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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디자인 창업가의 성공 법칙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스타 사회적 기업’ 선정을 진행했다. 상품 개발과 유통, 홍보와 마케팅 등 시업 전반을 지원하는 거시적 지원 사업이다. 그리고 검증 과정을 통해 추천받은 15개 회사 중 소셜 벤처 ‘그레이프랩’이 최종 선정되었다. 그레이프랩은 재생지나 비목재지, 사탕수수, 과일 찌꺼기, 테이크아웃 커피컵 등으로 노트북 스탠드, 쇼핑백, 수첩 등을 만드는 회사다. 제작 과정에서도 접착제나 코팅제 등을 최소화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레이프랩은 직원의 절반가량이 발달 장애인이다. 직원들은 제품 제작은 물론 디자인에도 관여하고 판매 수익도 나눠 갖는다. 2018년 설립 이후 그레이프랩의 활동은 단순히 상생, 친환경,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이다.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가 만들고자 하는 상생의 그림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⑦창업도 디자인도,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김민양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과 예술학을 전공했다. SBS와 KBS의 UX 디자이너를 거쳐 2009년 카카오 창업 멤버이자 디자이너로 일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서비스 기획과 UX 디자인을 맡았다. 이후 영국 킹스턴 대학교에서 ‘지속 가능한 디자인’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지속 가능한 디자인 연구소를 겸한 소셜 벤처 그래이프랩의 대표로 있다.

그레이프랩
기업 형태 예비 사회적 기업
대표 서비스 제품 디자인, 디자인 컨설팅
설립 연도 2018년
직원 수 16명(2020년 8월 기준)
웹사이트 thegrapelab.org

그레이프랩은 지금 가장 주목받는 소셜 벤처다. 하나금융그룹, 서울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디캠프, 현대자동차 정몽구 재단, SK이노베이션, 임팩트스퀘어, 서울산업진흥원 등에서 선정한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설립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g.스탠드, g.플로우, g.플래너 등 그레이프랩의 제품이 많은 사랑을 받은 결과다. 덕분에 소비자들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과 제작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많은 기관과 기업의 지원과 협업 제안을 받았다. 올해 5월에는 SK이노베이션과 ‘플라워박스 DIY 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해외로 눈을 돌리며 미국 법인을 설립했다. 사실 올해 수익 목표가 지난해의 여덟 배였는데 코로나19로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기긴 했다. 올해 초에는 홍콩 투자청과 디캠프가 공동 주관하는 스타트업 지원 사업인 ‘디데이’에 선정되어 홍콩 진출을 모색하고자 했는데, 현재는 화상으로 논의 중이다.

카카오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10여 명의 창업 멤버 중 한 명이었다고.
대학 재학 중 라이코스, 한미르 등에서 게임 디자인을 하다가 졸업 후 방송국에 입사해 UX 디자이너로 일했다. 커다란 조직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오래 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아이디어를 내면 중간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전시 프로젝트를 하다 알게 된 분의 추천으로 카카오(당시 아이위랩) 디자이너 제의를 받았다. 면접을 치르면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떨렸다. 카카오에서 디자이너는 나 혼자였지만 창업 멤버들의 자신감을 보니 신뢰가 갔다. 안정적인 회사를 박차고 나가려 했을 때 주변의 만류도 심했는데, 요즘은 ‘그때 왜 자기는 데려가지 않았느냐’고 하더라.(웃음)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기획한 장본인이다. 이모티콘이 수익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텍스트 쓰기를 귀찮아했다. 그림이 더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에는 카카오에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어 새로운 수익 구조를 모색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유료 서비스로 성공을 거둔 시장은 게임과 광고 분야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포화 상태였다.

