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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서체 시장의 크래프트 맥주, 독립 서체

언어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고, 서체는 여기에 성격과 감정을 담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서체는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추천한다는 두팔체는 위협적이고, 자비란 없을 것 같은 필체로 화제가 되었죠(14쪽). 지금 서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중입니다. 타이포그래피가 다큐멘터리의 내레이터 역할을 맡은 사례도 눈에 띕니다. 기존의 공영방송 다큐멘터리와 사뭇 다른 아트 디렉팅을 선보인 KBS 다큐멘터리 시리즈 〈모던코리아〉, 〈88/18〉 등이 그것입니다. KBS의 아카이브 영상을 이용한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김기조의 타이포그래피가 내레이터로서 서사를 끌고 갑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방송 디자인에서 새로운 시각 언어를 제시함과 동시에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피의 존재감을 높인 것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 박신우가 개성 있는 타이포그래피를 맡은〈더 게이머〉가 눈에 띕니다.

날이 갈수록 서체와 문자를 통한 아이덴티티 구축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의 브랜딩에서 전용 서체 사용효과에 대한 관심이 대두된 것은 2003년 현대카드가 유앤아이 (Youandi) 서체를 기업의 핵심 아이덴티티 요소로 규정하면서부터입니다. 기업을 상징하는 시각 이미지 중에서도 활용도와 지속성이 높기 때문에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목소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이후 국내에서는 십몇 년 넘게 전용 서체 개발 붐이 일고 있습니다. 기업에서 촉발된 전용 서체 개발은 이제 국가, 도시, 종교, 문화계 단체에 이르기까지 브랜딩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아모레퍼시픽 등의 사례처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 배포하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매년 꾸준히 서체 개발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인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2019년에 발표한 을지로체의 후속작으로, 햇빛과 비바람으로 닳아 없어진 을지로 간판의 10년 후를 상상한 ‘을지로10년후체’를 공개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한편 서체도 AI가 디자인하는 시대가 열려 2019년 네이버가 선보인 109종의 ‘나눔손글씨’는 ‘네이버 클로바’ 인공지능 기술이 ‘한글날 손글씨 공모전’에 참여한 사용자 손글씨를 분석해 제작한 것으로 주목받았습니다(16쪽). 이러한 기업의 서체 프로젝트들은 단순한 홍보 마케팅 차원을 넘어 양질의 서체를 통해 한글 시각 문화를 풍성하는데 기여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업 및 기관, 단체의 전용 서체 전성시대를 넘어 독립 서체를 주목해 볼만합니다. 이번 호 서체 견본집 콘셉트는 폰트숍의 창업자이자 서체 디자이너인 에릭 슈피커만Erik Spikermann의 〈폰트북FontBook〉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폰트북은 2006년 개정판에서 90개가 넘는 폰트 회사에서 제작한 32000개의 글꼴 샘플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기업 전용 서체에 대해서라면 월간 〈디자인〉에서 여러 차례 다룬 바 있어, 이번 서체 견본집은 독립 서체 디자이너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립 서체는 에세이에 기고한 박경식의 표현대로 ‘크래프트맥주’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체 시장의 크래프트 맥주 격인 독립 서체 회사들은 기법이나 디자인에 충실하며 제작부터 유통, 홍보에 큰 변화와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100쪽)라고 설명합니다. “수제로 소량 제작하고 그만큼 더욱 깊고 정성이 담긴 맛을 내는 공예 맥주, 크래프트 비어 시장의 성장”처럼 독립 서체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국내 독립 서체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40여 명 수준으로 시장 규모도 아직은 작지만 이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길고도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는 독립 서체 디자이너들의 활약을 알리고 싶은 것이 가장 중요한 취지였습니다. 덕분에 우리의 시각 문화가 이렇게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입맛에 따라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듯이 독립 서체를 더 많이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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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전은경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