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부동산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된 페이지명동 프로젝트. 더블유디에이치소셜그룹이 장기 마스터 리스한 한국YWCA연합회관 건물의 리모델링 기획과 설계를 사이트앤페이지와 사이건축이 맡았다. ©노경
페이지명동
기획 사이트앤페이지(대표 박성진), siteandpage.com
리모델링 설계 건축사사무소 사이SAAI(공동 대표 이진오), saai.co.kr
클라이언트 WDH소셜그룹(대표 양동수), deoham.co.kr
면적 5533㎡
준공 연월 2020년 10월
주소 서울시 중구 명동1가 1-3
웹사이트 pageproject.kr
개발 호재와 임대 수익률 같은 자산적 가치 말고, 건물이 가진 이야기와 공간에 흐른 시간에도 가치를 매겨 건물을 사고팔 수 있을까? 지난해 결성한 초현실부동산은 문화유산은 아니지만 생활문화사적 가치를 지닌 도시의 숨겨진 공간을 찾아 중개한다. 오래된 공간에 대한 낭만과 애착을 공유하는 이진오 건축사사무소 사이건축 대표와 공간 기획자인 박성진 사이트앤페이지 대표가 벌인 일이다. 1967년부터 명동을 지켰던 한국YWCA연합회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이들의 구상이 구체화되었다. 현실 논리가 지배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건축물과 땅에 새겨진 기억과 흔적을 발굴해 새 주인을 찾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취지에 공감하는 에디터, 디자이너, 공인중개사, 행정가, 도시계획가가 모여 부동산을 꾸린 것이 초현실부동산의 시작이다.
초현실부동산의 업무는 준공 후 스무 해 이상 지난 오래된 건물을 찾고 리서치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지역의 생활 문화를 대변하는 전형적인 건축물이나 기억할 만한 사건과 인물, 시대를 증언하는 공간과 같이 일반적인 부동산 거래에서 채택하지 않는 사회문화적 기준으로 대상을 물색하고 선별하는 것이다. 웹사이트에는 건물의 위치, 면적, 방 개수, 주차 가능 대수 등 여느 부동산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정량적 정보와 함께 건물이 위치한 곳은 어떤 동네이고, 어떤 사람이 어떻게 지었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보다 내밀하고 심층적인 정보를 함께 게시한다. 부동산 거래는 건물의 예비 주인과 대중에게 도시 공간의 기억과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채택한 한 가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에 어울리는 건축·문화적 기획과 콘텐츠를 제안하고 운영과 관리까지 서비스하는 것은 초현실부동산의 또 다른 강점이다. 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막 설립한 부동산의 중개 실적은 아직 미미하다. 그러나 초현실부동산의 목적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에 있지 않다. 때 묻고 먼지 쌓인 공간을 찾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걸맞은 새로운 용도와 주인을 찾는 모든 과정이 이들이 하는 활동의 핵심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느린 거래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보존과 개발의 틈 사이에서 도시의 이야기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느리고 묵직한 움직임은 그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부동산 시장에 이는 새로운 바람임은 분명하다. surrealestate.kr
박성진ㆍ이진오
초현실부동산 공동 대표
박성진(왼쪽)은 사이트앤페이지 대표로, 건축과 공간을 기획하고 이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진오(오른쪽)는 사이건축의 공동 대표다. 사회적 공유 공간 어쩌다가게, 어쩌다집 등을 기획ㆍ설계ㆍ운영했다. ©박순애(스튜디오 수달)
“오래되었거나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기 때문에 무조건 남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보존했을 때 건물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환원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는 것이다.”
초현실부동산의 역할은 무엇인가?
건축물이나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시장 논리로 번안하여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 오래되었거나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기 때문에 무조건 남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보존했을 때 건물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환원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는 것이다.
대상이 되는 건물과 공간 정보는 어떻게 찾나?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팀원들과 함께 답사를 다닐 예정이다. 현재는 각자 길을 다니면서, 지인을 통해, 또는 구글 스트리트 뷰에서 흥미로운 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신문 기사나 등기부등본 등의 기록을 통해 건물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실제로 부동산 플랫폼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다. 부동산 거래는 생각보다 공간과 그 공간의 주인에 대한 많은 기록을 남긴다.
오래된 건물을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에는 상당한 비용과 공사인허가 절차가 필요하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한국YWCA연합회관의 경우 명동 지구단위계획 범위에 포함되어 있어 따라야 할 기준이 있었다. 요즘의 생산 방식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건물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초현실부동산의 활동 범위와 수익 모델은 무엇인가?
우선은 프로젝트 그룹 형식으로 공간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초현실부동산의 존재를 알리는 노력을 할 예정이다. 서울에는 점점 더 오래된 건물이 많아지고, 레노베이션 시장의 양적 확대는 초현실부동산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될 것이다. 3년 안에는 실제 중개 수익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작업 과정과 결과물을 책으로 출판할 계획도 갖고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과 도시 환경에서 주목하는 현상은 무엇인가?
양적 포화 상태에 이른 도시에서 무조건적 건설이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공과 분양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직접 운영하는 디벨로퍼들이 등장하면서 공간의 품질과 가치를 높이는 디자인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역으로 건축설계에서 부동산 개발로의 움직임도 포착된다. 공간을 직접 운영하면서 자신의 문화적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는 건축가들이 경영과 부동산 개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건축의 업역도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기억을 파는 복덕방 초현실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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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부동산 #중개 #페이지명동 #리서치Share +바이라인 :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글 이솔 객원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