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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워크 디자인 사용 설명서

도대체 일이란 무엇일까요? 오랫동안 일은 직업이나 직장을 의미했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에 들어가고 수많은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성공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 일의 트렌드는 오히려 ‘퇴사’로 보입니다. 직장에서의 일은 밥벌이를 위한 노동이니 일과 여가를 분리해 즐거움와 성취는 퇴근 후, 혹은 직장 밖에서 찾는 사람이 늘어났고 이런 현상을 ‘워라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진도가 더 나간 사람들은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퇴사를 하고 우리는 지금,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 나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직 하거나 창업했다는 얘기에 고무됩니다.

이제 일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지요. 그리고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재정의도 필요합니다. 일에 대한 개념이 재정의되면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이 달라지고, 우리가 일하는 공간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고, 궁극적으로 우리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과거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일을 잘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일이란 각자 인생에 걸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가는 긴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고무적인 것은 다양한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집단보다 개인을 옹호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500호를 발행하는 월간 〈디자인〉 특집 ‘워크 디자인’에서는 나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길고 큰 화두로서의 일, 일하는 공간, 디자이너의 일에 대해 얘기합니다.

이번 특집 ‘워크 디자인’을 진행하면서 저 역시 일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까, 언제까지 나를 먹여살릴까, 그렇다면 밥을 벌어주는 일만이 일인가, 뭐 이런 의문들입니다. 즉 밥벌이로서의 일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지요.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예견하며 일에 관한 어두운 미래를 선언했습니다. AI와 기술 덕분에 우리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만은 확실해진 이때, 어떤 사람들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위기라고 여깁니다. 먹고사는 문제로만 일을 바라봤을 때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자체가 대단한 공포입니다. 오랫동안 일자체의 성취나 즐거움이 아니라 ‘먹고사는’에 방점을 찍어왔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게 전부인 세상은 일의 가치 역시 떨어뜨리기 마련입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기본 소득에 대한 지지와 관심, 실험은 기술 발전이 가져올 ‘노동 없는 미래’의 대안으로 볼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탈노동의 시대가 인간에게 좀 더 창조적인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진짜 일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크리에이터가 더 크리에이터답기를 바라는 시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에 더 관심 갖는 시대, 우리에게 노동은 분명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제2회 서울워크디자인위크에서 미래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강연한 하야시 치아키 로프트워크 대표는 “디자인은 차별화를 위한 수단이자 문제 결이라는 기존의 정의를 조금 허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는 어떤 것이 과제인지 찾아내고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 진정한 크리이에이터의 역할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디자이너는 멋있지만 조금 힘들었다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그저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표현한 그는 앞으로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또한 “크리에이티브 컴퍼니는 최소한 20년, 아니 100년은 더 유효할 것 같다. 제조의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났고 프로덕트 자체가 아니라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슈가 되었
기 때문”이라는 약간 안심되는 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평생 직장은커녕 평생 직업도 없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렇게 일에 대한 정의, 일하는 방식과 태도, 일하는 장소 등 모든 것이 맞물려 바뀌고 있는 지금, 비록 책 한 권이 속 시원한 답을 드리지는 못해도 여러 가지 관점으로 우리의 일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p.s.
이번 호를 받아보시고 ‘내가 보던 월간 〈디자인〉 맞나?’ 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 같네요. 네, 맞습니다. 월간 〈디자인〉이 지령 500호를 맞아 혁신호를 발행했습니다. 다양한 관점의 정보로 시야를 넓혀주는 잡지의 장점과 한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단행본의 장점을 합친, 책과 잡지의 중간 형태로 포지셔닝한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변화된 콘텐츠를 표현하기 위한 디자인 레노베이션은 신신 & 프론트도어와 함께 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한 제호일 것입니다. 월간 〈디자인〉은 창간호부터 한 제호를 사용했고, 1980~1990년대에 걸쳐 김진평 교수가 디자인한 한 제호를 사용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월간 〈디자인〉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한 제호를 다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성숙해진 디자인 문화와 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원하는 정보가 다르듯 월간 〈디자인〉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책 한 권을 발행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월간 〈디자인〉은 500호 발행과 더불어 토크, 콘퍼런스 등 다양한 멤버십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으로 디자이너, 독자와 함께하는 문은 더 많이 열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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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전은경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