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Design News
FEMINISM DESIGN 페미니즘 도서, 누가 어떻게 디자인했나?
요즘 대형 서점은 물론이고 동네 서점에 가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섹션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세련된 디자인도, 내용에 비해 부족한 디자인도 있다(물론 몹시 형편없는 디자인의 책이 엄청나게 팔릴 수도 있다). 그중 앞으로 소개할 8권의 책은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물론, 페미니즘 도서가 ‘경험’되는 방식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한 사례들이다. 모두 월간 <디자인>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정한 책으로 나름 지적, 미적, 물리적 우수성을 다각도로 살폈다.

01 <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마티 펴냄 
디자인 오새날 마티 디자이너

해당 도서의 북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달라.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초등성평등연구회 선생님들이 성 평등한 교실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교육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고민을 엮은 책이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색종이로 오려 붙인 듯한 책상, 의자, 펄럭이는 깃발 그림이 서로 겹쳐 있는 그래픽 위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크고 자신 있는 서체로 ‘학교에 페미니즘’을 외치는 장면을 상상하며 작업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이기 때문에 접근 방법이 달랐다든가,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책이기 때문에 문제되는 지점이 없도록 평소보다 더욱 고민했다. 우선적으로 여성의 색으로 여겨지는 분홍색 사용은 지양하고 중성으로 느껴지는 색상을 선택해 작업했다. 최근 출간되는 책들은 분홍색을 피해 다양한 색상으로 페미니즘의 기치를 표현하는데, 이 책에서는 보라색 깃발이 서프러제트를 의미한다. 여러 선생님이 다양한 주제로 엮은 책이라 그중 인상적이었던 몇몇 이야기를 주제로 표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체육 시간에 달리고 뛰어노는 여자아이들을 생각하며 밝은 색상의 러닝 트랙 사진을 이용하거나, 여아·남아용 물건을 구분 지어 만들 때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분홍색과 하늘색으로 성별 이분법을 이미지화하는 등의 시안이 있었다.

북 디자인에서 당신(혹은 마티)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해당 도서에는 어떻게 반영했는지 이야기해달라.
회사 내부에서 마티 책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내는 책은 좀 담백하지. 표지 글이나 소개하는 글도 불친절한 편인 듯”으로 내려진다. 표1에 제목과 부제 외에 책에 대한 단서를 잘 제공하지 않는 편인데, 표지 디자인도 조금 건조한 편이 마티 책과 어울릴 것 같아서 의미 없는 것을 넣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신 매력적인 책으로 보이려면 어떤 재미 요소를 넣으면 좋을지 신경 쓴다. 이 책에서는 페미니즘을 선언하는 강렬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자고 생각해서 우당탕 넘어진 의자라든지 펄럭이는 서프러제트의 보라색 깃발 같은 것으로 시도해보았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 있다면?
나의 어린 시절과 선생님들을 많이 생각했다. ‘유년기에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더욱 일찍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하며.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이 혐오에 민감해지고 성별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워지도록 고민하는 선생님들께 감사하며 작업했다. 미래의 동료 시민들과 좀 더 나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현장에서 힘써주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한다.


02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민음사 펴냄 
디자인 최정은 민음사 미술부 차장

