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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1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올해 1월은 좀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2020년이 되었으니까요. 우리는 벌써 21세기의 5분의 1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SF 영화의 바이블인 (1968)가 다룬 배경인 2001년도 20년이나 훌쩍 지난 순간을 맞고 보니, 어쩐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그린 2001년이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질 지경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아직 2019년에 속해 있습니다. 2019년이 된다고 했을 때도 약간 으스스했던 까닭은, 아직 냉전 시대였던 1980년대에 만들어진 SF 영화 중에는 유독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인 2019년을 그린 작품이 많았던 탓도 있습니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네오도쿄를 다룬 <아키라>(1988), 핵전쟁 이후 복제 인간의 반란에 무질서로 휩싸인 세상을 그린 <블레이드 러너>(1982), 모든 사회가 폐쇄 회로로 통제되는 시대를 묘사한 <러닝맨>(1987) 등이 그렇죠. 다행히 영화에서 나오던 핵전쟁이나 외계인과의 조우, 인조인간의 반란 같은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생태 재앙으로 인류의 일부만 살아남은 가운데 인간을 복제하는 2019년을 그린 <아일랜드>(2005)의 상황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충분히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로 느껴집니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후손은 사이보그가 되리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답니다. 사실 사이보그와 아이언맨은 이미 우리 현실에 존재합니다.

자신의 몸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하거나 전자 기기를 붙여 신체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바이오 해커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로봇 슈트까지는 아니어도 이미 웨어러블 외골격 로봇을 선보이는 기업이 많고 아우디와 BMW, 포드 등의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직 현장 노동자들에게 외골격 로봇을 지급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현대차처럼 로보틱스를 모빌리티 솔루션의 일환으로 보고 직접 개발하는 자동차 기업도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스웨덴에서는 베리칩이라는 확인용 반도체를 몸 안에 삽입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베리칩 사용은 개인의 선택인데, 이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편리함과 더불어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인간 능력의 확장을 원하는 것이죠. 베리칩 시술처럼 자기 몸에 다양한 실험을 하는 사람을 바이오 해커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바로 사이보그의 시초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몸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20만 달러를 쓴 세르주 파게가 가장 유명한, 초인류를 꿈꾸는 바이오 해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서야 로봇 청소기를 한 대 집에 들인 저 같은 사람은 청소를 하면 할수록 딥러닝을 통해 더욱 똑똑해진다는 얘길 듣고 마냥 일 잘한다고 좋아하기에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역시 으스스해졌죠. 몇 년 전에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를 만났을 때 뇌를 다운로드하는 일은 언제쯤 가능하냐고 물었다가,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이번 생에는 영생을 포기하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다시 뵙게 되면 아직도 그렇게 시간이 걸릴 것 같으냐고 또 묻고 싶어집니다.

유튜브에서 사이보그 관련 내용과 우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있자면, 트렌드를 예측하거나 한 치 앞을 그려보는 일이 왠지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매년 12월에서 1월이면 새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트렌드는 연말 연초에만 집중적으로 주목하면서 밑줄 긋고 기억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일 년 내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신조어나 특이한 현상은 앞으로 트렌드가 될 수 없고요, 소비 트렌드나 마케팅 트렌드 같은 것은 조만간 사라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2011년 1월호에 제가 썼던 ‘디자인 트렌드’ 기사를 다시 찾아봤는데, 당시에 주목했던 가치들은 표현 방법이나 사례가 달라졌을 뿐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어쩌면 2030년에도 비슷할 것이고 2100년이 되어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뭐든지 과잉인 시대에는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고요. 세상이 제아무리 빨리 바뀐다 해도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더욱 심화될 뿐 변함없다는 사실에 왠지 안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트렌드를 아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공부로 터득하는 평소 실력 아니냐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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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전은경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