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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별처럼 빛났던 세 가지 순간 데이비드 보위
우리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1947~2016)를 단순히 뮤지션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영국의 글램록 스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팝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음악, 패션, 영화, 예술, 그리고 디자인까지 거의 모든 대중문화에 걸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쳤다. 음악가였던 그가 이처럼 아이코닉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매 앨범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시 말해 그는 멀티 페르소나의 귀재였다.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페르소나다. 그는 줄곧 자신의 음악적 재정의를 ‘페르소나’에 빗대어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냈다. 이는 시각문화를 다루는 디자이너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경험 디자인 차원에서 보면 서비스나 제품의 타깃층에 맞는 가상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취향과 성격을 부여하고 이에 맞는 홍보 전략을 세우는 게 디자이너의 일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직접 상징성을 부여하는, 쉽게 말해 자신을 브랜딩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안드레 킴, 카림 라시드, 디터 람스…. 기업 브랜딩이나 제품, 서비스에서도 스토리텔링이 강조되면서 페르소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데이비드 보위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다른 가수들과 달리 녹음실에서 앨범을 갈무리하지 않았다. 자신의 외모, 의상, 공연 무대, 심지어 이름과 말투까지 바꾸며 그야말로 롤랑 바르트스러운 발상으로 앨범의 콘셉트에 맞는 음악인을 창조했다. 후술하는 내용은 데이비드 보위의 페르소나 변천사다. 그리스 비극처럼 3막으로 나누어 보위의 음악 역사를 총정리하는데 여기서 보위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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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의 정점: 지기 스타더스트의 등장

첫 번째 페르소나는 1969년에 발매한 셀프-타이틀 앨범 수록곡 ‘Space Oddity’에 등장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향을 받은 이 노래는 광활한 우주로 비행에 나선 ‘톰 소령’의 인간적 고뇌와 단절을 노래하는데 이는 당시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과 함께 조명되며 데이비드 보위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 주류 팝 시장에 안착한 데이비드 보위는 1971년 앨범 〈Hunky Dory〉로 이어질 때까지 우주에 대한 관심과 공상 과학에 대한 상상력을 극대화시켰다. 세기의 명반이자 완벽한 콘셉트 록 오페라인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를 발표한 것도 이 시기다. 음반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는 데이비드 보위의 페르소나 중 하나로 이전 페르소나인 ‘톰 소령’이 앨범 한 곡에 국한되었다면, 지기 스타더스트는 완전한 하나의 서사이자 인격체로 보인다. 성이 분류되지 않은, 혹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합쳐진 안드로진 바이섹슈얼androgyne bisexual 콘셉트의 지기 스타더스트는 당시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터부시하던 ‘퀴어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음악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진하고 화려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젠더를 구분 지을 수 없는 의상을 앞세운 이 생경한 캐릭터는 당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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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간사이 야마모토가 디자인한 의상을 들 수 있다. 가부키 연극과 우키요에 판화에서 영감을 얻은 전위적이고 아방가르드한 패션을 디자인하던 그는 1971년 런던 패션 위크에서 이 의상들을 처음 선보인 이후 킹스로드Kings Road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이를 본 데이비드 보위는 이 의상들이 지기 스타더스트의 콘셉트에 최적화되었다고 판단하고 투어용 무대의상으로 구입한다. 그 결과 데이비드 보위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글램록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2] 이 앨범의 성공 이후 그는 또 다른 파격을 보여주는데 1972년 발매한 여섯 번째 앨범 〈Aladdin Sane〉의 커버[3]가 그것이다. 특유의 빨간 머리와 진한 화장 위를 가로지르는 번개 모양 페이스 페인팅은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수많은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오마주와 패러디를 낳았다. 〈Hunky Dory〉를 지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와 〈Aladdin Sane〉을 거쳐 완성된 데이비드 보위의 이미지는 글램록 비주얼의 정점이었으며 이분법으로 규정되어 있던 성 정체성을 깨뜨리는 거대한 사건으로 남았다.


아방가르드 아트의 시작: 베를린 3부작
데이비드 보위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사실 화려한 분장과 코스튬으로 뒤덮인 페르소나 안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코카인 등 마약에 손을 대면서 페르소나의 인격과 원래 자신의 인격을 구분 짓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러한 상황이 그를 위기에 빠뜨렸다. 시끌벅적한 미디어의 관심과 언론에 이골이 난 데이비드 보위는 휴식할 수 있는 곳을 원했고, 1976년 서독 베를린으로 이주를 선택한다. 베를린은 데이비드 보위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따가운 미디어의 시선도 없었고 도시의 공기는 차분했다. 늘 그 앞에 노출되어 있던 마약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 베를린에서는 이른바 ‘크라우트록’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 중이었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나 노이Neu 같은 밴드가 연주하는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음악이 데이비드 보위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줬다. 또한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을 보며 그는 이념이 낳은 부조리와 비인간성을 돌아보게 되었다.