해당 도서의 북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달라.
이 책을 제로퍼제로의 그림과 함께 많이 기억해주는 것 같다. 원서에는 그림이 없었는데 편집부의 판단으로 어렵지 않은 페미니즘 도서로 보이도록 일러스트레이션을 이용했다. 제로퍼제로의 그림으로 좀 더 따뜻하게 재해석된 느낌이다. 주제에 대한 접근은 쉽게 하되, 메시지 자체가 가벼워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제로퍼제로가 그림의 내용과 톤을 잘 잡아주었고, 거기에 컬러 사용을 최소화하고 본문 레이아웃은 간결하게 하여 메시지가 강해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이기 때문에 접근 방법이 달랐다든가,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육아를 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페미니즘에 관해 조언하는 책이다. 그 부분이 다른 페니미즘 도서와 다른 포인트였다.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표지와 본문 그림에 아이와 엄마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있다고 해서 뭉뚱그려 ‘육아’로만 읽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육아라고 하면 보통 아이만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이 책의 메시지가 약해진다. 제목처럼 엄마도 하나의 주체로 보이도록 하는 관점이 필요했다. 표지에서 이들은 같은 풍경에 친밀하게 함께 있지만 각각 다른 주체로 보이도록 시각적으로 한 번 분리했다. 언뜻 아이만 강조한 것 같지만 둘을 한 번 분리해 서로의 시선(‘엄마가 아이를’, ‘아이가 엄마를’)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었으면 했다. 또한 제로퍼제로에서 그동안 그려온 육아를 주제로 한 그림과 페미니즘이라는 이 책의 정체성이 혼동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민음사 쏜살문고만의 특징을 해당 도서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이야기해달라.
쏜살문고는 최소한의 형식만 통일하고 디자인은 각 권마다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책마다 각기 다른 표현을 하지만 함께 두어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 쏜살문고 디자인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문고판이고 독자층이 (민음사의 다른 책들에 비해) 젊다는 점 역시 마이너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분문 디자인을 비롯해 여러 가지로 기존의 쏜살문고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동떨어져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에 신경을 썼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 있다면?
주제가 주제인 만큼 스스로를 많이 대입해봤다. ‘딸로서 나는 어떻게 자랐나’, ‘엄마로서 (아들인) 내 아이를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육아는 어느 정도 평등하게 하고 있나’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입이 많았다. 표면적으로는 딸을 키우는 엄마에 관한 조언으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아들을 키우는 사람들, 엄마가 아닌 남자들 역시 함께 읽어야 평화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페미니즘은 평등한 관계가 본질이므로 상대가 같은 생각을 해야 의미 있지 않을까.


03 <지워지지 않는 페미니즘>



윤김지영 지음, 은행나무 펴냄  
디자인 한기쁨 프리랜스 디자이너

해당 도서의 북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달라.
분노와 선언을 거쳐 해방, 자기 변형을 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성별 기호를 뾰족하게 변형해 페미니즘의 날 선 감각을 표현하고, 스틸 텍스처로 투쟁적인 이미지를 나타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이기 때문에 접근 방법이 달랐다든가,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색이다. 젠더의 색이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낯선 느낌을 주기 위해 형광 연두를 택했다

북 디자인에서 당신만의 스타일은 무엇인가? 해당 도서에는 어떻게 반영했는지 이야기해달라.
개인적으로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모든 요소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기 때문에 평소 그림 스타일과는 다른 그래픽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 있다면?
뾰족한 것이다. 예민한 것들의 연대와 그 뾰족한 부분이 향한 방향성, 그리고 그것을 가리려는 어떠한 힘을 떠올렸다.


04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



진 킬본 지음, 한진영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디자인  별을 잡는 그물 양미정 프리랜스 디자이너 

해당 도서의 북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달라.
녹색의 눈동자는 페미니즘을, 그 안을 수놓은 별은 중독성이 강한 별의별 광고를 상징한다. 가지각색으로 표현되는 책들 사이에서 오히려 눈에 띌 수 있도록 단 두 가지 색상만 사용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이기 때문에 접근 방법이 달랐다든가,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
현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스스로 억압받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이슈는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지하지 못했던 사회적 시선과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모티프를 찾았고, 그게 ‘눈동자’였다. 또한 광고에서 보여지는 여성의 이미지는 ‘별’로 표현했다.

