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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조직의 변화가 일궈낸 통합의 힘 GOV.UK


 United Kingdom

만약 세상에 못난이 웹사이트 경연대회 같은 게 있다면 정부 기관 웹사이트나 지자체 웹사이트가 1~2위를 다툴 것이다. 기능 중심의 웹사이트라 심미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사용이 딱히 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슬픈 것은 전 세계 어느 정부 기관 웹사이트를 들어가도 사정은 비슷하다는 것. 이쯤 되면 ‘정부 기관 웹사이트는 못생기고 불편해야 한다’라는 암묵적인 룰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데 2013년 영국 디자인 뮤지엄(Design Museum)이 주관하는 ‘올해의 디자인 상(Design of the Year Award)’에 정부 통합 사이트인 ‘GOV.UK’가 선정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런던 올림픽 성화봉 디자인 같은 만만찮은 후보들을 물리치고 이 웹사이트가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GOV.UK의 메인 화면. “정부 서비스와 정보를 찾기에 최적의 장소(The best place to find government services and information)”라는 문구가 검색 기능에 집중한 웹사이트의 특징을 보여준다. 검색창 바로 옆에는 마치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처럼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내용들이 정렬되어 있다.

혁신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정부 웹사이트를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웹사이트는 흔히 조직 구성을 중심으로 정보가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시민들에게는 미로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 사안에 따라 어떤 기관의 홈페이지를 방문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부지기수다. 출산 몇 개월 후 정부에서 주는 출산비를 받지 못한 산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산모 입장에선 ‘출산, 육아와 관련된 혜택’ 정도로 압축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해당 정보를 찾기 위해선 주민센터, 구청,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웹사이트를 이 잡듯 수소문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해당 기관의 공식 정보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블로그의 불확실한 정보에 기대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GOV.UK는 단 하나의 주소 아래 모든 정부 부처의 웹사이트를 통합하고 방문자들이 인지하는 사안을 중심으로 한 정보를 설계하고 검색을 최적화했다. 이를 통해 각 기관이 웹사이트를 별도 운영했을 때 드는 천문학적인 지출예산을 효과적으로 감축시켰고, ‘사안 중심’의 정보 제공은 결과적으로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크게 늘리는 결과도 얻었다. 즉 GOV.UK는 사용자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이고 섬세한 정보 설계로 영국 정부 내 조직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정부 기관 웹사이트를 통합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격다짐식으로 모든 정부 기관의 정보를 욱여넣었다간 더 큰 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불과 6년 전만 하더라도 영국도 우리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 부처가 웹사이트를 따로 운영했고 서비스는 중구난방이었다. 그러나 2010년 10월 영국 정부의 디지털 대변인 마사 레인 폭스(Martha Lane Fox)가 쓴 보고서를 기점으로 변화가 시작됐다.

‘진화가 아닌 혁명(Revolution Not Evolution)’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정부의 기존 웹 서비스 공급 방식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분명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전까지 정부 기관 웹사이트 개발은 거대 IT 기업의 몫이었고 이들의 기술 중심적 접근은 사용자 경험보다는 사용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기술적으로 효율적인 개별 시스템을 유지ㆍ보수하는 데에만 주로 집중했던 것.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본질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선 먼저 시스템을 통합하고 조직할 구심점이 필요했다. 영국 국무조정실은 먼저 GDS(Government Digital Services)라는 산하조직을 신설했다. GDS는 그동안 개별 아웃소싱 방식으로 진행하던 웹사이트 개발ㆍ운영을 내부로 돌려 유기적이고 조직적으로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더 단순하게, 더 명확하게, 더 빠르게(simpler, clearer, faster)’를 모토로 프로젝트를 작동시킨 GDS가 가장 먼저 한일은 젊고 재능 있는 인재를 모으는 것이었다. GDS는 정부 소속의 조직이었지만 관료적으로 업무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들은 핵데이즈(Hackdays), 부트캠프(Bootcamp) 등 젊은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해커 등이 재능을 발휘할 만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조직했다. 이는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이 고루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GDS가 여느 스타트업 못지않게 역동적인 팀이란 인상을 주었다.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사전에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GDS의 디렉터들은 스스로를 ‘제설기’라고 부르며 실무진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는데, 기존 정부의 조달 관행으로는 활용할 수 없었던 디지털 장비를 구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GDS의 영리함은 설계와 구현에서도 빛이 났다. 이들은 흩어져 있던 각 정부 기관 웹사이트로부터 지난 10년간의 접속기록을 받아 사람들이 가장 자주 검색하는 데이터가 무엇인지 파악해나갔다. 또 현실적인 인터넷 환경을 인정하고 여기에 맞는 전략을 세웠다. GDS는 시범 버전 설계 당시 ‘구글이 홈페이지다’라는 원칙을 전제했는데 이는 곧 사람들이 정부 관련 정보를 찾을 때 곧바로 GOV.UK로 접속할 것이란 기대를 버렸다는 뜻이다. 즉 대부분의 영국인이 구글 검색을 통해 정부 웹사이트에 접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여기에 맞게 GOV.UK가 구글 검색을 통해 한 번의 클릭으로 원하는 정보가 담긴 페이지로 접속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설계하고 검색 최적화에 최선을 다했다.


전략적인 경청과 수렴
경청과 수렴은 GDS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하지만 각 부처 공무원을 초대해 의견을 모았다간 자칫 이들의 관료적 태도로 인해 프로젝트가 방해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온전히 시민들만 고려했을 때 정부 홈페이지가 편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었기에 첫 시범 버전을 공개하기 이전까지는 어떤 이해관계자도 진행 과정에 개입시키지 않았다. 다만 각 부처에서 수년간 일해오며 시민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워크숍을 진행한 소수의 디지털 전문가는 예외였는데, GDS는 이들에게 설계와 프로토타입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받은 피드백을 바로 적용하는 ‘애자일(agile)’ 개발을 원칙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1000개에 이르는 사용자 요구 사항을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에 가장 폭넓게 연관되는 100개로 압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범 서비스와 베타 버전을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또 여기서 나타난 문제 중 가장 중요한 10가지를 블로그에 공유해 시민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는데, 이 중 기술적으로 가능한 5가지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기도 했다. 영국 정부 전체가 온라인정보와 서비스를 관리하고 제공하는 패러다임을 바꾼 이 프로젝트는 강력한 비전과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바로 ‘사람’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12명의 팀원이 12주의 시간 안에 겨우 우리 돈 4억 원 남짓한 예산으로 이루어낸 일이라는 점. 통합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신속하게 해결책을 제안한 젊은 전문가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영국 국무조정실이 만든 GDS 같은 혁신적인 조직 구성을 고민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www.GOV.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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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