강풀, 이말년 등 웹툰 작가가 만든 이모티콘을 선보였다. 무척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카카오톡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다. 단순히 그림이 예쁘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구매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웹툰 작가를 떠올렸다. 작가들은 이미 캐릭터와 스토리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었다. 이들이 만든 캐릭터가 서비스로 들어오면 사용자들의 대화가 더욱 다채로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강풀, 이말년, 서나래 등 웹툰 작가들을 직접 찾아가 ‘안녕’, ’미안해’ 같은 감정을 그려보라고 했다. 이모티콘 서비스 오픈 직전까지도 회사에서는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그림이 재미있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김민양 대표는 카카오에서 3년간 일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2013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공부하며 제3세계 수공예 장인, 중동 지역의 여성 등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카카오 이모티콘 서비스를 기획하며 비주류에 가까웠던 웹툰 작가들이 주류가 되고, 이모티콘으로 수익도 얻는 과정을 보며 새로운 비즈니스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김 대표가 생각한 비즈니스 모델은 포도송이 같은 모양이었다. 어느 한 송이가 더 크거나 독식하는 형태가 아니라 작은 알맹이가 연결되어 하나의 송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김 대표는 유학 시절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더 번치 오브 그레이프스The Bunch of Grapes’라는 논문을 썼고, 이를 구체화해보고자 한국으로 돌아와 그레이프랩을 열었다. 처음에는 작업실 겸 1인 연구소였다.


유학 시절까지 더하면 그레이프랩은 꽤나 오래전부터 구상한 모델이다.
현재 대부분의 경제 시스템은 대기업이 작은 기업을 포섭하면서 독식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나 인도 등에서 안정적으로 수공예 산업을 하고 있는데 대기업이 해당 산업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지역 시장은 붕괴되고 수공예 장인들이 대기업의 공장에 들어가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나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을 고민했다.

초창기에 함께 일한 직원이 발달 장애인이었다는 것도, 시급이 1만 2000원이었다는 것도 화제였다. 이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계기가 있나?
유학 후 돌아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다. 그런데 배 속의 아이가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 이를 계기로 장애를 가진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전에는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사산되었고, 이후 중증 장애인이 모여 있는 기관에서 봉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으면 오갈 곳이 없는 현실을 보았다.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2년 가까이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대안 교육을 했다. 그러다 발달 장애인들의 예술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내가 보고 알던 뛰어난 디자인의 정의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들의 감각을 디자인 사업과 결합해서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처럼 말이다.

그레이프랩의 이름을 알린 건 100% 재생지로 만든 독서대 g.스탠드다.
발달 장애인과 함께 만들 수 있는 제품을 고민하던 중 예전에 내가 패키지 수업을 듣다가 만든 샌드위치 박스를 떠올렸다. 여기에 그림을 얹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오리가미 형태로 접었다 펼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g.스탠드를 조금이라도 알려보고자 와디즈에 펀딩을 했는데 사이트에 올리고 나서 10분도 안 되어 100%를 달성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2018년 그레이프랩은 법인으로 전환했다. g.스탠드를 주문했던 한 사회사업가가 본격적인 사업화를 제안한 것이다. 그레이프랩은 현재 제작팀, 디자인팀, 마케팅팀, 경영지원팀에 총 16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은 발달 장애인이다. 김민양 대표는 그레이프랩이 명확히 영리기업이라고 말한다.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비영리로는 그레이프랩의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레이프랩은 현재 g.스탠드에 이어 노트북 거치대인 g.플로우, 무드등 페이지라이트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설립 1년 만에 네 배의 수익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종이를 소재로 한 제품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종이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IT 쪽에서 일했던 터라 나도 모르게 기술 만능, 물질 만능을 체화하며 살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서 기술을 덜어내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고, 그렇게 종이 한 장만 남게 됐다. 두께에 따라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였다. 현재는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제품이나 태양광 조명등도 개발한 상태다. 그레이프랩에 소재의 제한은 없다. 우리가 무엇을 디자인하건 탄생부터 소멸까지 지구와 인간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이다.