북 디자인에서 당신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해당 도서에는 어떻게 반영했는지 이야기해달라.
북 디자인은 살아 움직이는 ‘글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책 제목과 내용이 아무리 어둡고 부정적이라 해도 색상만큼은 독자들이 따사롭고 포근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또 서점 매대를 보면 정말 다양한 디자인의 책이 있는데 그 모두가 하나의 책으로 뭉쳐 보일 때가 있다. 화려한 만큼 복잡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그래서 북 디자인을 할 때는 절제된 색상과 여백이 주는 편안함을 고려해서 작업한다. 이번 책 역시 두 가지 색상과 한 가지 서체만 사용했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 있다면?
항상 북 디자인을 할 때 누군가의 책장에서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 아닌, 새로운 시대와 함께 어울려 나아갈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진행했다.


05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디자인 강혜림 문학동네 미술부  

해당 도서의 북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달라.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은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인 페기 오렌스타인이 10~20대 여성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를 바라보고, 지금의 성교육과 대중문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의 틀이 청소년기의 여성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렇게 억압되어온 젊은 여성의 주체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페미니즘적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와 연령이 각기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임에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만약 이 책을 10대 시절에 읽었다면 좀 더 건강한 성 의식을 갖고 자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특정한 여성의 이미지들을 보며 ‘나는 같은 여성인데 왜 다를까’ 혹은 ‘내가 왜 거기에 맞춰야 될까’ 하는 의문은 누구나 가져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이런 의문과 문제의식으로 혼란스럽더라도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아이가 떠올랐고, 이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디자인하고 싶었다. 생각해본 디자인 방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책에 나오는 개념들(슬럿 셰이밍, 사이버 불링 등)을 교실 책상에 앉아 노트에 끄적여본 듯한 낙서처럼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자아이의 고민을 표현해보면 책의 분위기와 내용을 나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틀에서 벗어나보자는, 새로운 페미니즘적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책의 주제와 지향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여성을 둘러싼 구태의연한 성 관념들을 아이콘화해서 틀이 있는 조립 키트식으로 작업해보자고 생각했다. ‘안에 있는 여자아이가 그 틀을 박차고 나오게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는 스케치 단계가 아니라 작업 중에 떠올랐다. 표현 방식의 측면에서도 하나는 수작업(B), 다른 하나는 그래픽 작업(A)이므로 스타일이 분명하게 변별되었기에 더 이상의 안을 낼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이기 때문에 접근 방법이 달랐다든가,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담당 편집자가, 미국에서 호평받고 주목도 있는 책(아마존 2016 올해의 책)이며,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이 여전히 이슈인 만큼(2017년 여름·가을) 국내에서도 주목도가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예상 독자층이 이 책에 대해 세심하고 까다롭게 보지 않을까 예상했다. 또한 여성-섹스 등 특히 한국에서 민감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책의 특성상 핵심 독자층을 만족시키면서도 청소년 독자나 그 부모에게도 무리 없이 다가갈 수 있는 표지여야 했다. 이러한 상황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으나, 일단 여성이면서 페미니스트인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표지를 만들고 싶었다.일반적으로 시안 작업 중에는 스톡 이미지 등을 통해 표지에 어울리는 사진이나 그림을 검색하고 대여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이 과정을 통해 관련 이미지를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을 시각화한 이미지가 많아서 여성주의와 관련된 책에는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또 구글 등에서 한글로 소녀 및 여성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너무 성적인 이미지에 치우져 있어 적합한 참고 사진을 찾기도 힘들다. 결국 내가 스스로 이미지를 처음부터 직접 만드는 편이 낫다고 결론 내리고 그렇게 작업했다.

