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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민화, 현대적인 디자인 그 자체

갤러리 현대의 민화 전시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그림>을 봤습니다. 천천히 보려고 일부러 여유로운 날을 골랐는데, 사람들이 꽤 붐벼 이 전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성행했던 민화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화조도를 중심으로 한 전시는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그림도 아름다웠지만, 특히 작품 설명과 문장이 아주 좋아 꼼꼼히 다 읽을 수밖에 없었고요. 그 많은 그림 중 가장 유심히 살펴봤던 것은 일본 민예관이 소장한 <연화 모란도>였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표구 디자인 개념을 잡고, 표구장 오오하시 호사이가 표구하며, 영국의 유명한 도예가 버나드 리치가 족자봉을 만들어 새로 표장한 작품입니다. 일본 민예관이 소장한 또 다른 한 점인 <화병도> 역시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들이자 디자이너인 야나기 소리가 다시 표장했다고 합니다. 표구장과 족자봉을 만든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은 전해지는데, 정작 주인공인 저 민화는 누가 그렸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안타까웠던 것이지요. 하지만, 작자 미상! 이것이 바로 귀족적인 예술이 아닌 소박한 조선의 디자인, 민화의 특징이자 매력이구나 싶었습니다. 대가들의 이름이 붙은 우키요에와 다른 점이기도 하고요. 그간 크고 작은 민화 전시가 꾸준히 열렸고, 민화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노력 덕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잘 그렸으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훈육하는 것 같은 국보급 그림들에 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자유분방하고 판타지와 행복이 넘치며 생생한 스토리텔링이 살아있는 민화는 봐도 봐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안경 낀 호랑이라든가 사람의 형상을 한 괴석, 원근법을 무시한 채 꽃송이 위에 앉아있는 사람,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 그림, 세련되고 감각적인 책가도가 어떻게 흥미롭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특히 자연과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꽃 패턴을 보노라면 윌리엄 모리스의 공예적인 월페이퍼 패턴보다 한층 자유로운 세계관이나 표현 기법 면에서 한수 위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처럼 민화는 서민들의 꿈과 희망을 표현한 아름다운 그림, 조선의 그래픽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현대적인 디자인 그 자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문화적인 배경을 몰라도 이해하기 쉽고 매력적인 비주얼입니다. 구찌가 2018 SS 컬렉션에서 화조도에서 영감을 받은 새를 이용한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얘기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한국적인 디자인, 전통적인 요소의 재해석이나 차용을 말할 때마다 늘 떠올리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한국적인 디자인에 대해 강박을 갖거나 숙제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안타깝게도 전통적인 모티브를 강조하거나 재해석한 결과가 썩 아름답지 않은 사례도 많이 봤습니다. 지나치게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도 있고요. 그런 면에서 민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관심을 가질 이유가 또 생겼습니다. 이번 호 92쪽 ‘민화, 뉴 디자인’과 더불어 월간 <디자인> 디지털 라이브러리에서 다시 읽어봐도 좋은 2011년 9월호 ‘후손을 위한 조선의 디자인, 145년 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2016년 8월호 ‘이것이 조선의 그래픽이다, <조선 궁중화ㆍ민화걸작-문자도文字圖 책거리冊巨里> 기사를 함께 읽어보시면 민화의 디자인 측면을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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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전은경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