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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누락된 주변과 그 이상까지 내다보라


세운상가가 자리한 을지로 전경. ©노경

도심에 둥지 튼 거대한 괴물
세운상가는 1968년 준공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강남의 타워팰리스보다 30년 더 빠른 셈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최첨단 고급 복합 타운. 다양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아파트가 아니었던 세운상가에는 당시 드물었던 실내 골프 연습장과 피트니스 클럽도 있었고 교회와 학교도 들어설 예정이었다. 준공 후 언론과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순식간에 서울의 명물로 떠올랐는데, 한 신문에서는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이 부를 상징하는 것이라 유명인과 스타들이 앞다퉈 입주했고, 서울 중심에 있어 종로와 중구로 걸어서 출퇴근하기 편해 인기가 더했다고 보도했다. 세운상가는 하나의 건물 이름이 아니라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8km에 이르는 4개의 건물군 8개 건물을 통칭한다.

역사는 뜻밖에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3월 일제는 종로에서 필동까지 길이 760m, 폭 50m의 직사각형 대지를 소개공지대(전쟁 중 폭격 등으로 발생한 화재가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빈 광장)로 밀어 버렸다. 이후 이곳은 광복과 미 군정, 6ㆍ25전쟁을 거치며 방치되고 청계천 변같이 이재민과 피란민이 모여드는 판자촌으로 전락했다. 1961년 5ㆍ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낙후된 이 지역에 대해 재개발 계획을 세우고 ‘불도저’ 김현옥 전 서울시장이 부임하자 이 일을 신속하게 밀어붙였다. 원래 도시계획에는 남산에서 창경궁까지 자연을 연결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김현옥 시장은 민자 유치로 주상복합건물을 만들기로 한다. 무허가 건물 2000채를 싹 밀어내고 1966년 9월 아세아상가 기공식 때 ‘세운상가 (世運商街)’라는 휘호를 크게 썼다.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인데 덕분에 일대가 세운상가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네덜란드의 도시 행정 및 계획가 제프 헤멀(Zef Hemel)은 세운상가에 대해 “모더니즘의 이상을 담은 독특하고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이라고 평가한다. ‘모더니즘의 이상’이란 무슨 뜻일까?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적인 계획을 망라했다는 것이다. 1966년 재개발을 앞두고 고민하던 김현옥 시장은 당시 젊은 건축가 김수근을 만나 당대 최신 건축 사조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인공 대지’, ‘공중 정원’, ‘보행 덱’, ‘공중 광장’ 같은 최신 모더니즘 건 축 어휘를 총동원한다. 3층에 인공 덱을 통해 남북 1km를 보행 전용로로 만들고 이 보행 덱을 따라 쇼핑몰을 배치한다. 지상은 자동차 전용도로와 주차 공간으로 만들어 보행자와 차량을 분리한다.

이는 지금도 사용하는 개념으로 프랑스 파리 외곽 지역의 현대식 상업 지역인 라데팡스(La Defense)나 인천시 송도에 있는 연세대학교 캠퍼스 등에서 볼 수 있다. 1층부터 4층까지는 상가를, 6층 이상은 주거를 계획하고, 5층은상가와 주거의 중간 지역으로 공원과 놀이터, 시장을 배치한다. 아파트엔 옥상 정원을 두고, 적극적인 채광과 환기를 위해 중정엔 유리 아트리움까지 설계했다. 주거와 상업 시설이 섞인 주상복합건물의 개념을 넘어 건물 자체가 하나의 도 시처럼 기능할 수 있도록 4개의 각 블록에 동사무소와 우체국, 은행까지 뒀다. 도시가 건축이며 건축이 도시로 확대되는 당시 유럽의 메가스트럭처(megastructures) 개념이나, 김수근이 유학했던 일본의 건축가 단게 겐조의 메타볼리즘 (metabolism)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 일본과 유럽의 첨단 건축을 실현할 기회였던 셈이지만 열쇠를 쥐고 있던 사업주체가 8개 건설사와 조합이었던 탓에 시공 과정에서 설계 개념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덱은 마른내길에서 끊어지고 아트리움도 사라졌다. 1층에는 차량뿐 아니라 보행자도 다니면서 3층 덱의 기능이 점점 퇴색됐다. 상가 위 지붕을 인공 덱으로 덮어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려던 곳은 슬럼화 되고, 거친 콘크리트는 시간이 지나자 점차 흉물로 변했으며 거주 공간과 상업 공간이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또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종로, 청계천 같은 지역과 달리 세운상가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기존 구조와 어울리지 못했다. 결국 이상을 꿈꾸던 불도저 시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근의 합작품이던 세운상가는 실현하지 못한 이상으로 남았다.



