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디자인 신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는 ‘다양성’인 듯하다. 올해 인테리어 분야 출품작의 완성도는 전체적으로 높아졌으나 심사위원들은 유행과 흐름에 편승한 경우가 너무 많아 독창성이 부족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디자이너 고유의 세계가 느껴지지 않기에 작품의 질적 수준은 높아졌어도 힘 있는 공간을 찾기 힘들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공간의 본질을 이해하기보다는 불필요한 미사여구로 장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최종 위너로 의견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수상작은 작품성과 완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아키모스피어의 ‘네이버 1784 로비’다. “과거 인테리어 작업이 건축물을 내피화하거나 내부 구조를 새롭게 구성하는 데 주력한 반면 네이버 1784 로비는 건축적 맥락을 받아들이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시감이 드는 작품이 대다수인 가운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매진한 프로젝트다. 디자이너가 설계한 모듈이 어떻게 작동하며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도 궁금해진다”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노실의 천사〉전에 대해서는 “전시 디자인도 공간 비평 영역에 포함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응원의 목소리를 남겼다. 한편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 더라운지디케이, 오프오, 규반 등이 후보작으로 언급되었으나 공간적 힘이 대체로 빈약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네이버 1784 로비
디자인 아키모스피어(대표 박경식), archimosphere.kr
참여 디자이너 박경식, 석지선, 김원경, 김지은, 이바름
프로젝트 매니징 네이버 SPX 디자인 랩
클라이언트 네이버
발표 시기 2022년 4월
사진 최용준
네이버 1784 로비에는 왜 로봇 연구소가 있을까? 아키모스피어 박경식 대표는 수상작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질문으로 운을 뗐다. 과거 로비 공간은 컨시어지에 가까웠다. 사람과 사람이 유연하게 만나도록 안내하는 역할에 방점을 뒀다. 하지만 오늘날 사옥 로비는 회사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아카이브를 담는 거대한 팝업과 같다. 네이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로비 공간을 제시해왔다. 제 1 사옥 그린팩토리는 로비를 라이브러리로 조성해 기꺼이 동네 도서관을 자처했는데 이는 헤리티지를 전시하는 단순한 쇼케이스를 넘어 브랜드 경험 공간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모종의 선언에 가까웠다.
지난 4월 공개한 제2 사옥은 로봇, 자율 주행, AI, 클라우드 등 네이버가 축적한 모든 기술을 망라한다. 그중에서도 로비는 모든 임직원이 거쳐가고 파트너사와 에너지를 발산하며 기업을 동경하는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충족하는 공간이다. 로봇 ‘루키’는 공간을 누비며 임직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배달을 마친 뒤 복귀한 루키의 표면을 양팔 로봇 ‘앰비덱스’가 소독해주기도 한다. 로봇이 일상인 공간에서 첨단 기술의 융합을 실험하는 하나의 테스트 베드인 셈이다. 다시 말해 네이버 1784 로비는 기업의 미래 정체성을 응축한 곳으로, 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브랜드를 집약해서 전달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디자이너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첨단 기술은 계속해서 진일보하며 공간 환경도 이에 따라 발걸음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스마트 혁신 기술에 시시각각 대응하는 구조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아키모스피어는 벽체, 천장, 바닥 등 공간의 모든 요소를 제품 디자인 단위로 분화해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롭게 결합하고 해체하여 재조립할 수 있는 모듈을 설계했다. 모듈에 사용한 알루미늄은 전부 재생산 가능한 소재. 이는 네이버의 ESG 경영과도 맞닿아 있다. 기능성, 효율성, 가변성, 친환경성을 확보한 조립 형태의 공간 환경을 개발함으로써 하나의 시스템을 설계한 것이다. 네이버는 사옥 전체를 모듈화하는 건축 어법을 취해왔는데 이런 맥락을 실내 공간으로 끌어들여 가구와 조명 시스템까지 일체화된 형태로 제시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디자인을 현실화하는 실시설계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완성도는 결국 이 단계에서 정해진다고 판단했기에 로비의 모든 공간 유형을 3D 조립도 형식의 시방서로 제작해 완성도를 높였다. 일반화되지 않은 공간 환경인 만큼 각 모듈의 단위 요소부터 결합 방식, 공정 순서까지 하나도 단순한 것이 없었는데 그 결과물은 놀랍도록 간결하고 견고했다. 지난해 아키모스피어가 발표한 더현대 서울의 언커먼스토어가 ‘공간 환경은 변화해야 한다’라고 설파했다면 네이버 1784 로비 설계에는 ‘유연함’이라는 단서를 추가했다.
박경식은 “심플한 공간 환경을 의도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풍부하도록 디자인했다”라며 구조체를 도출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설계의 해법이 언제나 클라이언트에게 있으며 그 의견을 얼마나 선명하게 이해하는지가 프로젝트의 큰 축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네이버 1784 로비는 로봇 연구소, 로봇 카페, 파트너 회의실, 브랜드 스토어, 모바일 테스트 룸 등 수용해야 할 프로그램이 가장 많고 복잡했다. 이곳에서 일하게 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간의 내러티브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마치 수십만 개의 퍼즐을 맞추듯 정교했다. 프로젝트를 맡은 네이버 1784 총괄 박치동 이사, 이희경, SPX 디자인 랩 남진아 리더가 매주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회의록을 함께 정리하며 공간의 방향성을 좁혀나갔는데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작업이었다.” 네이버 1784 로비는 디자이너와 기업이 함께 일궈낸 한 뼘의 진보다. 박경식은 프로젝트가 끝나고 이곳의 의미를 ‘진화’와 ‘상생’으로 함축했다. 아키모스피어의 정체성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고 말하던 그의 확신은 더욱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