북 디자인에서 당신(혹은 문학동네)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해당 도서에는 어떻게 반영했는지 이야기해달라.
문학동네출판그룹(계열사와 어린이팀 등)에만 20명이 넘는 디자이너가 있고, 본사 미술부에도 본문 및 표지까지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16명 정도 된다. 분명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시기의 흐름이나 도서 분류 등에 따라 어떤 경향성이 존재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디자이너 각자의 개성이 다르고 연간 몇백 종의 책을 출간하므로 회사 고유의 디자인 스타일 혹은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강하게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역시 인하우스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독립한 북 디자이너 혹은 그래픽 디자이너나 스튜디오처럼 개성을 드러내기 힘든 환경 같다. 일정 부분 기존의 관습이나 규칙에 따라야 할 때가 많고 여러 사람의 의견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남들과 다른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려고 한 적도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엄청 독특하고 창의적인 편도 아닌 것 같고. 다만 기존 단행본에서 도서 분류의 시각적 구분이라든가(문학은 다소 감성적인 이미지, 자기 계발서는 분명한 이미지와 큰 제목 등) 디자인 면에서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나만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서점 매대에서 눈에 잘 띄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므로 생각이나 시안으로 그칠 때도 많지만 가능하다면 이미지를 만들어서 쓴다든가 재미있는 요소를 넣는다든가 하는 시도를 해본다. 혹여 누군가가 내 작업물에서 나의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것을 느낀다면 이런 시도가 쌓여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추측해보는 정도이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 있다면?
평소와 조금 달랐던 점이라면 개인적으로도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기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에는 더 애정을 갖고 작업하게 되는 것 같다. 원고를 읽고 책에 나오는 소녀들에게 이입해서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10~20대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현재 소녀들과, 이미 그 시절을 통과한 여성들이 표지를 보고 책을 펼쳐줄 만한 힘이 있는 결과물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무엇보다 많이 한 것 같다. 독서 경험을 통한 변화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표지에서부터 차별적인 여성성의 틀을 부수는 통쾌함과 시원함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즐겁고 보람 있는 작업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완성된 결과물로 책이 나오면 볼수록 아쉬운 점이 계속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06 <유럽 낙태 여행>



우유니게,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지음, 봄알람 펴냄
디자인 우유니게 봄알람 디자이너

해당 도서의 북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달라.
검은 배경에 흰색으로 초특태고딕을 사용해 일반적인 단행본의 제목 크기보다 크게 넣었다. 언어가 주는 의미와 인상 자체에 집중되도록 했고, 이 임팩트와 충돌할 수 있는 다른 그래픽적 요소로 꾸미지 않았다. ‘유럽, 낙태, 여행’ 이 세 단어가 각각 행갈이되어 세 줄로 들어간 것은 제목을 지은 편집자의 의견이었다. 각 단어를 힘주어 말하는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낯설게 만들어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한다. 앞표지를 검게 한 것은 폴란드의 유명한 낙태죄 폐지 시위, 그리고 한국의 ‘검은 시위’와 맥을 같이한다. 나는 검은 시위의 검은색을, 여성의 생명권을 국가가 쥐고 있다는 어두운 상황과 그로 인한 여성의 죽음을 색상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고,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뒤표지에는 책 속에 등장하는 각 나라의 국기를 연속으로 배치했다. 모두 구상적인 그림이나 심벌이 없는 색면 분할로만 이루어진 국기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패턴이 되어 구분이 더 이상 명확해지지 않는 이 그래픽은 오색찬란한 만국기가 되어 연속, 연결되고 연대한다는 느낌을 준다. 내지의 양 바깥쪽 끝에는 각 꼭지에서 말하는 나라의 국기를 가리키는 색상 막대를 넣어 책배 부분에도 각 꼭지가 어떤 나라에 대한 것인지 드러나도록 했다. 책 내용에서 각 나라의 상황이 서로 매우 다르고 각자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현재 어느 나라에 대해 읽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이기 때문에 접근 방법이 달랐다든가,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여성을 제한하고 배제시키고 억압하는 성별 고정관념과 고정된 성 역할 같은 것이 반영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여성과 관련된 책이나 잡지를 보면 색상 사용과 표현 방식이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 여성은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 보통에서 동떨어진 특수한 존재, 그리고 다양성이 없는 제한적인 존재라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여성은 하나의 유기체가 아닌 모두 각기 다른 사람이며, 페미니즘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의제와 목소리가 있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고 여러 가지 표현을 하려고 노력한다. 특정 스타일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 관련 주제라 하면 어떤 유형화된 스타일로 획일 수렴하는 현상을 경계하는 것이다. 특히 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용할 때는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대상화된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여성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으려고 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할 때는 획일화된 사회적 미의 기준을 최대한 피하고 다양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담으려 노력한다. 성별뿐 아니라 국적, 나이 등에 관한 그 어떤 고정관념도 반영하지 않고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봄알람의 독자들은 젠더 감수성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자 감수성 또한 기준이 높다. 그래서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항상 배우고 노력한다.