 

세운상가 내부와 5층 중정. ©노경


잠자던 도심의 공룡을 깨우다
세운상가는 신성-삼풍-대림-세운상가 4개의 덩어리로 이뤄졌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기차 같다. 체적만 12만㎥에 이른다고 하니, 거대한 매머드나 도심의 공룡이라는 호칭도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시대를 풍미한 세운상가는 1980년대로 접어들며 쇠락한다. 을지로와 종로 일대에 고급 백화점과 쇼핑몰이 들어서고, 본격적인 강남 개발을 통해 한강 변에 현대, 삼익 등 아파트가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빠져나갔다. 그나마 전자상가가 명맥을 유지했지만 새로 들어선 용산전자상가에 이내 자리를 내줬다. 짧은 시기 서울 한복판에서 일성을 토한 공룡은 점점 ‘흉물스럽고 지나치게 위압적’이라고 외면당했다. 북한산에서 종묘, 남산과 용산, 한강으로 연결되는 도심 녹지축을 끊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이 거대한 슬럼을 철거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2000년대들어 상가를 허물고 공원화한다는 서울시의 청사진이 발표됐지만 진척되지 않았다. 그리고 2003년 시작된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청계천을 가로질러 아세아상가와 청계상가를 잇는 공중 보행 덱과 을지로 위의 보행 덱마저 각각 철거된다. 잠자던 공룡을 본격적으로 깨운 건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세운상가 철거와 공원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오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종묘와 청계천을 잇는 녹지 축을 다시 조성한다고 밝혔다. 2006년 7월, 8개의 국내외 건축 사무소 컨소시엄을 통해 주변 예지동 일대의 4개 도시 블록에 대한 국제 현상 설계를 진행한다. 그러나 2009년 4월 복잡한 이해관계로 사업이 난항을 겪자 종로에 면한 현대상가 일부만 철거하고 그 자리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기구한 공룡의 운명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는데, 2014년 3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며 기존 전면 철거에서 보존으로 방향이 180도 급선회한 것이다. 30년가까이 보존과 재개발, 재생을 오가는 사이 상가와 주변 지역 시민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더 얽혀버렸다. 서울시는 더는 손대기 어려운 민간의 사적 소유 영역을 빼고, 서울시에 소유권이 있는 공공 영역인 공중 보행 덱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 일종의 ‘주사요법’인데 공공 영역을 재생해 사람들을 불러모으면 자연스럽게 사적 영역도 스스로 재생한다는 논리다. 2015년 2월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 공간 설계 국제 현상 공모’를 진행 한다.

같은 해 6월 ‘현대적 토속’(이_스케이프 건축사사무소)이라는 당선 안을 뽑고, 지난 1월 28일 ‘다시ㆍ세운 프로젝트’의 첫 삽을 뜨게 된다. 이 계획에 따르면 2단계로 나누어 2017년 5월까지 1단계(종로에서 청계 대림상가 구간) 계획을 마치는데, 낡은 보행 덱을 보수하고, 청계천으로 단절된 세운상가 가동에서 대림상가 구간의 공중 보행교를 다시 연결하며 2~3층에 이르는 입체 덱에는 컨테이너박스 30개를 끼워 넣어 전시실, 휴게실, 화장실 등으로 사용한다는 청사진이다. 박시장은 “1970년대 세운상가가 대한민국과 서울의 3차 산업혁명을 이끈 요람이었다면, 이제 세운상가는 서울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창의 제조 산업의 혁신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세운상가는 시장에 따라 바뀌는 운명이라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다시ㆍ세운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50년 가까이 된 세운상가는 1982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이제 세월의 무게에 눌려 스스로 숨 쉬기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지주와 임차 상인 간 이해관계로 질척거리는 동안 기운은 쇠락했다. 그사이 많은 사람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또 많은 사람이 떠났다. 현재 160개가 넘는 공실이 있고, 20% 가까운 사업체가 자리를 떠났다. 한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사일과 탱크도 만들 수 있다’던 이곳이 이제 ‘추억의 공장’으로 전락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잊힐뻔한 과거의 기억을 깨운 건 뜻밖에 젊은 작가들이다. 최근 을지로와 세운상가 일대에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작업실을 열고 활동하는데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슬럼화된 낡은 공간의 독특한 오라와 저렴한 임대료 때문이다. 게다가 일대엔 1~2명이 운영하는 수공예 공방이 많은데 다양한 재료와 기술이 이곳에만 있는 장점이다. 이곳은 ‘시간의 단층’을 보는것 같다. 즉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과 일제강점기에 지은 적산가옥,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상인들, 소규모 사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날것 그대로의 공간이자, 여러 시대가 만들어온 다층의 조직이 생생히 살아 있다. 세운상가엔 ‘800/40’, ‘300/20’, ‘200/20’ 같은 공간도 있는데 숫자 그대로 200/20은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공간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세운상가 좋아요, 대림상가 좋아요, 청계상가 좋아요’같은 행사를 열어 장소 특정적 전시를 하고 이 장소가 지닌 아름답고 문화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알리는 작업을 한다.

