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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를 출간한 저자 최범의 평론 30년
디자인은 늘 시대와 맥락을 같이한다. 특정한 디자인이 나타나는 현상은 당시 사회•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 디자인을 이해하려면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읽어내는 비판적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최범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디자인 평론가로 손꼽힌다. 최근 안그라픽스에서 펴낸 최범의 여섯 번째 디자인 평론집 제목은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다. 제목에서처럼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디자인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그는 국가주의, 새마을운동, 공공 디자인, 공예, 전통 등 다양한 키워드에 주목해 디자인과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지난 30년간 평론가로서 저술, 강의, 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쳐온 그를 만났다.



어떻게 평론가의 길을 걷게 됐는지 궁금하다.
군사 정권하에 암울했던 1980년대를 지나 문민정부로 넘어오면서 한국의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밝아졌다. 문화 시대가 개막하면서 다양한 흐름이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문화 평론가의 등장이다. 이전까지 비평의 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대중음악, 영화, 만화 등이 지적 담론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디자인과 미학을 공부했기에 인문학에 기반한 시각 문화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디자인과 공예 평론가로 장르를 구체화했다.

지금은 디자인을 문화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됐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디자인을 산업화의 도구로만 보던 시절을 지나 1990년대에 들어 다양한 문화 담론이 등장했다. 당시 나와 서울대학교 김민수 교수가 디자인을 문화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나에게 디자인이란 ‘한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다. 평소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보고, 사회를 통해 디자인을 본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데, 나는 개별 디자인보다 사회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에서 한국의 사회적 풍경을 바꾼 두 가지 사건을 디자인적 관점으로 지목했다.
디자인을 산업으로 이해하는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디자인을 사회적 풍경으로 봤을 때 지난 100년간 주목할 만한 양대 사건으로 단발령(1895, 1900)과 새마을운동(1970)을 꼽았다. 두 사건 모두 ‘위로부터의 개혁’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단발령이 한국인의 헤어스타일을 바꾸면서 전통적인 복식과 신체도 근대적으로 변형되었다. 초가집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시킨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짧은 시간 안에 전통 주거 형태가 파괴되었고, 그 결과 도시 환경이 급격히 변화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을 주도하고 미술 수출이라는 이념을 제시한 박정희 대통령을(유감스럽게도 그는 디자이너가 아니었지만) 한국 디자인의 변화를 이끈 한국의 윌리엄 모리스 혹은 발터 그로피우스에 비유했다.

디자인 제도와 현실 사이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도시 풍경이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디자인이다. 한국 사회는 디자인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 제도는 현실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한참 뒤처져 있다.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의 디자인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간판문화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이런 분열적 풍경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공공 디자인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디자이너는 한국의 사회적 풍경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책의 말미에서 “디자인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세상이 디자인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디자인의 역할이나 창의력을 무시하고자 함이 아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의 중심에 있다는 유아기적 생각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세상을 읽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적재적소에 제시해야 한다.

얼마 전 클럽하우스에서 양태오 디자이너가 영감을 받은 인물로 최범 평론가를 꼽았다. 홍대 앞 상상마당 아카데미,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PaTI) 등 제도권 바깥에서 젊은 디자이너들과 소통해왔다.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7~8년 정도 강의를 했다. 그때 만난 디자인 전공 학생들,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들에게 왜 수업을 들으러 왔느냐고 물어보면 공통적인 대답이 있었다. 바로 디자인을 하는 의미를 못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을 통해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으러 왔다는 것이다. 디자인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누구도 디자인을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고 동시에 분노를 느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디자인의 가치와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내가 디자인 평론가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015년부터 1년에 한 권씩 디자인 비평 전문지 〈디자인 평론〉(PaTI)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 디자인 담론 전문지로는 1999년 김민수 교수가 낸 〈디자인 문화 비평〉(안그라픽스)과 한국디자인연구회에서 활동한 이들이 참여한 〈디자인/텍스트〉(홍디자인)가 있고, 그 계보를 〈디자인 평론〉이 잇고 있다. 디자인 담론을 발언하는 매체로서 세 번째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언젠가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징검다리가 새로운 디자인 연구자를 통해 나올 것으로 믿는다.

평론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나?
시인 노천명은 ‘시 쓰기는 천형’이라고 했다. 하늘이 내린 벌이기 때문에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시를 쓴다는 얘기다. 무당이 신내림을 거부하면 무병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도 한국 디자인의 이런저런 문제점이 눈에 밟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발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말하자면 비판적인 문제의식이 싹트는 것인데, 나뿐만이 아니라 대화를 해보면 여러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다만 그냥 지나쳐버리는 그들과 달리 나는 문제의식을 붙들고 논리적인 글로 풀어내는 데 몰두한다. 평론을 하려면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론에는 언제나 구체적인 대상이 있고,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전부 만족스러우면 비평이 필요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평론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는 평론가 최범의 지난 30년을 결산하는 책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번 책을 통해 30년 동안 한국 디자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 쏟아냈다. 탈고하는 순간 공허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지금까지가 최범의 디자인 평론 1기였다면 앞으로 2기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동안 디자인과 사회를 연결시켜 디자인 비평을 했지만 이제부터는 사회 비평 쪽에 좀 더 무게를 둘 생각이다. 또 지금까지는 그때그때 벌어지는 디자인 현안에 대해 발언하며 적극적인 개입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비평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어느덧 60대 중반이 되었다. 이제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나에게 1기에서 2기로 바뀌는 하나의 전환점이다. 요즘은 행복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책을 구상하고 있다.


최범 디자인 평론집 시리즈(안그라픽스)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2006)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2008)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2013)




〈한국 디자인의 문명과 야만〉(2016)




〈한국 디자인과 문화의 전환〉(2019)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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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인물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