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Design News
디자인에 한 표를! 정부를 위한 디자인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이란 슬로건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얼마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 문구에 가슴 설레어했던가? 그러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변하곤 했다. 디자인이 일으킨 변화는 잠깐의 이벤트에 불과했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혹자는 ‘디자인의 영향력은 결국 거기까지’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디자이너들은 이런 생각을 전면으로 반박한다. 다양한 디자인 방법론으로 무장한 이들은 대중과 정책 입안자 사이를 연결하며 효과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사회 시스템과 패러다임에 실질적인 혁신을 가져온 사례를 모으고 이를 가능케 한 방법론까지 소개한다. 케케묵었다고 생각했던 슬로건이 다시 한 번 당신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길 바란다.

@Tadeuz Jalocha


칠레의 건축 사무소 엘레멘탈(Elemental)이 디자인한 공공 주택 프로젝트 ‘킨타 몬로이 (Quinta Monroy)’. 엘레멘탈을 이끄는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는 올해 프리츠커(Pritzker)상을 수상했다. ©Cristobal Palma



관찰하라 개입하라 변화시켜라 
정부를 바꾸는 디자인


서울시의 새로운 도시 브랜드 ‘I·SEOUL·U’.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발표한 새로운 도시 브랜드 ‘I·SEOUL·U’ 는 숱한 논란을 낳으며 온ㆍ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생경함 때문이었을까? 부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인 가운데 디자이너들 역시 결과물의 조형적 완성도에 이의를 제기하며 비판에 가세했다. 하지만 심미성이나 조형성보다 디자인 결정 측면에서의 획기적인 변화가 월간 <디자인>의 관심을 끌었다. 사전 온라인 투표 점수와 ‘천인회의 시민 심사단’, 그리고 전문가 심사단의 투표 점수를 합산해 선정한 ‘I·SEOUL·U’는 대규모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톱다운(top-down) 방식이 아닌 보텀업(bottom-up) 방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기존에는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디자인 결정’의 전면에 시민이 등장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런 변화는 올해 3년 차를 맞이한 ‘정부 3.0 국민디자인단’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공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이 직접 정책 형성 과정에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과 욕구를 반영한다는 취지의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241개 기관 248개 과제를 수행하며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몇 발자국 물러서 보면 이런 변화는 미미하지만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변화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혜택은 무엇일까?




