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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실천하는 일상을 디자인한다 [주목받는 디자이너 11인] 일상의 실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급변하는 시대. 3D 프린팅, 사물 인터넷, 웨어러블 등 새로운 기술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운 개념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개념을 익혀야 하는 요즘 융합, 다학제, 디자인 혁신과 같은 단어는 시대를 규정짓는 중요한 키워드임에도 피곤하게까지 느껴진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에 수많은 생각의 결을 나름의 철학으로 정리해 묵묵히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디자이너들이 그래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청량하고 반갑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무관심한 채 은둔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새 기술에 민감한 뉴미디어와 제품,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부터 가구, 그래픽 디자인까지, 월간 <디자인>이 올해 주목하는 11명의 디자이너들은 오늘도 세상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귀 기울이며 그들만의 디자인 세계를 가다듬고 있다.

왼쪽부터 김어진, 권준호, 김경철

2012년 영국 디자인 위크가 ‘올해의 떠오르는 스타’ 중 한 명으로 선정한 권준호(1981년생)와 디자인 스튜디오 ‘핸드 프린트’로 활동하던 김경철(1982년생), 김어진(1982년생)이 2013년 결성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NGO 및 문화・예술 분야에서 여러 그래픽 결과물을 만들고 있다. www.everyday-practice.com



독일의 사상가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했다. 시대와 역사를 뒤흔든 대참사를 외면한 채 아름다움만을 노래하는 예술가들이 그에겐 직무유기처럼 느껴졌으리라. 그의 표현이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오늘날 혼란스러운 정국과 연이어 터지는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아름다운 형상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유일한 책무일까? 2013년 결성한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은 바로 이런 물음에서 시작했다.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어진과 김경철은 상업적 도구로만 이용되는 디자인에 회의감을 느꼈다. “학교에서는 디자인이 좀 더 공익적이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이상과 현실 간에 괴리감이 느껴졌습니다.” 고민 끝에 두 사람은 일상의 실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튜디오 ‘핸드 프린트’를 결성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디자인 프로젝트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RCA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며 고민을 공유하던 권준호가 합세해 일상의 실천을 완성했다.

1 텍스트-이미지 변환 장치 
KCDF에서 진행한 <프린팅 스튜디오 쇼>에 전시한 설치 작품. 관람객이 타자기로 텍스트를 작성하면 자음과 모음에 부여된 28가지 색상의 잉크가 종이 위에 분사되어 무작위의 이미지를 만든다. 텍스트를 작성하는 사람의 생각을 이미지로 번역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2 우리가 미세 먼지에 대처할 시간, PM10 
환경 단체 ‘환경정의’가 미세 먼지에 대한 다양한 통계와 정보, 예방 등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기획한 캠페인이다. 무거운 이미지 대신 미세 먼지가 끼치는 영향을 과장된 도구로 표현해 관심을 유도했다. 
3 2013 SBS 사회 공헌 보고서 
2013년 한 해 동안 진행한 SBS 사회 공헌 사업의 개요와 성과를 소개하는 보고서다. 자수로 제작한 표지를 활용해 SBS 사회 공헌 사업이 추구하는 인간애에 기반을 둔 긍정적인 가치 확산을 표현했다. 
4 <로우 테크놀로지:미래로 돌아가다> 전시 포스터 
전기회로도의 이미지와 스크린에서 구현되는 원초적 색상을 활용해 전시의 특성을 표현했다. 
5 후마니타스 단행본 시리즈 
‘인권, 민주주의, 노동’을 키워드로 발행하는 책의 표지 디자인.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시각 장치를 사용해 출판물의 카테고리를 명확히 구분했다.

현재 이들은 청년허브, 녹색연합, 환경정의, 후마니타스 출판사 등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어가는 중이다. 주로 비영리 단체를 상대하는 만큼 기업과 협업하는 일반 디자인 회사와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는데, 이런 점이 일상의 실천을 특별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따른다. “일부 단체들은 디자인보다 활동가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재능 기부만을 원한다거나 우리를 그저 하청업체 정도로 여기기도 하죠. 보통 많은 대화를 거치며 관점의 차이를 좁혀갑니다.” 프로젝트가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충분한 대화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 다행히 지금은 많은 단체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상의 실천은 짧은 연차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안정적 궤도에 들어서고 있고 영역의 폭 역시 넓혀가는 중이다. 지난해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제품을 선별해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 ‘일상의 물건(everydayobject.kr)’을 선보였고 테이크아웃 드로잉과 난민을 주제로 한 전시 <난센여권>을 공동 기획하기도 했다. 또 세월호를 주제로 한 설치 작업 을 선보이고 KCDF 갤러리 기획전 <프린트 디자인 쇼>에도 참여하는 등 자체 프로젝트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15년에는 지금까지 만든 프로젝트를 모아 전시도 열 생각이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는 의외로 소박한 대답을 내놓았다. “스튜디오 이름처럼 일상 속 실천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규모가 커지더라도 작은 단체나 소박한 프로젝트를 간과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3명의 젊은 디자이너는 거창한 구호보다 삶 속에서 일구는 작은 움직임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꽤 일찍 터득한듯 했다.

글: 최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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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