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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우리에겐 더 시건방진 디자인이 필요하다

지난 6월 13일에 치른 지방선거 관련 공보물 중 서울시장 유권자인 저는 그 많은 자료 속에서 딱 두 장을 가장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하나는 손바닥만 한 종이쪽지로, 너무 작아서 오히려 가장 눈에 띄는 바람에 안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몇 번의 선거 공보물 중 가장 작은 크기였으니까요. 우인철 우리미래 서울시장 후보의 자료는 후보에 관한 정보만 겨우 적혔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단박에 이 후보는 선거 자금이 넉넉지 않구나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렇게 선거 공보물을 보낼 때마다 드는 비용이 상당하고,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460만 가구에 공보물을 보내는 데 3억 원가량이 필요하답니다. A4 용지 한 장으로 만들어도 최소 5000만 원이 필요한데 그마저도 없어 반의 반 사이즈로 한 장에 2원씩, 총 1000만 원을 들여 보냈다는 설명을 찾아봤습니다. 유권자로서 후보의 정책과 공약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맞지만, 과연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 받아봐야 할지 의문이었습니다. 후보에 따라 몇 페이지부터 한 장짜리까지 다양한데, 객관적인 정보와 정책과 공약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면 투표의 양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다른 한 장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자처하고 나선 신지예 후보의 것이었습니다. 우선 전형적인 선거 디자인의 문법을 따르지 않은 자신감 넘치며 생기발랄한 이미지에 끌렸습니다. 여러 가지 이미지 전략이 읽히는 공보물 가운데 시선을 사로잡고 튀기로 했다면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봤습니다. 디자인과 바이럴 전략으로만 본다면 압도적인 1등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싶어서 또 공약을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요. “여성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가정주부’라서 동네를 잘 돌볼 수 있다고 표현하거나, ~의 며느리, 똑순이라고 스스로를 홍보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여성을 위한 정책은 여성 가족, 보육, 프레임을 못 벗어난다” 등등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만 당선 여부를 떠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회에 크게 균열을 낼 수 있는 공약을 들고 나온 후보의 등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장 당당하게 표를 요구하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유권자의 표는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지 길바닥에서 절하면서 부탁하거나 구걸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후에 벌어진 ‘개시건방’ 발언이나 벽보를 찢어버리고 싶다고 하고 또 실제로 훼손한 후진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이 정도를 갖고 도발적이거나 개시건방지다고 느끼는 것인지 감수성 수준에 의문이 들었고요(물론 똑똑하고 당당해서 겁난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긴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도 이렇게 명백한 여성 혐오를 담은 발언을 거리낌 없이 뱉는 사람들 때문에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출마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여성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의하느냐 않느냐에 상관없이 여성이 능력을 갖추는 속도에 비해 사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페미니즘 이슈는 확대될 수밖에 없어요”라고 한 사회학자 노명우의 말(월간 <디자인> 2018년 1월호 ‘2018년 크리에이터가 주목해야 할 디자인 & 라이프 트렌드 키워드’에 관한 좌담회)처럼 지금은 그 과정 중에 있음을 실감합니다. 신지예 후보를 개시건방지게 만든 선거 디자인은 햇빛스튜디오의 작업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인지 42쪽에서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164쪽 ‘포스터, 페미니즘, 프로파간다’ 기사에서도 페미니즘을 디자인하는 여성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세상은 타협하지 않고 항의할 줄 아는 사람들 덕분에 바뀌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살기가 더 좋아졌다면 그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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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전은경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