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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정부를 위한 디자인] 가능성으로 가득 찬 반쪽짜리 집 킨타 몬로이 Quinta Monroy


Chile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상이 지난 1 월 2016년 수상자를 발표했다. 올해 주인공은 칠레 출신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 건축 사무소 엘레멘탈(Elemental)을 이끌고 있는 그는 칠레 건축가로는 최초로, 남미에서는 네 번째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아라베나의 대표작 ‘킨타 몬로이(Quinta Monroy)’는 도시 빈민층을 위한 공공 주택 프로젝트로 이번 수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심사위원단은 “아라베나는 사회 참여적 건축 운동의 부활을 상징한다”라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킨타 몬로이 프로젝트를 어느 착한 건축가의 미담 정도로 여겨선 안 된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뒤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이키케에 지은 공공 주택 외관. ©Tadeuz Jalocha


칠레에서 공공 주택 이슈가 부상한 것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1990년대. 고무된 칠레 정부는 도심 내 빈민가를 없애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1950~1960년대 서울이 그랬듯 당시 칠레의 도심에는 수많은 빈민이 살고 있었고 이들로 인한 슬럼화 현상은 칠레 정부가 풀어야 할 큰 숙제 중 하나였다. 정부는 은행과 연계해 주택을 지어 제공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봤다. 미화 기준 개인 저축 300달러, 정부 지원금 3700달러, 그리고 은행 대출 비용 7000달러, 총 1만 1000달러의 예산으로 고급 마감재를 활용한 중산층형 주택을 지어 보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근사한 벽지와 보일러 시설까지 완비한 이 공공 주택 프로젝트는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수혜자들의 교통수단과 수입원이었다.

1만 1000달러라는 크지 않은 예산으로 중산층형 주택을 짓기 위해선 부지를 도심 외곽에 마련해야 했는데 주로 도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빈민들에게 주거 공간과 수입원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일자리를 잃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주택에 설치된 보일러를 떼어내 중고 시장에 팔거나 집을 헐값에 내놓고 다시 도시로 나가자 공공 주택이 또 다른 슬럼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공공 주택 프로젝트는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 듯 보였다. 하지만 기회는 뜻밖의 장소에서 찾아왔다. 2002년 하버드 대학교와 칠레를 오가며 소셜 하우징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던 아라베나는 한 세미나에서 그의 새로운 접근을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고, 당시 주택ㆍ도시 개발부(Ministry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에서 10만 가구에 공공 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하던 사업 ‘칠레 바리오(Chile Barrio)’의 담당자 실비아 아라오스(Silvia Araos)의 눈에 띄게 된다.

그녀는 북부 항구 도시 이키케(Iquique)의 100여 가구가 자리한 슬럼가에 공공 주택 프로젝트 ‘킨타 몬로이’를 발주했다. 놀랍게도 엘레멘탈의 제안은 ‘반쪽짜리 좋은 집(half-a-good house)’이었다. 건물은 마감이 전혀 안 된 벌거벗은 모양이었고 보일러도 없이 최소한의 전기ㆍ수도 시설과 욕조만 덩그러니 놓인 집이었다. 이쯤 되면 ‘날림 공사’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 이 기괴한 공공 주택 디자인은 면밀한 분석과 관찰의 산물이었다. 우선 아라베나를 비롯해 건축가, 수송 엔지니어, 사회학자로 구성된 다학제팀은 다른 칠레 공공 주택의 실패를 거울 삼아 주민들이 이미 살고 있는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결정했다. 주민들이 사회ㆍ경제적 네트워크를 벗어나지 않도록 한 배려. 문제는 비용이었다. 이때 토지 구입에 든 비용은 도심 외곽에 주택을 지을 때와 비교했을 때 3배 가까이 높은 금액이었는데 이 예산으로는 기존의 중산층형 주택을 고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신 이들이 제안한 것은 각 세대가 서로 기대고 있는 형태의 반쪽짜리 연립형 주택, 즉 ‘확장이 쉬운 반쪽짜리 집’이었다.



2013년에 지은 어느 회사의 직원용 숙소. 킨타 몬로이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적용한 모습이다. ©Elemental 

빌라 베르디 하우징(Villa Verde Housing) 프로젝트. 2010년 강도 8.8의 지진과 쓰나미가 칠레를 휩쓴 뒤 콘스티투시온(Constituci n)의 주민들을 위해 진행했다. 역시 ‘반쪽짜리 집’ 개념이 적용되었다. ©Cristian Martinez 


아라베나와 엘레멘탈은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건축 평면도가 아닌 종이모형을 이용해 실수요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삶과 생활 방식을 살폈다. 그 결과 도심 빈민들에게 벽을 쌓거나 지붕을 올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수년간 슬럼에 살아온 이들에게 허물어진 벽을 다시 세우고, 비가 새는 천장을 고치는 기술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엘레멘탈은 이를 반영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증축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다.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비용을 아끼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벽지도, 페인트도, 심지어는 싱크대 밑 판자 마감도 없는 집이었지만 수도와 전기, 골조 등 집의 내구성과 관련된 시공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주민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판잣집을 지을 수는 있지만, 수도나 전기 등 전문적인 구조를 설계하고 시공할 능력은 없었기 때문. 이처럼 교통, 수입원 등을 동일 선상에 두고 생각하는 통합적이고 구조적인 사고와 직접 벽을 세울 줄 아는 수혜자의 잠재력마저 결과물에 포함시킨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빚어냈다.

주민들은 입주 후 돈이 모이는 대로 페인트칠을 하고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가며 반쪽짜리 집을 완전한 집으로 만들어갔다. 킨타 몬로이는 칠레 정부가 기존에 사용하던 예산 1만 1000달러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지었지만 주민들이 각자 자신의 터전을 성실하게 가꾼 결과 2년 후 그 평가 가치는 2만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이는 유사한 입지 조건의 다른 다세대 주택의 2.6배에 이르는 가격이다. 킨타 몬로이는 처음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키케를 시작으로 칠레 각지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일궈낸 엘레멘탈은 이후 멕시코, 브라질, 미국 등지의 공공 주택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2010년 지진과 쓰나미가 마을의 반 이상을 쓸어간 칠레 콘스티투시온(Constituci n)의 도시 설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 엘레멘탈이 킨타 몬로이를 통해 선보인 개념은 유럽의 난민 주거 문제를 풀 수 있는 방편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일찍이 아라베나는 “좋은 건축은 벽돌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킨타 몬로이는 우리에게 디자인의 진정한 힘은 단지 비싼 재료와 마감, 화려한 형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면밀한 관찰과 통합적 사고, 그리고 수혜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www.elementalchile.cl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Cristobal Palma 

킨타 몬로이의 공공 주택 내부 모습. 초기에는 싱크대 문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이 직접 자신의 공간을 가꾸게 됐다. 위 ©Ludovic Dusuzean 아래 ©Tadeuz Jalo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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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