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Design News
소외된 세계를 대변하는 공공 예술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3.5m에 달하는 김구 기념비가 전시실 한가운데 서 있다. 기념비에 사람들의 이미지가 투영된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 탈북 예술가, 거리로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이다. 표정과 몸짓, 때로는 떨리고 때로는 흐느끼며, 또 때로는 단호한 목소리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10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중 ‘나의 소원’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는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개인적 도구와 수레 등 공공장소나 집단주의적 사회에서 작가 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후 1980년대부터 역사적 기념비,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나 공공장소에서 슬라이드와 비디오 프로젝션을 발표하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전쟁, 소외와 차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메시지를 전한 그는 난민, 노숙자, 참전 군인, 이주 노동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도 했다. 그에게 이런 일련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곧 소통과 치유의 과정이다. 부당함과 차별에 내몰린 사회 약자들은 보디츠코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입밖으로 꺼내고, 우리는 이를 통해 미처 공론화하지 못했던 사회 문제와 트라우마에 대한 무거운 짐을 덜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주요 작품 80여 점을 선보이는 그의 회고전이자 국내 첫 개인전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특히 보디츠코에게 작품을 전시하는 공공장소는 중요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의 건축물이나 공공장소가 아닌 미술관을 공론의 장으로 삼았다. 이 전시는 세계적인 미술 매체 <아트넷>에서 ‘여행을 가서라도 볼만한 전시 19’ 중 하나로 소개할 만큼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소외 계층과 약자들을 위한 보디츠코의 작품은 명확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는 관람객에게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것이 예술가가 해야 할 역할이자 힘이라고 믿는다. www.mmca.go.kr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
히로시마 폭격 당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건물에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이미지를 영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희생자들은 스스로 치유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공공장소에서 소통의 길을 모색했다. 작가 소장.



‘수레’(1973) 바르샤바에서 수레를 시연하고 있다. 수레는 작가만 끌 수 있도록 설계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2006) 스위스 바젤 쿤스트 뮤지엄 파사드에 불법 노동자들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담았다. 얼굴을 전혀 보여주지 않거나 손 혹은 다리를 클로즈업하는 등 다양한 촬영 방식을 사용했다. 작가 소장.


‘대변인(마우스피스)’(1993)를 시연 중인 이민자들의 모습. 루아르 소재 프락 소장.


‘나의 소원’(2017)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의 어머니 모습이 매핑된 김구 기념비. 인터뷰 대상자를 섭외한 후, 실제 미술관 안에 마련된 세트에서(세트 또한 전시 중이다) 인터뷰이의 영상의 촬영과 편집, 매핑 작업을 했다.


‘노숙자 수레’(1988) 노숙자 수레를 시연 중인 모습. 수레는 쇼핑 카트를 개조해 그 안에서 잠을 자거나 세수를 하고 물건을 보관할 수도 있다. 제품으로서가 아니라 노숙자가 길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해 만들었다. 사진의 배경은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건물이다. 노숙자 수레는 정치적 공공 미술의 대표적인 사례로도 꼽힌다. 홍콩 개인 소장. 06 ‘개인적 도구’를 직접 시연 중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모습(1972). 우치 미술관 소장.


Interview
크지스토프 보디츠코

“문제 해결을 넘어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고민할 때 디자인은 공공 예술이 된다.”


1943년생. 1968년 바르샤바 미술 아카데미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현미경 등의 광학 기기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동시에 실험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개인적 도구(1969), 수레(1971~1973) 등을 발표했다. 1977년에 캐나다로 이주한 뒤 1983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노숙자 수레’(1988), ‘외국인 지팡이’(1992),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 ‘미등록 이주 노동자’(2006), ‘참전 군인 프로젝션’(2010)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정치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이슈를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200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폴란드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으며 폴란드 문화상(2009), 히로시마 미술상(1999) 등을 수상했다. 칼 아츠, MIT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교수로 ‘공공 영역의 건축과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www.06 krzysztofwodiczko.com


‘나의 소원’에는 영상 촬영, 제작, 매핑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당신은 진화하는 미디어 수단뿐 아니라 ‘노숙자 수레’나 이방인의 도시를 위한 기기 등 도구 개발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당신에게 이런 매개체는 어떤 의미가 있나?
나의 프로젝트는 기구(instrument)가 핵심이다. 이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외 계층을 위한 기구다. 프로젝션이나 비디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효율적인 기구를 찾는 것이다. ‘나의 소원’에 사용한 김구 기념비 역시 소통에 사용되는 도구로, 사람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역사의 영광을 상징하는 오브제에 약자들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시기인 지난해는 한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뜨거웠던 한 해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무엇을 보았으며, 또 이를 김구 기념비와 연계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한국에 대한 관심은 MIT와 하버드에서 강의하면서 한국 학생들을 통해 시작되었다. 원래 탈북자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세월호의 아픔을 알게 되었고, 광화문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메시지를 접했다. 이상적인 국가, 민주주의의 의미,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고 이를 투영할 기념비를 찾다가 김구의 ‘나의 소원’에 담긴 사회상에 공감하게 되었다.

당신은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공공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예술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으로서의 예술은 결국 우리 삶에 밀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디자이너는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보조자, 동반자 역할을 해야 한다. 1990년대 MIT에 재직할 당시 ‘의문을 제기하는 디자인’ 연구소에서 했던 연구도 이와 같다. 삶에 대한 의문이나 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의구심을 가지며 이를 해결하는 방식을 고민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디자인과 예술은 결국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예를 들어 상처에 붙이는 반창고를 효율적이고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디자인한다면 그것이 공공 예술일 수 있다.

‘…여기에서 나가: 참전 군인 프로젝트’(2009), ‘참전 군인 프로젝션’(2010)에서 참전 군인과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다루었고 최근 ‘유제프 로트블라트 문화 군축ㆍ전쟁 철폐 연구소’(2016)를 통해 전쟁을 기념하는 문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어떤 의미인가?
전쟁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 기념물은 전쟁을 승패의 관점으로만 본다. 어느 기념관에도 사람과 환경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반전을 넘어 ‘비전쟁’에 대한 프로젝트와 출판을 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 참전 군인, 탈북자, 노숙자 등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 사회 문제에 대해 당신이 시도하는 방식을 통해 세상이 변할 수 있을까?
문화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소통과 관계의 범위도 달라질 것이다. 내 역할은 다양한 문제를 공론화하고 촉구하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그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관심사는 나라와 지역,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세계 시민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다음 관심사는 어디로, 누구로 향하고 있는가?
세계 시민이자 디자이너, 예술가에게 그런 질문은 상당히 어렵다.(웃음) 늘 무언가를 하지만 가끔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니까. 다만 언제나 내가 유용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 대다수에게 감정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도 생각한 적이 있다. 이번 전시 준비를 위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사람들이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바리케이드는 안전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감정적, 사회적으로 서로를 분리시키는 데 이용되었다. 이를 소통을 위한 문화적ㆍ예술적 도구가 되도록 고민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Share +
바이라인 : 글: 오상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