북 디자인에서 당신(혹은 봄알람)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해당 도서에는 어떻게 반영했는지 이야기해달라.
봄알람만의 스타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출간한 8종의 책 모두 분위기와 표현 방식을 각기 달리했다. 앞으로도 때로는 볼드하게 직설적으로, 때로는 장식적으로, 또 때로는 위트 있게 표현하며 책에 따라 레터링,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요소를 메인으로 사용하며 색상 사용에 있어서도 의식적으로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봄알람의 책도 다른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모두 동일한 판형과 일관성 있는 포맷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통일된 포맷 안에서 책마다 펼쳐지는 변주가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출판사 또는 시리즈 전체의 정체성이 확실해지고 기억에 더 잘 남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저마다의 개성을 살리며 다양한 방식을 택해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페미니즘적 미션이라 생각하고 디자인한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주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 있다면?
‘낙태’라는 말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중의 인식은 어둡고 부정적이기만 했다. 그래서 그와 어울려 사용되지 않았던 선진적이고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유럽’이라는 말과 밝고 설레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조합된 ‘유럽 낙태 여행’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그 낯선 모습이 주는 신선함으로 독자에게 도전한다. 낙태에 대한 사회의 터부가 여전하기에, 표지에 낙태라는 말이 크게 들어가 있어 독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책을 들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도 운동적인 측면에서는 효과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현재의 권리 상황이 암흑이란 것을 전달하면서도, 낙태에 덧씌워진 부정적 의미는 덜어내려고 했다. 표지의 검은색과 대비되도록 알록달록한 국기의 색면을 그래픽적으로 활용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역동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07 <그런 여자는 없다>



게릴라걸스 지음, 우효경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디자인 박대성 프리랜스 북 디자이너  

해당 도서의 북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달라.
1985년에 뉴욕에서 ‘게릴라 걸스’라는 그룹이 생겨나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공공장소에 고릴라 가면을 쓰고 나타나 성차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성차별 관행을 풍자하는 각종 이미지를 제작하는 그룹이다. 이 그룹의 프로젝트를 책으로 엮은 게 <그런 여자는 없다>이다. 원서는 큰 판형의 잡지 형태로 자유분방한 형식인데, 우리는 주제어를 중심으로 짧게 나눠 재구성했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풍자한다는 프로젝트의 의도를 강조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주제어마다 말과 이미지의 긴장감을 드러낼 방법을 찾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원서에 없는 이미지를 추가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이기 때문에 접근 방법이 달랐다든가,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달랐다기보다 페미니즘 도서 중에서 전투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이니까 컬러 사용이나 이미지 배치에서 좀 더 과감하게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북 디자인에서 당신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해당 도서에는 어떻게 반영했는지 이야기해달라.
나는 무슨 독창적인 스타일이 있는 디자이너는 못 되는 것 같다. 어떤 디자인이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 있다면?
말과 이미지를 이렇게 엇갈리게 하면 이런 효과가 생기겠다,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거 같다. 요새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이미지를 흩뜨려놓는 것, 이미지와 현실 사이, 이미지와 설명 글 사이의 자명한 관계를 끊어놓는 전략”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그 비슷한 생각이었던 거 같다.