200/20은 일종의 ‘테마 서점’인데 매년 한 주제를 정해 특정 분야의 책을 큐레이션해서 전시와 판매도 한다. 800/40의 김양우 작가는 “서울에서 이런 장소와 시간성을 가진곳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며 “혹시 이곳이 재개발되고 사람들이 몰려오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지 모른다”고 불안해했다. 이 일대엔 젊은 건축가들도 있다. 이들은 지난해 <서울ㆍ서울ㆍ서울> 전시를 열었는데, 서울의 ‘나머지 공간’에 집중한 전시가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을지로 일대 작업실에서 열렸다. 세운상가 4층의 ‘Space_바421’에선 곽윤주가 세운상가와 같은 시기에 지은 네덜란드의 한 집합 주택에서 현재 일어나는 커뮤니티의 변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도 했다. 젊은 작가들은 기존 장소에 대한 이미지를 전복하고 전혀 다른 것을 만들거나, 소소한 순간을 포착하는 등 새로운 장소성을 고민한다.


그 이상을 내다보라
다시 깨어난 공룡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자 새로운 관점과 생각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유례 없는 고성장 시대를 풍미한 대규모 개발. 하지만 그 한계는 자명한데, 이제는 모든 것을 없애고 다시 짓는 대규모 개발 계획에 대한 한계를 비판할 뿐 아니라 세운상가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지난해 3월 국제도시계획 심포지엄인 ‘대규모 계획, 그 이상’이 열렸다. 세운상가같이 대규모 개발 이후에 관한 이야기는 서울뿐 아니라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모든 현대 도시의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세계적인 석학들의 생각을 모은 <세운상가 그 이상>(공간서가)이란 단행본도 나왔다.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세운상가를 하나의 시험대로 보고 어떻게 개발하고 발전시킬지 고민해봐야 하며 서울시가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도시재생을 관광객 증가나 인구 유입 같은 단순하고 즉각적인 성과로 판단해선 안 되며 먼저 철학적으로 기초를 다지고, 개발 과정에서 구체적인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설계 지침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서울의 백사마을이나 부산의 감천마을같이 박제화된 관광 상품으로는 그곳에 사는 삶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개발이익은 늘 소수의 개발사나 시행사의 몫이었다. 진행 과정에서 개발이익이 서로 균등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토지 가치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각한데, 전문가들은 도심 재생과 재개발에 따른 토지 가치 상승 문제와 그 가치를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개발 과정과 순서 역시 신중하게 설계해 토지 가치 환수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토지구획정리를 하고 용도 전환 사업을 수행하는 암스테르담 시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더불어 세운상가뿐 아니라 그 주변 지역에 자리한 산업 단지의 역사와 미래 가능성도 주목해야한다. 이런 소규모 제조업을 도심 한가운데 두는 것은 새로운 창조성과 장인 정신으로 삭막한 도시에 특별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도 드문 사례로 우리만의 독특한 장소성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에서의 주민 참여다.

<세운상가 그 이상>을 엮은 박혜리는 “주민 참여 자체가 유행인 요즘, 주민 참여를 소통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세운상가에 대한 관심은 일부 건축ㆍ도시ㆍ디자인 전문가에게만 국한되어선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일상 공간에 대한 고민과 변화를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일반 시민도 도시 계획과 개발에 대한 이해와 논의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때, 비로소 개발이익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없애고 다시 짓는 ‘기억상실증’의 도시에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글 심영규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온라인 편집국, <디지털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건축ㆍ문화ㆍ예술 전문지 에서 편집 차장으로 일하고 있다. 건축ㆍ문화ㆍ예술을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공저로 <문화를 짓다: 젊은 예술가들의 행복한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가 있고, 단행본 <젊은 건축가 2015> <세운상가 그 이상>의 기획자로 참여했다. 


참고 문헌: <세운상가: 한 시대를 지배한 서울의 공룡>(최민정, vmspace.com), <박길룡의 도시문화비평>(박길룡, , 2003년 9월호), <세운상가 그 이상>(김성우, 이영범, 제프 헤멀 외, 공간서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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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심영규 <SPACE> 편집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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