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Design News
소방 관련 법을 변경시킨 디자인 공모전 로투노 Low2No


Finland




목재 산업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핀란드에서 나무는 문화적ㆍ역사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재료이지만 1900년대 초반부터 2010년까지 건물 골조로 나무를 사용할 수 없었다. 19세기에 일어난 대형 화재로 큰 손실을 입은 핀란드 당국이 안전성을 이유로 3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 목재 골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던 것. 그러다 2011년 의회는 8층 건물까지 목재 골조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소방 관련 법을 통과시켰고, 이는 현재 핀란드 건축업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의 시작점이 바로 디자인 공모전이었다는 것. 핀란드 혁신 기금 시트라(SITRA)의 전략 디자인 유닛이 에너지 혁신 연구 사업(Energy Programme)을 도와 2009년 진행한 ‘지속 가능한 건물 디자인 국제 공모전 로투노(Low2No)’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결과물 안에서만 솔루션을 찾으려는 일반 건축 공모전과 달리 공모 진행 자체를 문제 해결의 열쇠로 봤다. 즉 통합적인 시각으로 계획한 과정이 해답에 도달하는 길이라 믿은 것이다.



로투노 건축 프로젝트. ©SRV093


‘무엇’이 아닌 ‘누가’와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 공모전
시트라는 핀란드가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로 주택 탄소 배출량을 주목했다. 우리는 흔히 플라스틱 제품의 대량 생산이나 자동차, 비행기 등 운송 수단이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주택의 온도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도 전체의 40%에 이른다. 핀란드 또한 예외가 아닌데, 혹독한 겨울 탓에 단열과 난방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주택 탄소 배출량이 40%를 넘어섰다. 로투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모전이었는데 시내 중심가 바로 옆에 자리한 재개발 지역 예케사리(Jtksaari)를 탄소 중립 시험 지역이자 공모전 대상지로 제공했다.

‘저탄소에서 탄소 중립으로’라는 뜻을 지닌 로투노 프로젝트 전반에는 ‘통합적인 사고’라는 접근 방식이 적용되었다. 시트라는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뿐 아니라 에너지 기반 시설, 건축 설계, 시공법, 심지어 사람들의 행동 방식까지 고루 고려할 때 비로소 탄소 중립이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유별난 공모전의 첫 단계 과제는 팀 구성이었다. 보통의 공모전과 달리 이 공모전은 누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냐가 중요했다. 따라서 전략 디자인 유닛은 콘소시엄의 다학제적 구성, 통합적이고 구조적인 사고 능력 등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까다로운 자격 요청 기준을 적용했다.

또 회사 간 협력, 외부 연구원의 전문성과 경험 등도 평가 기준이었다. 23개국 74개 팀 중 런던의 건축 컨설팅 회사 애럽(Arup)과 WSP, 덴마크의 BIG, 미국의 REX와 로즈 & 파트너스(Rose & Partners) 이렇게 다섯 팀이 선정됐고, 이들은 공모전의 두 번째 단계인 탄소 중립 도시를 위한 시스템 디자인에 착수했다. 로투노는 참여 팀이 통합적인 변화를 이끌고 탄소 중립 도시를 달성하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 브리프(design brief)를 다음과 같이 작성했다. 이를 통해 시트라 디자인 유닛이 로투노를 단발성 행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확산적인 장기 프로젝트로 바라보고 있음을 유추해낼 수 있다.

1. 타 지역에도 확장, 적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 방법
2. 탄소 중립 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정량적 지속 가능성 지표
3. 높은 공간적 가치, 활기찬 지역사회, 사용자의 행동 변화 등 정성적 가치를 통한 지속 가능 전략의 실제적 예시가 될 디자인 안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끈 공모전
심사위원단의 토론 결과, 애럽과 이탈리아의 UX 디자인 전문 회사 익스피어리언티아(Experientia)가 주축이 되어 개발한 ‘c_life’가 최종 선정됐다. 이 도시 시스템은 사용자 행동과 경제적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접근성 높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거주민이 에너지 소비량을 즉각적으로 알려주는 한편, 개인 사우나 대신 공공 사우나를 설치한 아파트를 제안해 주민들 사이의 소통을 늘리고 전력 피크는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또 그린 대출(Green Mortgages)과 탄소 상쇄 사업처럼 자금 순환 방식을 이용한 국가ㆍ경제적 차원의 결합 방식을 제안했다. 탄소 중립 도시 건설의 파트너를 찾은 시트라는 이 여세를 몰아 2009년 말 건축 계획에 돌입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목재 골조 건물을 금지하는 소방 관련 법이 문제였다. 8층 규모 건물에 목재 골조를 사용하면 뉴욕과 런던을 850번 왕복 비행하는 것에 상응하는 탄소 흡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나무가 불에 약하다는 편견이었는데, 선정된 로투노 팀의 연구 결과 전문적 설계를 거친 목재 골조는 불에 탄 표면이 구조를 보호하기 때문에 화재 시 완전 붕괴의 위험이 있는 콘크리트 골조보다 오히려 더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핀란드 환경부는 2011년 8층 건물까지 목재 골조를 사용할 수 있는 소방 관련 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건물을 넘어서는 변화다. 목재의 활용이 활발해지면 높은 인건비와 경쟁 심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핀란드 목재 산업의 부흥을 이끌 수 있다. 이는 결국 핀란드 경제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탄소 흡수 효과를 핀란드 전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로투노의 건축 프로젝트는 현재 2017년 준공을 목표로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소방법 변경 이후 예케사리에는 목재 골조로 디자인한 건물들이 계획되고 있으며, 시내에 새로 들어설 헬싱키 중앙 도서관 역시 목재 골조로 설계하고 있다. 또 핀란드 전역에서 건물 디자인이 아닌 팀을 뽑는 형태의 공모전과 입주자들의 행동 변화에 무게를 둔 건축 계획 역시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로투노는 단순히 하나의 이벤트로 머물지 않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공모전의 모든 단계를 유기적으로 바라본 통합적 접근 방법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www.low2no.org



로투노의 마스터 플랜. 예케사리 지역은 기존에 항구로 사용했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헬싱키 시의 마스터플랜에 의해 상업, 주거, 산업이 복합된 지역으로 계획되고 있었다. 전략 디자인 유닛은 헬싱키 시와 협상을 통해 100헥타르에 이르는 광활한 크기의 지역을 공모전 대상지로 제공받았다.  ©Tietoa Oy

—————————————————————————————————————————————————

| 정부를 위한 디자인 | 시리즈 기사 보기
- 정부를 바꾸는 디자인
- 킨타 몬로이 Quinta Monroy
- 주거를 위한 서비스 디자인
- GOV.UK
- 덴마크 산업 분류 코드 서비스 브랜치코드 Branchekode
- 새로운 디자인의 서재에서 정부를 바꿀 비책을 찾다
- 인간 중심적 사고로 정부를 돕는 싱크탱크들

Share +
바이라인 : 글 박고은 핀란드 통신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