08 <여자들의 사회>



리사 앨더, 프랑수아즈 질로 지음, 노지양 옮김, 알마 펴냄 
디자인 한승연 알마 디자이너 

해당 도서의 북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달라.
프랑수아즈 질로의 드로잉과 선을 이어 만든 공간을 활용해 디자인했다. 책의 기본적인 콘셉트인 ‘두 여성의 대화’는 질로의 드로잉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작은 창을 배경에 두고 서로를 보고 관찰해 그림을 그려가는 모습은 두 저자인 리사 앨더와 프랑수아즈 질로가 마치 살롱에서(실제로는 각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화하는 듯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관찰하는 눈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현하는 동시에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강렬하게 압도하는 그녀 특유의 그림 스타일은 원서에서 사용한 채색을 덜어내고 보랏빛의 박을 찍어내어 생동감을 더했다. 하지만 경계를 표현하고 조금 더 구조적으로 보일 장치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선을 이용해 입체적이면서 시선의 이동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선은 자연스럽게 책등을 지나 뒤표지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독자들의 시선이 선을 따라가도록 유도했다. 간결하게, 그러나 고루해 보이지 않도록 하는 데 최대한 주력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이기 때문에 접근 방법이 달랐다든가,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원서의 디자인은 드로잉에 채색을 다양하게 입힌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어보니 ‘당당하고 지적인 여성’보다 오히려 여성성이 강조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저자는 페미니즘에 관한 서로 다른 관점을 견지하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 의도에 반하는 디자인으로 오해받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콘셉트라는 점을 감안해,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독자, 심지어 남성 독자들도 이 책을 서슴없이 집어 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이유로 좀 더 심플하고 진중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또 지나치게 건조한 느낌보다는 편안하고 다정한 느낌이 드는 디자인이었으면 했다. 디자인 전반이나 종이의 재질, 색상 등의 선택은 바로 그 지점에서 고려되었다.

북 디자인에서 당신(혹은 알마)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해당 도서에는 어떻게 반영했는지 이야기해달라.
알마의 스타일은 아직 ‘완성되어가는 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안지미 대표는 현직 디자이너이기도 한데 개별 책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출판사 아이덴티티라는 측면에서 모든 결과물에 알마만의 확실한 색깔을 확립하고자 한다. 우리는 알마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그를 기반으로 유기적인 디자인 흐름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라도 보기만 해도 알마 책이라는 걸 알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알마는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을 구상하는 단계를 거쳐 지금은 그것을 책이라는 물성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에 있다. 개별 책과 모든 결과물에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 독자들에게 알마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어렵다. 냉정하게 보아 디자인은 예술보다는 상품을 위한 산업 현장의 도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에서의 현실적인 문제로 자칫 이 ‘일관된 흐름’에 갇혀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가 규정한 ‘디자인 철학’을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디자인 철학이 개인의 취향으로 치환될 위험도 다분히 존재하는 까닭에 항상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현재 알마 책의 디자인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결을 보여주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독자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건축물을 층층이 쌓아 올리듯이, 알마라는 브랜드와 정체성을 입혀 세상에 내보내는 책들이 그 벽돌 하나하나가 되고 있다. 그것이 모여 언젠가는 알마만의 스타일이 완성될 것이다. 내가 그 과업의 일원인 것이 무척 보람되고 자랑스럽다. <여자들의 사회>는 디자이너로서 그런 나의 철학과 의도가 제법 잘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답변이 될 것 같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 있다면?
질로와 앨더 두 저자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비굴하게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는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이해받기 위해 자신의 삶과 생각을 솔직히 들려주는 것. 그들의 대화를 마치 곁에 앉아 듣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작업하는 내내 즐거웠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고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적으로 규정해 상대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는 시대가 아닌가. 앨더나 질로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꽤 절실했다.(웃음)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도 더 넓은 의미에서 결국은 ‘소통’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도구로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포용의 책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이나 연대도 결국은 소통이니까 디자인에서 그런 것들이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의식적으로도 그랬고 무의식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

Share +
바이라인 : 기획·진행: 김민정 기자, 사진: 손영주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