다시 창작의 혼을 느끼게 된 보위는 록시 뮤직 Roxy Music 출신의 브라이언 이노 Brian Eno를 프로듀서로 초빙해 새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고 그 결과 1977년 열한 번째 정규 앨범 〈Low〉를 발매한다. 그의 음악적 커리어에서 보기 힘들던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앰비언트 연주곡이 여럿 포진한 이 앨범은 ‘데이비드 보위=글램록 스타’라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이미지를 시원하게 깼다. 다음 앨범 〈Heroes〉에서는 기존에 그가 갖고 있던 팝·록 음악의 유산에 전자 사운드와 앰비언트 음악을 적절히 교합해 또 다른 예술적 성과를 이뤄냈다. 이러한 특징은 〈Heroes〉 커버 이미지[4]에도 드러난다. 화려하기 그지없던 1970년대 초 지기 스타더스트 시절과는 전혀 다른, 차가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된 흑백의 이미지에 전위적인 느낌의 손동작,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보위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는 모던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응축한 이미지로 치환된다. 전작과 비슷한 맥락으로 제작한 열세 번째 정규 앨범 〈Lodger〉는 앰비언트에 이어 월드뮤직에까지 깊은 탐구를 보이며 그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렇게 베를린 3부작은 마무리가 되고 데이비드 보위는 성숙하고 실험적인 예술가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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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이 되어 화성으로 돌아간 데이비드 보위: 블랙 스타
런던으로 돌아온 데이비드 보위는 또 다른 변신을 꿈꾼다. 뉴로맨틱스의 향기가 한껏 담긴 앨범 〈Scary Monsters〉에 이어 점점 대중적인 음악으로 선회했으며 1983년 발매한 〈Let’s Dance〉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록스타가 아닌 팝스타로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다소 부진한 음악적 성취에 평론가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1980년대를 맞이한 데이비드 보위는 전작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한다. 저물기 시작한 해는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1990년대에 들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지만 더 이상 영광의 시기는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데이비드 보위의 20세기가 마무리된다. 2000년대 초반 몇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나가지만 역시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투어 도중 찾아온 심장마비 증세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는 모든 활동을 멈춘 채 은둔자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고요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생각은 없었다. 2013년 기습적으로 싱글 〈Where Are We Now〉를 발표했는데 원낙 비밀스럽게 진행한 프로젝트라 아무도 그의 컴백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후 스물두 번째 정규 앨범 〈The Next Day〉가 모처럼 이슈가 되며 다시금 차트 정상에 오른다. 〈the Next Day〉의 음반 커버[5]를 살펴보면 1977년 발매한 베를린 트릴로지 중 두 번째 앨범 〈Heroes〉의 커버 위에 타이틀 이름을 지우고 흰 면으로 가린 데이비드 보위의 얼굴 위로 ‘The Next Day’란 타이틀을 배치했다. 이는 데이비드 보위가 예술적으로 가장 정점에 섰을 때로의 귀환을 암시하는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보위는 이 앨범 이후 또다시 긴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훗날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그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간암 증세가 악화되어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 그는 마지막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2015년 첫 싱글 〈Black Star〉를 공개했고 곧 두 번째 싱글 〈Lazarus〉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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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둡게 점철된 가사와 난해한 곡 구성으로 인해 데이비드 보위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곧 이를 깨닫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2016년 1월 8일, 69번째 생일날 정규 앨범 〈Black Star〉를 발매하고 이틀 뒤 지구에 영원한 이별을 고한 것이다. 대중은 그의 죽음과 〈Black Star〉[6] 앨범의 상관관계를 깨닫고 마지막까지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 데이비드 보위에게 깊은 경외감을 느꼈다. 전작 〈The Next Day〉도 앨범 커버를 맡았던 조너선 반브룩Jonathan Barnbrook이 디자인한 음반의 하얀색 배경 중앙에 큰 검은 별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 5개의 별 세그먼트는 B.O.W.I.E 라는 단어를 상징한다. 이는 마치 검은 별로 치환된 데이비드 보위의 묘비 같은 느낌이다. 새까만 앨범 속지 위에 반타블랙에 가까운 검은 텍스트(가사)를 유광 엠보싱 처리한 디자인은 데이비드 보위의 묘비명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세상엔 수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기 인생의 마지막 순간마저 예술로 표현하려고 했던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죽음이라는 한없이 두려운 상황 앞에서도 초연히 유서를 써 내려가듯 앨범을 준비한 뮤지션은 검지만 찬란한 별이란 세 번째 페르소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MoR(Master of Reality)
블랙 사바스에서 만나 화이트 라이온에서 갈라진 록·메탈광들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황규철과 디자인 저술가 박경식이 결성한 프로젝트 동아리. 두 사람은 서울, 인천, 경기, 오사카, 교토, 도쿄, 토론토, LA, 베를린까지 바이널을 디깅하면서 나눈 음악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유튜브에서 MoR(엠오알)을 검색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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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MoR 담당 박슬기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2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