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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물욕 없는 디자인

저의 2021년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서둘러 도착했습니다. 벌써 오면 어떡하냐 싶기도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멋진 캘린더들로 새해가 먼저 온 것이죠. 그리고 이때쯤이면 다가오는 미래에 디자인 산업에서 어떠한 트렌드가 제기되고, 어떠한 이슈가 떠오를 것 같나?라는 질문을 늘 받곤 합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해법을 찾는 데 쏠려 있는 듯합니다. 지난 한해 동안 우리 모두 얼음 상태가 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있었지만, 디자이너들은 슬기롭게 새로운 방법을 찾아 아이디어 나누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의 디자인을 위한 특별 처방이란 게 있을 리가 없지요. 그래서 제게 요즘 관심 갖고 있는 화두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물욕 없는 디자인’, 혹은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의 등장’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갖고 싶고, 써보고 싶은 물건이 많은 물욕의 화신입니다. 디자인 잡지 편집장이라는 직업 상 좋은 디자인을 많이 보러 다니고, 그 결과 욕망의 부추김을 당하는 일도 잦고 기꺼이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점점 물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요! 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끊임없는 소유욕이 경험 가치에 대한 추구로 상당 부분 전환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게 풍요로운 삶이라는 생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겐 어떤 상품과 서비스가 필요할까요? 물건이 없어 만들어내던 시대를 지나 모든 게 흥청망청 넘쳐나는 시대에 ‘필요한’ 물건들은 어떤 가치와 매력이 있어야 할까요? “더 나은 제품을 선택함으로써 더 적게 소비하고 더 오래 소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라고 한 에릭 옐스마 디트로이트 데님 컴퍼니 대표의 말은 이 물음에 힌트를 줍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경험을 주는 좋은 물건과 서비스이지, 더 많은 물건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한편, 무엇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보다 디자인하지 않는 것이 더 고도의 테크닉이 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를 자처하는 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롱 라이프 디자인’을 발견하고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나가오카 겐메이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본래 좋은 제품이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신상품에 묻힌 것을 먼지만 털어 다시 한번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자신의 일을 설명합니다. 즉 새로운 물건을 디자인하기보다는 시간이 증명한 좋은 물건, 롱 라이프 디자인을 선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에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듯합니다.

또한 마르티 귀세처럼 물건을 싫어하는 ‘상업 디자이너’이자 소비 중심 사회의 변수가 되고자 노력하는 ‘전직 디자이너ex-designer’ 도 있습니다. 그가 스페인의 슈즈 브랜드 캠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을 때는 “구입하지 마, 만약 당신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If you don’t need it, don’t buy it”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들이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파타고니아가 1년 중 소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 “덜 사고, 더 요구하세요 Buy Less, Demand More”라는 캠페인을 진행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맨손으로 토스터기 만들기에 도전한 토머스 트웨이츠처럼 옆길로 새나가 야생의 디자인을 개척한 디자이너도 있고요.

디자인이 계획적 진부화를 위한 마케팅 협력자, 제품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기술처럼 이해되던 때도 있었습니다. “디자인은 문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데, 요즘엔 문제를 만드는 디자인이 많다”라고 한 디터 람스의 말도 쉽게 흘려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고요. 이건 단지 디자인에 관한 얘기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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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전은경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