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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에 관하여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리뷰

“이곳 건물은 유리로 마감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을지는 몰라도 여름에는 온실 효과로 인해 매우 무더워서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도 이곳에서 일을 못 했다고 해요.” 데사우 바우하우스 투어 당시 건물을 안내하던 투어 가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 ‘유적지’에 대한 설명치고는 꽤나 정직하고 진솔한 설명이었다. 한편으로 바우하우스 신화를 깨는 발언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가이드의 발언에 은근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아카이브가 마련한 상설전은 다시금 ‘바우하우스 신화’에 대해 결정적인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이 전시는 바우하우스의 역사적 맥락과 주요 인물에 관한 내용이 주제별로 구역화되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전시는 한 섹션을 여성 디자이너 혹은 바우하우스의 직물 공방에 할애했는데, 덕분에 직물 공방의 구성원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이곳에서 판매된 제품이 바우하우스 재정을 뒷받침하는 수입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바우하우스에 이렇게 기여를 한 여성 디자이너들이 버젓이 있었음에도 상대적으로 그들의 존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경험은 바우하우스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전환시키는 버튼이 되었고, 나는 그곳 기념품 숍에서 바우하우스의 대표적 여성 디자이너 중 한 명인 마리아네 브란트Marianne Brandt의 포토콜라주 작품집을 구입해 귀국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또 한 권의 바우하우스 여성에 관한 책이 놓여 있다. 안영주 교수가 쓰고 안그라픽스에서 올해 출간한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축소되고 가려진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내가 독일을 방문한 것이 2013년이었으니 7년 만에 바우하우스 여성에게 주목한 책과 다시금 마주한 셈이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기념비적이다. 우선 국내에서 발행되고 한국 필자가 쓴 바우하우스에 관한 책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디자인에 관한 담론은 대부분 여전히 유럽과 북미의 출판 및 번역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저자의 시선으로 기술한 바우하우스 담론은 이루기 쉽지 않은 성취다. 둘째, 독일과 한국이라는 거리 감각과 100년이라는 시차를 바우하우스의 신화 벗기기, 그러니까 탈신화화의 방법론으로 극복했다는 점이다. 약점이 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객관적, 비판적 해독의 방법론으로 채택한 것이다. 그 결과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비평적으로 기념하는 비평서가 되었다. 이 지점은 곧 이 책의 세 번째 의미와 성취로 직결된다. 한국의 여성 저자 안영주가 바우하우스의 여성 디자이너에 대해 썼고, 제작에 현재 가장 역량 있고 다부진 그래픽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 여성 디자이너 박신우가 합세했다는 사실이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여성 혐오적 발언을 했던 사람이고, 책에 기술되어 있듯이 바우하우스가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교육기관이었음에도 여성에게는 여전히 많은 제약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남성 

중심적 사상으로 점철되어 있던 바우하우스에 대해 이 책은 2019년 버전의 여성주의로 반격하고 있다. 앞선 언급한 마리아네 브란트를 포함해 아니 알베르스Anni Albers, 군타 슈 츨Gunta Stölzl 등 총 7명의 바우하우스 여성들을 3부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하나가 저자의 영웅화에 대한 자기 검열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근 1세기 전의 바우하우스 여성들을 호출한, 쉽지 않은 연구와 저술의 결과물인데 글 전반에는 개별 여성 디자이너의 영웅화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이는 저자의 서문에서도 단번에 드러난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다시 읽기’가 그 대상의 업적이나 영향력을 서술함으로써 ‘거장’이나 ‘남성 중심’의 모더니즘 역사를 구성하는 기존의 서술 방식을 답습할 가능성이다. 이는 자칫 대상만을 치환한 채 기존의 역사적 시선을 반복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러한 신중함 때문일까. 책을 덮고 나면 여성들의 개인적 성취보다는 그들을 바우하우스 체제의 수하인으로 굴복시켰던 제도만이 희미하게 남는다. 이 책이 바우하우스 여성 디자이너에 관한 책보다는 그들이 처한 제도에 관한 책으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책 곳곳에 삽입된 박신우의 박진감 넘치는 파편적 사진 그래픽과 몽타주가 텍스트의 신중함을 박력 있게 보완한다. 디자인 역사학자이자 디자이너인 리처드 홀리스Richard Hollis의 말대로 디자인은 ‘사회적 과정social process’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기존 남성 중심적 역사 서술과는 다른 방법론을 채택해야 하며, 이러한 ‘다시 읽기’는 곧 역사 서술의 한 방식으로 거듭 연구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비판적으로’ 기념한다면, 그곳에는 당연히 수십 년간 그 존재감을 발하지 못했던 여성 디자이너들에 대한 칭찬과 찬양이 동원되어도 무방하리라 본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그러니까 이 책을 읽자. 뒤늦게나마 이들을 각자의 위치에서 찬양하기 위해서라도. Let’s celebrate!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축소되고 가려진 또 하나의 이야기>

디자인 페이퍼프레스(대표 박신우), paperpress.kr
안영주
출판사 안그라픽스
가격 1만 6000원



전가경 그래픽 디자인과 텍스트 그리고 사진 이미지 간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관련 연구와 저술을 진행한다. 2012년부터 운영하는 사진책 출판사 사월의눈은 이러한 관심사에 대한 실천이다. 쓴 책으로 <세계의 아트디렉터 10>과 <세계의 북 디자이너 10>(공저)이 있다. 서울과 대구를 분주하게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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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전가경 디자인 저술가 담당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