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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Editors letter 찰나의 일상, 가구라는 세계

학부 시절, 전공 수업에서 본 흑백 사진 하나가 뇌리에 깊이 남았습니다. 르코르뷔지에가 자신의 네 평 남짓한 오두막에서 반바지만 입은 채 스케치에 집중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습니다. 새어 들어오는 빛을 오롯이 받으며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린 채 담담히 손을 움직이는 노건축가의 모습에 경외감마저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친환경 문제가 대두된 요즘에는 그를 ‘건축계의 베르길리우스’(*)라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그의 카바농에서는 그런 ‘악마적인’ 기운 따위는 느낄 수 없습니다.

특집 기사 ‘공간 디자이너도 가구 디자이너다’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다시 이 사진을 보았는데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더군요. 특히 그가 앉아 있던 의자와 테이블이 눈에 띄었습니다. 르코르뷔지에의 모듈러 이론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이 세계에서 가구는 단지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세계의 표상이 됩니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런 말도 남겼죠. “의자는 건축이고, 소파는 부르주아다.” 이번 호에 디자인 프로젝트로 소개한 알로소의 〈Inspired Lazybones〉전을 보면 이제 ‘부르주아’ 대신 ‘MZ세대’라는 말을 넣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의 말 중 절반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사랑하는 가구는 대부분 시대를 초월한 마스터피스입니다. 프리츠 한센은 올해 150주년을 맞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미드센추리 모던에 열광하죠. 물론 그긴 생명력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런 디자인만 가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각 시대마다 시공을 채운 무명의 가구가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대부분 금세 기억에서 지워졌겠지만, 찰나일지 몰라도 누군가의 체중을 견디며 의지가 되어준 그것을 무가치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번 호에 소개하는 공간 속 가구 역시 시대의 공기를 한껏 머금고 있습니다. 일부는 브랜드라는 꽤 근사한 타이틀을 얻는데 성공했지만, 상업 공간의 가구는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이런 가구는 아마 공간과 운명을 함께할 것입니다. 트렌드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빨라 3년만 버텨도 ‘용하다’는 소리를 듣는 한국에서 이런 가구는 그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짧은 삶을 누리는 게 냉엄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 시도한 ‘톺아보기’가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개하는 가구가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바라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여기 있었노라’고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가구를 대변하고 기억하고 기록했기에 월간 〈디자인〉 제533호는 제 사명을 다했습니다. 디자인의 일상성. 담당 기자로부터 처음 기획 글을 받아 읽었을 때 이 대목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소위 아트 퍼니처를 표방한 작품 같은 가구나, 유럽에서 물 건너온 유명 브랜드 가구는 줄줄이 꿰면서 정작 일상 속 디자인의 중요성은 간과하곤 한다.”

모든 것이 자극적이고 과해지지만, 경험의 깊이는 역설적으로 얄팍해진 세상에서 우리는 쉬이 그 일상의 소중함을 상실합니다. 꼭 이번 특집 기사에 소개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발을 딛고 있는 그곳의 가구에 한 번 더 눈길을 줘보는 것은 어떨까요? 제가 카바농의 가구를 되돌아본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일상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 로마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 단테는 〈신곡〉에서 그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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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최명환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