 여행 통합 가이드 투어 패스. 2015년 국민디자인단의 과제로 치러진 이 프로젝트는 기관 중심의 서비스를 여정 중심의 서비스로 전환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성장의 한계’, 똑똑한 정부를 요구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015년 10월의 3.6%에서 3.4%로 하향 조정했다. 또 지난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3%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에 기대어온 세계경제는 중국 성장률이 7%대 아래로 내려가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고 중국은 반대로 세계 불황이 중국 경제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속된 불황에 영향을 받는 것은 기업뿐만이 아니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미국의 부자 도시로 알려진 워싱턴 DC,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은 주 수입원인 근로소득세와 주택세 등 세수가 급감하면서 파산 위기에 처했고, 유럽에서 소위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졌던 그리스와 아이슬란드가 경제 위기를 겪었다. 세계의 정부들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고, 이는 공공 서비스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이다. 세계 경제 규모 30위 안에 들었던 그리스는 경제 위기가 닥치자 극도의 긴축정책을 폈다. 공공 서비스를 크게 축소하고 연금과 각종 수당을 삭감하거나 없앴는데 이는 곧 노인들의 자살, 국립 병원의 폐업, 교사 없는 학교로 이어져 지식인과 경제인들이 유럽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IMF의 재정 지출 삭감을 요구받았던 아이슬란드. 이들은 공공 서비스를 축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실업자를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건강보험 예산을 늘리고 집세, 양육비, 실업 수당의 보조 또한 늘렸다. 아이슬란드는 2013년 2.8%라는 의미있는 경제 성장을 이뤄냈고, 2016년 현재는 건전한 경제로 돌아섰다. 물론 아이슬란드의 공공 지출이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그리스와 달리 자국의 통화를 사용하는 아이슬란드는 자본 흐름을 큰 폭으로 통제해 통화를 평가절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관광업을 크게 성장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와 아이슬란드의 사례는 단순히 정부지출을 늘이거나 줄이는 것에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령화, 비만 인구의 증가와 이로 인한 성인병의 급증, 생산 기지의 이동으로 인한 경제 구조의 급격한 변화, 급속한 도시화, 천연자원과 에너지의 고갈, 물 부족, 지구 온난화 등 경제 외에도 오늘날 세계의 정부들이 당면한 문제는 전방위에 걸쳐 있다. 1972년 도넬라 메도우즈(Donella H. Meadows)를 비롯한 로마 클럽(Club of Rome)의 학자들이 <성장의 한계The Prologue Limits of Growth>를 통해 예측한 위기가 4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더 똑똑한 정부를 요구 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똑똑한 정부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칠레, 미국, 영국, 덴마크, 핀란드의 사례는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자원을, 기존 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활용한다. 서울시의 새로운 도시 브랜드가 투표 등 정량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데 그쳤다면, 앞으로 소개할 사례들은 사용자의 삶에 스며들어 관찰하는 인류학적 방법론부터 사용자를 파트너로 여기고 함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안을 상상해나가는 코디자인 워크숍까지 다양한 정성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 의제 설정부터 다양한 사용자, 이해관계자들의 협력 등 초기 의사 결정 과정에 디자이너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디자인의 잠재력과 디자이너의 역량을 재고하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을 중심으로 세계 주류 경제학을 흔들어 놓은 행동경제학(behavioural economics)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효과적인 공공 서비스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껏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이해시키며 설득해온 디자이너야말로 새로운 형태의 공공 서비스 및 정책을 만들어가는 데 가장 적합한 인재가 아닐까? 하지만 이 새로운 분야의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기존 디자인 분야에서 요구되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확장된 디자인의 의미를 포용할 수 있는 관용과 넓은 시야, 그리고 빠른 학습 능력이다. 크나큰 잠재력만큼 책임감 역시 막중하다. 잘못된 디자인이 기업의 수익과 브랜드 가치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것처럼 정책 결정과 집행의 실패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공공에 전가한다. 기업은 하나가 실패하면 다른 하나가 성장하지만 정부의 정책과 서비스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디자이너들은 탄탄한 프로세스와 섬세한 관찰력을 갖춰야 하고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국한해서 해결책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그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문제나 기회 역시 살펴야 한다. 사회는 유기적이며 인간은 복잡하다. 한국은 우리 고유의 역사, 문화, 그리고 정서를 가지고 있다.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성향과 상황 역시 다른 나라 구성원들의 그것과 다른 만큼 아무리 해외의 좋은 사례와 방법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현지화를 염두에 두고 각각의 사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 소개하는 사례를 무작정 동경할 필요는 없다. 물론 하나하나 의미 있는 결과물이지만, 덴마크의 마인드랩(MindLab) 외에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이런 형태의 디자인 활동에 투자하는 정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 역시 얼마든지 그 흐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기사가 디자이너와 정부 부처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

| 정부를 위한 디자인 | 시리즈 기사 보기
- 킨타 몬로이 Quinta Monroy
- 주거를 위한 서비스 디자인
- GOV.UK
- 덴마크 산업 분류 코드 서비스 브랜치코드 Branchekode
- 로투노 Low2No
- 새로운 디자인의 서재에서 정부를 바꿀 비책을 찾다
- 인간 중심적 사고로 정부를 돕는 싱크탱크들

Share +
바이라인 : 기획 최명환 기자, 공동 기획 및 도움말: 이승호(핀란드 싱크탱크 ‘데모스 헬싱키(Demo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