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를 해달라.
서울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주중에는 테이블유니온에서 일한다. 1인 출판사 불도저프레스를 운영하며, 비정기적으로 옷에 관한 잡지 〈쿨〉을 만든다. 본업은 그래픽 디자이너지만 어릴 때부터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가 옷 보기·사기·팔기·만들기 등 옷과 관련한 것이라 ‘이제는 옷으로 뭔가 재밌는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최근 몇 년간은 옷에 관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선주문-후생산 의류 맞춤 서비스 ‘스와치’, 옷장 속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는 행사인 ‘옷정리’가 그 예다.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하며, 최근에는 머리 색을 바꿨고, 그것에 맞게 보라색 옷을 하나씩 사고 있다.
당신의 작업 과정을 묘사해달라. 보통 어느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는지 궁금하다.
주어진 조건을 검토하고 그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문제에 접근할지 생각하는 단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방식은 대략 다음과 같다. 디자인의 재료가 되는 내용을 파악하고 어떻게 시각화할지 고민한다.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제로 구현했을 때도 재미있을지 여러 방향으로 작업을 간단히 진행해본다. 이때의 재미는 큰 틀의 접근법을 달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소한 그래픽 요소를 넣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재미있음의 포인트는 매우 주관적이지만 자신을 설득시키면 다른 사람도 설득시킬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재미 요소가 확정되면 그 요소가 돋보이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정리한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포트폴리오는 무엇이며 그 이유에 대해 말해달라.
잡지 〈쿨〉. 기획부터 편집, 디자인까지 대부분 혼자 한다. 여러 역할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 데서 오는 고충도 있지만 그만큼 내용과 디자인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자랑할 만하다. 현재 3호까지 발행한 〈쿨〉은 매호 다른 주제로 발행하며, 각 호의 디자인 스타일 또한 주제에 따라 다르다. 가장 최근에 나온 3호의 주제는 ‘Words’로, 전체 구성은 패션 잡지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커버스토리, 독자 의견, 광고, 경품 응모, 별자리 등으로 구성하되 디자인은 하얀 종이 위에 평범한 검은색 글자로 밋밋하게 연출함으로써 의도적으로 패션 잡지와는 거리를 두어 낯선 인상을 주고자 했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여러 매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것, 새로운 걸 시도하기를 좋아하는 것 등.
가장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스와치 서비스의 네 번째 주문. 스와치는 선주문-후생산 의류 맞춤 서비스로 일 년에 두 번 아이템을 개발하고 주문을 받는다. 주문 기간은 약 2주로 이 기간에 임시 오프라인 가게를 연다. 고객이 임시 가게에서 샘플 옷을 입어보고 원하는 스와치 색을 골라 주문하면 제작해 배송하는 식이다.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바벨〉 전시의 워크스 부스를 임시 가게 삼아 첫 번째 아이템 ‘보일러 슈트’를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지난 6월에는 갤러리팩토리에서 열린 〈노 모어 프루츠〉 전시에서 네 번째 아이템 ‘도형 원피스’를 전시·판매했다. 원래는 ‘정사각형 원피스’만 계획했었는데 전시 맥락상 갤러리팩토리를 위한 에디션이 필요했고, 해결 방법을 떠올리다가 갤러리팩토리 로고처럼 생긴 옷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파란색 줄무늬의 정사각형, 원형, 직사각형 원피스를 디자인했다.
요즘 가장 관심을 갖는 이슈는?
페미니즘.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한국에 사는 여성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패션 잡지를 즐겨 봤는데 잡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르고 폼 나 보였다. 그걸 보면서 항상 현재 상태보다 더 날씬해지고 싶었다. 이후 자라면서 매체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성적인 시선에서 성적 대상화한 여성 모델의 사진을 보면 본능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금은 내가 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지 잘 알게 되었는데, 이는 내가 직접 잡지를 만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런 불편한 지점이 있는 매체는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는다.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의뢰가 들어온다면 작게는 가방부터 크게는 유니폼까지 텍스타일로 제작하는 것은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 불도저프레스 운영자로서는 단행본 사진집을 내보고 싶다. 또는 정확히 그래픽 디자이너의 위치에서 다른 사람의 작품집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스와치 서비스의 운영자로서는 프로젝트를 지속해서 아이템을 20개 정도 개발하면 런웨이 쇼에서 한 번에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을지로에 있는 공간 원룸에서 8월 말부터 3주간 세 번째 ‘옷정리’를 개최한다. 이전까지의 ‘옷정리’가 내가 소장한 옷을 파는 개인적인 행사였다면, 이번 행사는 약 30명의 여성 작업자들과 함께하는 플리마켓이자 편집숍 같은 전시가 될 것이다. 이번 ‘옷정리 3’에는 공간 디자인 팀인 송전동과 협업해 스와치 서비스의 다섯 번째 아이템인 ‘이동하는 옷장’도 선보일 예정이다. 그동안 별개로 진행했던 ‘옷정리’와 스와치 서비스 프로젝트를 동시에 선보이는 자리라 기대된다. 올해 안에 〈쿨〉 4호를 내는 것도 목표다.
오늘 입은 옷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에게는 총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호랑이 티셔츠 + 검정 바지. 2. 검정 재킷 + 검정 바지. 3. 회색 롱스커트 + 회색 반소매 티 + 화려한 귀걸이. 사실 셋 다 내가 즐겨하는 옷차림인데 어쨌든 이 지면에서는 한 가지 옷차림만 보일 것이라 독자들에게 어떤 나를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택한 것은 여러분이 보고 있는 왼쪽 사진의 1번 호랑이 티셔츠다. 이 티셔츠에는 호랑이 얼굴이 총 10개가 있다. 나는 패기 있는 영 디자이너를 선택했다. meanyounglamb.com
스와치 서비스의 첫 번째 아이템 ‘보일러 슈트’. 2016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바벨〉전에서 전시, 판매했다.
스와치 서비스의 네 번째 아이템 ‘도형 원피스’. 지난 6월 갤러리팩토리에서 열린 〈노 모어 프루츠〉에서 전시, 판매했다.
‘Words’를 주제로 한 잡지 〈쿨〉 3호.
2017 전주국제영화제 〈100필름, 100포스터〉 전시에서 선보인 영화 〈홀리 바이블 2 04 Hooly Bible II > 포스터.
■ 관련 기사
-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10
- [GRAPHIC DESIGNER] YEJOU LEE
- [PRODUCT DESIGNER] HEEYEUN JEONG
- [GRAPHIC DESIGNER] SAENAL O
- [FURNITURE DESIGNER] SMALL STUDIO SEMI
- [ILLUSTRATOR] SHIN MORAE
- TWOTHREE DESIGN STUDIO
- [GRAPHIC DESIGNER] MEANYOUNG YANG
- [INDUSTRIAL DESIGNER] SOYOUNG KIM
- [FASHION DESIGNER] NICKY LEE
- [GRAPHIC&PRODUCT DESIGNER] SHRIMP CHUNG
- 지금, 한국 디자인계는 균형을 바로잡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