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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숨도시
도시계획 총괄 디자이너가 140세를 넘긴 노인이라는 것에 떠들썩해진 지도 49개월이 지났다. 잔잔한 파장을 지닌 채 대국민 발표회에서 처음 소개된 ‘셀리’는 한국계 독일인이었고, 엄밀히 따지면 한국인도 아니었으므로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인터넷에는 #비리 #수사 #형평성 #불공정 따위의 키워드가 남발했으며 그녀가 그간 해온 작업물을 꺼내오며 #올드스타일 #실버타운 #구시대 따위의 단어가 뒤이어 따라붙었다. 당시 그녀를 둘러싼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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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100년 전 10월에 김소월의 '산유화'가 <개벽>에 발표되었듯이
100년 후를 생각한다는 것은 100년 동안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 남은 2023년의 몇 달부터 시작해, 2024년에서 2123년까지의 하루하루를. 이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100년 후의 모습이 된다. 100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 100 년 후를 생각했을 것이다. 1923년 여름날 누군가가 100년 후의 서울을 상상했을 것 이다. 1923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5년이었다. 1월 1일 남대문역이 경성역으로 개명 되었다. 5월 15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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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도서관에서
예전에는 언제 어디서든 도서관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이런 식으로. 평범해 보이는 부부가 있는데 말이지, 그 부부는 아이를 낳고 이런저런 어려움과 슬픔 그리고 그보다 짧은 찰나의 행복을 함께 나누고 수십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아이들은 자라고 그러던 어느 날 말이야, 스스로 부인이라 생각 하는 여자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환상임을 깨닫고 자신은 누군가와 함께 산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그런 소설 말이야. 그거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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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서울에 어울리는 것
목표 네가 말했다 비전 네가 재차 힘주어 말했다 꿈네 목소리에 매가리가 없었다 가장 먼 곳을 떠올렸네 가장 강한 것을 갖고 싶었네마천루 옥상에서 보는 별은 커다랗지 손을 내뻗으면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수천 개의 계단을 걸어 내려와 지면 위에 섰을 때 바람이 불었다안착인가, 불시착인가훈훈한 흙내가 났다 작정하고 쌓아 올리는 게 아니라 순리대로 몸피를 키우는 냄새시간이 천천히 흘렀네 둘러싸고 싶었네 둘러싸이고 싶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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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마지막 서울을 훔쳐라
구영대와 이상도는 30년 동안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일종의 프로젝트형 프리랜서라 불러야 할까. 각자 일을 하다가 큰 건수가 생기면 연락해서 힘을 합친다. 각자의 전문 영역이 있다. 구영대는 빈집을 귀신같이 터는 도둑이고, 이상도는 금고와 프로그램 해킹과 CCTV 전문가다. 30년 전 우연히 함께 일을 한 후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매료됐고, 오랜 기간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계획하고 수정하고 완성하고 성과를 배분하는 과정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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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친애하는 서울시장님께
저는 시장님을 모릅니다. 몇몇 시 행사에 불려 가 먼발치에서 환영 인사 하시는 모습을 본 것이 고작이죠. 아, 하지만 인연은 꽤 깊네요. 서울시장 4기 시절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서울디자인올림픽에 작가로 참가한 적이 있거든요. 사실 그땐 사회에 막 진출한 새내기 디자이너라 이력서에 한 줄 쓸 요량으로 발을 담근 건데 결과적으로 그리 쓸모는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네요. 드라마틱한 시장님의 복귀는 잘 지켜보았습니다. 최근에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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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
화장품 회사로 살아남기
2010년대 초·중반에는 화장품 사업을 한다고 하면 “와, 그래요? 화장품 사업이 요즘 잘나간다면서요?”라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사뭇 다르다. “아, 그러세요? 요즘 화장품이 많이 어렵다면서요?”라고들 한다. 전 국민이 알아주는 힘든 업종이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과도한 경쟁이다. 대한민국에 화장품 기업 3만 개 시대가 도래했다. 1990년대에 화장품 기업은 100여 개에 불과했는데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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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
리테일 공간의 주인공은 제품이 아니다
리테일 공간의 주인공을 제품(merchandise)이라 생각하기 쉽다. 만약 리테일 공간이 단순히 고객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물리적 거래의 장소라면 가장 주목받아야 할 것은 판매 대상인 제품이 맞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의 가장 큰 역할이 경험이 된 지금, 리테일 공간의 주인공은 무엇일까? 여전히 제품일까, 아니면 브랜드일까? 혹은 고객일까? 2023년 마케팅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리테일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어인 리테일테인먼트retail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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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
지금 한국의 스몰 브랜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요즘 뷰티업계의 스몰 브랜드 신을 압축하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몇 년 사이 스몰 브랜드의 론칭이 범람했고, 규모와 관계없이 개인의 취향과 감도로 승부가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단단한 무기만 있다면 다윗도 상대해볼 만큼 기회가 많아졌달까. 작은 브랜드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사소한 이슈를 공유하고 소통하며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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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
우리, 이제 다시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됐습니다. 고작해야 10여 년 전 한 은막의 스타가 내뱉은 “예뻐야 돼, 무조건!”이라는 대사가 반짝 유행했을 뿐이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가치인 양 강요받아온 (그리고 그걸 꽤나 순순히 수용한) 저 같은 40대 대한민국 수컷은 경우가 더 심합니다. 자신의 내·외면을 성찰하고 풍성하게 가꿀 기회를 채 가져보지 못한 채 자랐기 때문에 (학문적 접근 정도를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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