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nmark
덴마크는 중소기업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영토는 우리나라의 절반 크기에 인구는 겨우 530만 명이지만 물류 회사 머스크(A.P. Moller-Maersk Group), 제약 회사 노보 노디스크 (Novo Nordisk), 오디오 전문 기업 뱅앤올룹슨(Bang and Olufsen)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작은 나라 안에서 수많은 강소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덴마크 특유의 기업가 정신도 한몫하겠지만 중소기업을 위한 덴마크 정부의 폭넓은 지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 정부는 중소기업부터 1인 사업체까지 다양한 소규모 기업의 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과 과정은 사업을 등록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브랜치코드의 시스템 맵(System Map) 등록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문제와 이를 해결하는 경로를 마치 지하철 노선도처럼 시각화했다. ‘신규 사업’이라고 표시한 4개의 시작점 어디서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국세청, 덴마크 상공회의소, 통계청 등 다양한 기관을 방문하거나 전화 상담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브랜치코드 발급’에 도착할 수 있다. 파란색 선을 따라가보자. 잘못된 코드 입력 후 시스템 오류 메시지를 발견한 사용자는 전화 상담을 통해 문제를 이해한 뒤 직접 해결한다. 또한 서면 절차가 필요 없는 경우에는 통계청 직원의 조치를 통해 브랜치코드를 발급받는다. 시스템 맵 상의 초록색 선은 가장 많은 혼란을 빚는 경우를 뜻한다.
사업 등록 과정에서 시작된 혼란
브랜치코드(Branchekode)는 사업 업종 분류를 체계화해놓은 ‘표준 산업 분류 코드’를 말한다. 덴마크 정부는 누구나 쉽게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기존 서비스는 오기율이 25%에 이를 만큼 사용자 접근성과 편의성이 떨어졌다. 본래 표준 산업 분류 코드는 통계, 관리등의 목적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관료적인 용어 사용과 국가 분류 체계가 문제의 주요 원인이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신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경우, 기본적으로 신발류는 브랜치코드 15:20:00에 해당하지만 스포츠화의 경우는 32:30:00, 스키 부츠의 경우 47:72:10으로 구분된다. 여기에 수선 서비스 제공 여부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코드를 적용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고개를 갸웃거릴 텐데 혼란스럽기는 덴마크의 사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작성 서류에는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그대로 사용되어 이러한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는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온라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라인 등록에 실패한 이용자는 정확한 브랜치코드를 제공받기 위해 전화 문의나 방문을 했고 이로 인해 해당 기관인 덴마크 경제산업부와 통계청은 종종 주요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또 사업자들은 브랜치코드가 실제로는 전혀 연관이 없는 세금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엉뚱한 국세청으로 문의를 했으며 이로 인해 국세청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도 했다. 2011년 덴마크 경제 사업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덴마크 정부 내의 특별 기구인 마인드랩(MindLab)에 새로운 브랜치코드 디자인을 의뢰했다. 마인드랩의 디자이너들은 덴마크 경제사업부, 국세청, 통계청, 그리고 실제 사용자들을 매일 만나고 상담하는 공무원들을 초대해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다.
일반인과 공무원 양쪽 모두 사용자다
문제의 최전선은 바로 브랜치코드에 대한 문의로 찾아오는 사용자들과 상담 공무원이 만나는 장소였다. 마인드랩은 바로 여기서 인터뷰, 워크숍, 참여 관찰 등 사용자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곳이 문제가 발생한 장소인 동시에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곳은 문제의 원인인 시스템과 사용자 사이의 접점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여기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부터 해결되는 지점까지를 시각화해 새롭게 디자인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프로젝트 팀은 곧 브랜치코드의 주 사용자가 관련 기관의 관행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온라인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 팀이 다른 쪽에 위치한 사용자, 즉 브랜치 코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담당 공무원들은 문제 발생 시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바로 옆 동료뿐 아니라 관련 부처와도 공유해야 했는데, 그럴수 있는 적절한 도구와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늘 업무 과부하에 시달렸다. 프로젝트 팀은 일반인뿐 아니라 공무원 또한 브랜치코드의 사용자로 포함시키며 사용자의 개념을 확장했고, 양쪽을 모두 고려한 제안을 통해서만 브랜치코드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로젝트 팀은 우선 브랜치코드 웹사이트에 사용할 표현을 개발했다. 사용자 조사를 통해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어체를 활용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이는 자칫 또 다른 사용자인 공무원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었다. 또 브랜치코드를 바탕으로 하는 산업 통계에 문제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따라서 경제사업부와 통계청은 일반인과 공무원 양쪽을 모두 고려한 공식 표현을 개발했다. 새로운 브랜치코드 웹사이트는 소위 ‘자가 학습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평소 잦은 혼란을 초래하던 산업 분류 코드에 상담 공무원이 직접 코멘트를 달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 것.
또 기존에 등록되어 있던 기업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해, 새로 사업자 등록을 하는 사용자가 본인의 사업체와 가장 유사한 활동 영역의 회사를 검색하고, 이 과정에서 상담 공무원이 남겨둔 코멘트를 통해 정확한 코드를 파악해나가도록 했다. 어찌 보면 브랜치코드는 작은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덴마크 정부는 이 문제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놓인 접점으로 바라보았다. 이를 통해 기존에는 함께 일하지 않았던 기관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하게 되었고,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내놓는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정확한 문제 진단을 통해 전통적인 디자인 개선안을 넘어선 결과물을 선보인 브랜치코드는 현재까지도 덴마크 사업자와 공무원의 업무 효율을 동시에 높인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Branchekode.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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