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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보기 좋은 포스터가 놀기도 좋다

포스터를 보면 전시나 공연, 행사가 재미있을지 혹은 지루할지 감이 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거의 확신합니다. 포스터나 초청장 디자인이 별로인 전시나 행사치고 흥미로운 경우를 못 봤거든요. 행사 아이덴티티나 포스터를 보는 순간 그 수준을 대략 짐작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보기 좋은 포스터가 놀기도 좋다고 할 수 있죠. 최소한 제 경험으로는 이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문화를 디자인하다’, ‘디자인은 공기다’류의 카피가 올라오는 행사도 기대감이 생기지 않아 잘 가지 않습니다. 혹시 가게 되더라도, 포스터도 좋지 않고 카피도 억지스러우면 역시 행사도 별로라는 가설을 확인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기획도 잘하고, 콘텐츠도 잘 만들어놓았다 치더라도 포스터 디자인에 신경 쓰지 않으면 아주 손해라는 뜻이지요.

작년 말 세계적인 연출가가 총감독을 맡은 대작 오페라 시리즈가 개막한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대했습니다. 예매하려고 살펴보니 티켓값이 상당했는데, 공연 포스터를 보는 순간 너무 의아했습니다. 특히 견딜 수 없는 서체! 이건 결코 전문 디자이너가 했을 리 없다! 후원사도 세계적인 기업이고 제작비도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왜 공연 포스터를 이렇게 소홀히 했는지 지금 다시 살펴봐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행사를 표현하는 가장 상징적인 디자인이나 마찬가지인 포스터로 행사 수준을 판단해도 된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포스터가 제일 앞에 선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월간 <디자인> 독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얘기라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편집부에는 매달 다양한 포스터와 초청장, 리플릿 등이 도착합니다. 대부분은 수준이 높습니다. 재료를 실험한 경우도 있고, 진지한 주제의 탐구가 드러나거나 저예산의 작은 행사일지라도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경우 등 다양합니다. 이번 달에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의 전시 관련 포스터와 제작물이 기억에 남는데, 디자이너들과 다양한 협업을 모색하며 기관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내부에 전문 디자이너를 둔 국립민속박물관의 경우 오래전부터 다양한 스튜디오와 협업해왔고, 지금까지도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소금꽃이 핀다> 전시 포스터처럼 ‘박물관 포스터는 유물 사진 하나와 전시 제목만 들어가면 그만 아니냐’는 인식을 깬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국내에 ‘박물관에도 전문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긴 것은 불과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이 무렵은 미술관 같은 문화·예술 분야의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하는 소규모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부쩍 늘어난 시기와도 일치합니다. 물론 관에서 하는 행사라는 티가 팍팍 나는 포스터와 디자인도 여전히 많습니다. 가끔씩 안타까운 포스터나 행사 아이덴티티를 보게 되면 단순히 디자인의 문제를 떠나 그런 결과물을 내고야 마는, 조직의 의사 결정 구조와 위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지난 9월과 10월은 정말 저 역시 다 가보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 전시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습니다. 9~10월이 원래 그렇지만요. 특히 올해는 2년마다 열리는 타이포잔치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등의 대형 행사가 포진한 까닭도 있었지만 신선한 관점이 돋보이는 크고 작은 디자인 전시도 부쩍 많았습니다. 다 가보고 싶어서 메모까지 했건만 기간이 겹쳐서 가보지 못한 전시가 꽤 있었고요. 서울의 크리에이티비티 신을 만드는 행사들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올 하반기를 수놓을,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다채로운’ 2019 F/W 서울의 디자인 페스티벌들을 소개합니다. 지면에 소개하지 않았지만 지난 9월 말 남산 한옥마을에서 음악 페스티벌 변신술이 열렸고, 바이닐 그래픽으로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서울레코드페어도 11월 초에 대기 중입니다. 모두 포스터만 믿고 골라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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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전은경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