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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커피 권하는 서울

“그동안 우리에게는 공공적인 사교 공간, 살롱의 역할을 할 만한 곳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아무거나’라는 말을 참 싫어합니다. 그 말에 담긴 의욕 없음, 취향 없음, 그리고 귀찮음이 느껴지는 뉘앙스가 싫다는 거죠. 다행스럽게 사람들은 이제 아무거나 마시지 않고, 아무 데나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려 먹고 가볼 만한 곳을 고른다는 것은, 그만큼 먹거리가 많아졌고 가볼 만한 곳이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취향 심화 시대라는 반증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취향이 심화될수록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싱글 오리진의 개념입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평균치가 아니라 남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에 대한 자각이 더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식문화 전반에서 일어나는 경향이지만, 커피에서는 특히 스페셜티 선호로 나타납니다. 그냥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케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 나라 혹은 지역별, 농장별 커피 맛의 차이를 구별하면서 즐깁니다. 마치 와인처럼 말이죠. 와인을 통해 취향 심화의 과정을 살필 수 있었던 것처럼 커피와 초콜릿, 쌀이 그렇게 될 것이고 특히 쌀의 경우 어떤 품종이 내 입맛에 더 맞는지 아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스페셜티 커피 확산의 티핑포인트로 어김없이 지목되는 것이 블루보틀입니다. 스타벅스 정도로 만족했던 입맛은 블루보틀의 등장 이후 스페셜티를 따지게 됐고, 덕분에 커피 업계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고급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올라간 입맛과 취향은 내려오기가 쉽지 않지요. 블루보틀의 그 유명한 파란 병 로고부터 섬세한 매장 경험까지 총체적인 디자인도 한몫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저 멀리서 블루보틀 로고를 발견할 때마다 들어가야겠다는 자동 반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역시 입보다 눈이 항상 더 예민하다는 확신이 들곤 합니다. 블루보틀은 올 초에 성수동에 매장을 열 것으로 알려졌는데, 본토인 미국에서조차 매장이 많지 않고 해외 진출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인 것으로 보아 서울을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블루보틀의 서울 입성은 그저 유명 브랜드의 한국 진출이라는 이슈 뿐 아니라 취향 심화, 라이프스타일 태도의 변화도 함께 읽어낼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인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500잔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수요에 걸맞게 국내에도 스페셜티 브랜드와 카페가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은 대형 프랜차이즈와 동네 카페 사이에서 더욱 심화된 맛과 경험을 위해 브랜딩부터 매장 디자인까지 총체적인 경험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물론 커피가 갖는 특별한 정치, 사회, 문화, 예술적 지위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정신을 고양하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이자, 더 나아가 혁명을 부르는 역할까지 해왔습니다. 역사적으로 17~19세기까지 활발했던 프랑스의 살롱 문화는 귀족의 주최로 취향 공유와 지적 사교의 장 역할을 해왔으나, 19세기 후반 문턱이 낮고 누구든 드나들 수 있었던 카페가 등장하면서부터 퇴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유명한 레 되 마고나 카페 드 플로르 같은 곳에서 당대의 지성인들이 모여 생각하고, 글 쓰고,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지금 우리가 카페에 모여서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공공의 사교장 역할을 하던 카페가 1880년대에는 파리에만 약 4만 5000개 있었다는데, 인구 대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치라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프랑스에서 커피가 대중화되면서 카페는 여론의 중심지가 되었고, 결국에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파리의 한 카페에서 발원되기에 이릅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미슐레Michelet가 커피의 등장을 두고 “시대의 흐름을 바꾼 상서로운 혁명이며, 새로운 관습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기질을 바꾼 위대한 사건”이라고 표현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에게는 공공적인 사교 공간, 살롱의 역할을 할 만한 곳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취향을 기르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카페에 가는 것이 될 수도 있고요. 다행스럽게 요즘 서울에는 그런 공간이 속속 문을 열고 있습니다. 이번 호 특집 ‘커피 내리는 사회, 국내 스페셜티 커피 브랜딩’과 ‘지역 문화를 만드는 2019 서울 디자인 스폿’은 아무거나 마시지 않고 아무 데나 가지 않는 까다로운 여러분을 위해 이 시대의 살롱 역할까지 도맡는, 꼭 추천하고 싶은 곳으로만 골라 소개합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면, 주인이 누구인지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요즘 뜨는 그 공간, 누가 디자인했는지도 샅샅이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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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전은경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