그레이프랩의 가치에 동참하는 소비자, 기업이 많아진 것 같다.
처음에는 제품의 품질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발달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제품을 바라보기도 했다. 솔직히 이런 스토리가 초반에 마케팅 측면으로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소비자나 우리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레이프랩의 브랜드나 제품을 소개할 때 이런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제품 구매의 이유는 디자인과 품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적 메시지나 의도는 나중에 알도록 한다. 실제 소비자 조사를 해봐도 제품 자체가 예쁘고 실용적이기 때문에 구매하는 비율이 더 높다. 그레이프랩은 소셜 벤처 이전에 전문 디자인 집단이다.

발달 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긍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발달 장애인을 돕기 위해 이들을 채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필요해서 채용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발달 장애인 대부분이 마음의 상처가 많고 사회활동도 별로 해본 적이 없기에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역량은 생각 이상으로 뛰어났다. 초기 멤버 중에는 지금 관리자가 된 분도 있다. 지난해에는 장애인 공개 채용으로 직원을 뽑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일하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디자인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이런 경험들이 어우러져야 디자인 또한 더 성숙하고 넓어진다.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로 일할 때와 창업한 지금, 디자인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
이전에는 디자이너는 무조건 시각적으로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적어도 쓰레기를 만드는 디자인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디자인은 분명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 효율적 시스템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킨 것도 사실이다.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제품은 우리가 죽을 때는 사라져야 하지 않나. 몇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나는 이런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현재 기업이나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시행하는 사회적 기업 관련 사업에는 그레이프랩의 이름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레이프랩은 최근 서울시 혁신형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밖으로’라는 앱을 개발 중이다. 우리가 복지관이나 예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애인도 일부일 뿐이다. 복지관이나 예술관 밖 사각지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장애인들이 많다. 그래서 이들이 직접 자신의 그림을 올릴 수 있는 아트 플랫폼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누구나 작품을 올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그레이프랩은 지난해 이제범 카카오 전 대표에게 직접 투자를 받았다. ‘사회적 기업에는 인재 유입이 더디다’는 투자자의 얘기는 김민양 대표에게 또 다른 자극이 되었고, 올해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경력을 살펴보면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과감하게 시도해온 것 같다.
성격인 것 같기도 하다. 하는 일은 더 많아졌고 스트레스도 크지만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동기부여가 된다. 발달 장애인들이 그레이프랩에서 일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큰 에너지가 될 때가 많다.

창업을 생각하거나 다른 도전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물론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거나 해보고 싶은 일을 추진하는 용기가 한 번쯤은 필요한 것 같다. 일단은 몸으로 해보면 좋겠다. 나는 디자인을 할 때도, 창업을 할 때도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대신 몸으로 저지른 케이스다. 디자인은 결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창업도 마찬가지다. 움직여서 부딪쳐야 뭐가 나와도 나온다.

현재 그레이프랩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직원들과 계속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업을 하면 성장하거나 접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그레이프랩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이에 브랜딩과 제품을 어떻게 전개할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봐주는 소비자도 늘고 있고, 지원과 투자를 통해 함께하는 기업, 기관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그레이프랩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제품과 공간 디자인 컨설팅도 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 친환경, 윤리적 소비와 관련된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이들이 시장에서 더 큰 파워를 만들 것이라고 본다. 그레이프랩 역시 이런 소비자를 타깃으로 점차 B2C의 비중을 늘리려고 한다.

올해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스톤 페이퍼로 만든 스탠드로 해외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할 예정이다. 방수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로, 기존 재생지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제품이다. 또한 독일 작가 이보Ivo와의 협업도 예정되어 있다.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서 알게 된 작가로, 픽셀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레이프랩은 궁극적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국내외 작가와 협업할 계획이다. 오는 10월에는 연희동 캐비닛클럽하우스에서 팝업 전시를 연다. 그레이프랩의 제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체험형 전시로, 그레이프랩이 연구하는 재생지나 비목재지 등으로 직접 수첩을 만들어보는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노트북 스탠드 g.플로우


휴대용 멀티스탠드 g.스탠드


월별로 다른 재생지를 사용한 g.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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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오상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