평의 스타였다. 1990년대가 문화의 시대로 불리게 된 데에는 문화 비평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등장도 한몫을 했다. 문화비평은 문학, 미술, 음악 등 기존 예술 비평의 대상이 아닌 것, 그러니까 영화, 만화, 노래, 텔레비전 같은 대중문화 영역의 비평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새로운 용어였다. 그리하여 문화평론가들이 줄줄이 나타났다.1) 그중에도 가장 유명한 이로는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문화평론가 서동진을 들 수 있다. 특유의 자의식 넘치고 비비 꼬는 스타일의 문장으로 악명 높은(?) 정성일은 영화 잡지 <키노> 편집장으로 주가를 드높였다. 서동진 역시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의 과잉과 현학이 넘치는 문장을 구사하던 당대의 스타일리스트였다. 이 둘처럼 1990년대 문화 비평의 풍경과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서동진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과감한 선언과 함께 대중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을 개시했다. 홍석천이 최초로 커밍아웃한 연예인이라면 서동진은 최초로 커밍아웃한 이 땅의 지식인이었다. 서동진은 이른바 ‘성의 정치학(Politics of Sexuality)’을 비롯한 일련의 포스트모던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사회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급진적인 비평 활동을 전개했다. 지금의 서동진은 1990년대의 비타협적인 게이 지식인 전사의 이미지로부터는 다소 멀어지며 한결 둔중해졌지만, 그의 급진주의적 태도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그가 황공하게도(?) 디자인에 관한 책을 하나 상재했으니, 이 책이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2000년대에 들어 디자인학교 (계원예대)에 교수로 들어간 그가 의무 방어용으로 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서동진 특유의 급진적 시각이 디자인이라는 주제에 어떻게 투사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스어로 ‘우울질’을 뜻하는 ‘멜랑콜리아’라는 제목처럼, 서동진이 보는 디자인 세계는 그리 쾌적하지 않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글은 첫 번째 실린 ‘디자인,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인데, 여기에 서동진이 디자인을 보는 관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넓은 의미의 시각 문화 비평에 속하는 다른 글도 물론 충분히 흥미롭지만, 서동진의 디자인관을 이해하기에는 이 글만으로도 충분하다. 서동진은 기본적으로 급진민주주의자이다. 급진 민주주의란 기존의 서구식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정치를 근본적으로 재사유하는, 일련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기존의 정치 이론이 계급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단일 구도 속에서 정치를 사유해왔다면, 포스트모던 이론은 계급 이외에도 젠더나 인종, 세대 등의 다양한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사회의 갈등 구조를 의제화한다. 그런 가운데 기존의 제도화된 정치를 넘어서 ‘정치적인 것’을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렇게 보면 사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영역과 대상은 정치적인 것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서동진은 현재의 체제에 봉사하는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빚어낼 어떤 것을 디자인에서 기대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빅터 파파 넥류의 제3세계를 위한 디자인이나 공공 디자인, ‘착한 디자인’ 같은,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놔둔 채 일종의 대리 보충으로서의 디자인일 수 없다.

서동진이 관찰하는 현재의 디자인은 이렇다. “문학이나 미술 등 본격 예술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에게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는지 몰라도, 놀랍게도 디자인은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지금 여기 자본주의에서의 삶을 상상력을 통해 심미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이 모두 자본의 능력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디자인은 전적으로 반정치적인 정치를 위하여 동원된 상상력을 가리킨다.” 2) 얘기했듯이 급진 민주주의자 서동진이 디자인에서 기대하는 것은 디자인을 통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가능성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모던 디자인의 급진성을 동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결국 그는 이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디자인에 디자인 그 이상의 무엇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인데, 그것은 일종의 유토피아적인 비전인 셈이다.

1) 디자인 비평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필자도 이 시절에 등장한 문화평론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2) 서동진, <디자인 멜랑콜리아>, 현실문화연구, 43쪽.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출판, 전시, 공공 부문 등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공예문화 비평>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이, 역서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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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범 디자인 평론가, 담당 김민정 기자, 사진 김정한(예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6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