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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이인위미里仁爲美
작년 말 팔자에도 없는 신축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해외에서 잠깐 아파트에 산 적은 있지만, 국내에서는 부모에게서 독립 후 첫 아파트 생활입니다. 얼추 반년 정도 지났는데 삶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입니다. 전형적일지언정 깔끔한 주거 공간, 다양한 편의 시설, 편리한 디지털 시스템…. 출퇴근 때마다 안구를 고문하는 단지 조형물만 제외하면(도대체 주민들과 무슨 원한 관계가 있길래 저런 걸 만들었을까 싶습니다) 그럭저럭 괜찮다고 여겨집니다.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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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UAM이 만들어낼 디스토피아의 풍경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모빌리티)에 대한 기사나 논문을 찾아보면 하나같이 낙관적인 미래를 점치고 있다. UAM은 미래 모빌리티의 총아이며 새로운 산업의 솔루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UAM의 미래는 이상하게도 결코 밝지가 않다. 이야기는 1998년, 당시 내가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정릉동이라고 하면 다들 좋은 동네 산다고들 했다. 어느 날 집 앞에 내부순환도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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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1센치미터를 위한 노력
건축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신입 사원 시절, 계단 도면을 그리는 일이 주어졌다. 중요한 판단이 필요치 않은, 신입 사원이 하기에 적절한 일을 골라 맡긴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미 그려놓은 도면이 있으니 그 도면대로 치수에 맞게 변형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었다. 어렵지 않게 일을 마치고 내가 그린 도면과 다른 사람이 이미 그려놓은 도면 2개의 검은 창을 띄워 놓고 찬찬히 비교해보다가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입 사원이 그린 도면이니 자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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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힙합 속 디자인
… Don’t push me cause I’m close to the edge I’m tryin’ not to lose my head Its like a jungle sometimes It makes me wonder how I keep from going under… 밀지 마, 나는 벼랑 끝에 있으니까 정신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니까 내 삶은 때론 정글 같아 어떻게 잡아먹히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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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멈춰 있는 차는 길을 내지 못한다
“편집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적응이 될 만도 하건만, 여전히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뒷머리가 쭈뼛 섭니다. 관리자라면 아마 공감하겠죠. 아니나 다를까, 기자 한 명이 퇴사의 뜻을 밝힙니다. ‘愛’까지 붙이는 건 과분하지만 나름대로 아끼는 팀원이었기에 그 결정이 야속하다 싶어 눈을 흘겨봅니다. 물론 소심하게 뒤통수에 대고 흘긴 탓인지 별 효력은 없습니다. 그러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길이라는 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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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실패를 감수하는 전시
부산현대미술관은 개관 5주년을 맞이해 MI 재정비 계획을 세웠다. 공공기관의 일반적인 용역 계약 방식을 탈피해, 공모 과정을 거쳐 여러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MI 시안을 전시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다. 4월 29일부터 7월 9일까지 진행하는 〈부산현대미술관 정체성과 디자인〉전이 바로 그것이다. 개막 후 시민 투표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최종 작품을 선정한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행정 절차에 익숙한 일부 기업과 디자이너들이 용역을 독점하는 구도를 탈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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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전시 도면에 관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전시 도면에 관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이제껏 미술사학이나 큐레토리얼curatorial 연구에서 전시 도면(floor plan)에 대한 적절한 조명은 없었다. 크게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전시가 할 말을 다 한다는 일종의 신화 때문이다. 전시 기관이나 공간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전시된 작품, 작가, 전시가 따로 또 복합적으로 한다고 여겨진다. 사회학자이자 박물관 연구자인 토니 베넷Tony Bennet이 말한 ‘전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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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포스트 뮤지엄 시대의 디자인 딜레마
작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문신 文信 : 우주를 향하여〉(이하 〈문신〉)가 논란이 되는 모양이다. 전시 내용이 아닌 디자인이 그 원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작 품을 압도하는 좌대의 날카롭고 복잡한 형상, 여러 질감과 색 감이 뒤섞인 공간과 디스플레이 디자인이 전시 관람에 방해 가 되었다는 문제 제기가 잇달았다. 국립 미술관에서 열린 현 대미술 전시라는 점, 작가의 작품 세계와 무관한 ‘과잉’된 장 치를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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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에피고넨의 시대, 단칼에 끊어내기
‘에피고넨epigonen’을 아시나요? 본래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 전쟁에서 전사한 7인의 용사의 자식들을 이르는 말인데,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위대한 예술이나 사상을 모방하는 아류’라는 의미로 전용됐습니다. 또 선구자가 사라진 뒤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사꾼이 군웅할거하는 것을 ‘에피고넨의 시대’라고 부르죠. 최근 미드저니가 예술가의 화풍을 애석할 만큼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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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호
영혼의 단짝, 스탠리 돈우드와 톰 요크 그리고 라디오헤드
〈My Iron Lung〉(1994)〈The Bends〉(1995) 1938년 미국 컬럼비아 레코드에 고용된 알렉스 스타인와이스Alex Steinweiss는 단순히 음반을 보호하는 패키지를 넘어 시각예술 작품으로서의 음반 커버를 탄생시켰다. 이후 앨범 커버는 한 뮤지션의 음악적 분위기와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LP가 보급되자 앨범 아트워크는 더욱 발전하게 됐다. 1950년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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