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공간 설계 경험을 쌓은 김준호 소장, 황지연 대표는 2017년 플라이밍고를 설립하고 리테일 공간을 통한 브랜딩과 새로운 경험 디자인을 제안하고 있다. AHC 스파, 랩 롯데백화점 매장, 닥터자르트 현대면세점 매장, JM솔루션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바닐라코 중국 SI+VMD 매뉴얼, 뮤리 VMD 디자인, 이너 시그널 라운지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flymingo.kr
이너시그널 라운지 브랜드 이너시그널에서 운영하는 스파 라운지. 차분한 무드를 벽돌 마감재로 표현했다.
플라이밍고는 뷰티, 패션 등 리테일 숍 위주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황지연 우리 성향상 주거 공간보다는 리테일 숍이 더 잘 맞는다. 새롭게 오픈하는 매장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브랜드를 녹여내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클라이언트의 니즈에 맞춰 디자인을 디벨롭하고 공간에 실제로 구현하는 일이 즐겁다.
두 사람의 작업 스타일은 어떤가? 다른 점 혹은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한다면?
황지연 김준호 소장은 즉흥적이고 예술적인 스타일이다. 작품에 가까운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데에 능하다. 반면 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을 잘 세우고 실행하는 쪽이다.
김준호 그래서 프로젝트 결과물의 균형이 잘 맞는 편이다. 브랜드의 다양한 니즈에 대해 표현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자빈드서울 LCDC 팝업 스토어 허깅Hugging 제품 출시에 맞춰 그래픽·공간 디자인, 시공을 진행했다. 제품의 가벼움과 스포티함을 하늘 위 구름으로 은유하고, 스포티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굿즈와 소품을 활용했다.
다른 분야에 비해 뷰티 브랜드 매장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
황지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공간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다. 특히 브랜드의 키 컬러는 공간 디자인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다. 그런데 클라이언트에 따라 키 컬러가 적용된 제품의 패키지가 소비자의 눈에 더 잘 띄도록 공간에 동일한 컬러 사용을 피해달라는 요구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오히려 뷰티 브랜드 공간 프로젝트를 흥미롭게 만든다.
김준호 뷰티 브랜드는 어느 분야보다 트렌드에 민감하다. 카테고리도 많고, 브랜드마다 강조해야 할 기술적 측면이나 친환경, 비건 등 다양한 이슈가 있다. 활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만 그만큼 선택과 집중, 조화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자연적 요소를 담는다면 주요 소재를 푸른 나무로 할지, 꽃으로 할지 등에 대한 판단을 통해 제품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나타내야 한다.
브랜드 감각을 공간에서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김준호 브랜드가 가진 센스나 감도, 협업 부서와 담당자 마인드까지 모두 브랜드 감각에 포함된다. 패션 브랜드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충성 고객, 나아가 열렬한 팬으로 만드는 장치로 활용한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도와 즐거운 경험 때문에 소비자들이 해당 브랜드만 찾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뷰티 매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향을 맡고, 손에 발라보며 제형을 느껴보는 것 등의 경험이다. 브랜드가 가진 특징을 살려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에 녹여내야 한다. 무엇보다 공간에 오래 머무르도록 해 경험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재미있는 체험 요소나 아티스틱한 오브제 등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황지연 AHC 스파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공간 리뉴얼을 통해 너무 매장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룩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AHC 제품의 수분감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도심 속 나만의 오아시스’를 테마로 사막, 오아시스, 협곡, 동굴 등의 키워드로 공간 스토리텔링을 구체화하고 다양한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닥터자르트 세라마이딘 팝업 스토어 ‘펭귄의 이글루’라는 콘셉트로 튜브를 활용해 건조한 사막에 수분을 더한다는 스토리를 전개했다.
디자인에서 플라이밍고가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김준호 우리는 모든 공간을 좀 더 유연하게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한다. 예를 들면 플래그십 스토어의 한 배경을 활용해 유튜브 촬영을 하거나, 브랜드에서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다. 플라이밍고가 디자인한 공간이 계속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팬데믹 전후로 뷰티 브랜드 매장이나 마케팅 방향이 어떻게 달라졌나?
김준호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외 뷰티 시장 규모가 매우 컸다. K-뷰티 브랜드가 워낙 인지도가 높기에 면세점 방문자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도 중요했다. 하지만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변했다. 공간 자체에 대한 브랜드 감도와 기획력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황지연 과거에는 브랜드가 제품에 녹아 있는 기술력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이제는 스토리에 더 집중한다. 아무리 스몰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빈 드 서울’의 경우 공식 매장은 없지만 시즌 팝업을 통해 소비자에게 접근한다. 브랜드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의 지향점을 명쾌하게 정의하고 이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시효 제주 신라 신라호텔에서 전개하는 뷰티 브랜드 시효의 두 번째 매장. 프랑스 BETC 디자인 스튜디오의 디자인을 로컬 관점에서 재해석해 실시설계를 진행했다. ‘제주 가든’을 콘셉트로 소재와 형태, 물성을 전개한 것은 그 일환이다.
백화점 매장, 플래그십 스토어, 팝업 숍, 전시 등 여러 형태의 공간이 있는데 연출에도 차이가 있나?
황지연 목적이나 기능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브랜딩 측면에서 접근은 비슷하다. 최근에는 팝업 스토어가 많아졌는데, 사실 그 형태나 구성이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은 좀 아쉽다. 현재 뷰티 브랜드들의 고민도 비슷하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특정 매장에서만 살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전문가 컨설팅 등을 통한 소비자 접점 등 공간별로 차별화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김준호 한창 활발했던 뷰티 로드숍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이제 뷰티 편집숍과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그리고 팝업이 주된 이슈가 되었다. 팝업 형태일수록 내용이 더 명확하고 특별해야 한다. 다른 공간에 비해 자유로운 방식으로 기획할 수 있다는 점은 팝업만의 매력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승부수를 띄우는 팝업 스토어의 경우 환경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소재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AHC 스파 신사 ‘물이 가득 찬 사막(Waterful Desert)’을 콘셉트로 수분에 대한 재료, 형태의 다양한 물성을 선보였다.
리테일 시장에서의 공간 디자인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황지연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최근의 현상을 피지털(피지컬과 디지털의 합성어)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매장에 방문한 고객들이 QR 코드나 AR·VR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과 접목한 경험에 재미를 느끼고 이를 다시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인증하는 시대다. 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면서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될 것이다.
김준호 황지연 대표의 말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되어 제품을 구경만 하는 매장보다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공간이 많아지는 추세다. 이에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 예상한다. 또 지속 가능성과 친환경에 대한 요구도 점점 커져가는 시점이다. 의식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브랜드는 물론 디자이너들도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 차별화된 경험을 설계하는 것 플라이밍고 김준호, 황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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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테스트해본 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소비 패턴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매장의 목적도 달라졌다. 제품을 잘 보여주기 위해 디스플레이하는 것보다 ‘어떻게 브랜드의 감각을 보여주는가’에 방점을 찍는 공간이 많아지는 추세다. 디자인 스튜디오 플라이밍고는 이러한 공간 트렌드를 읽고 차별화된 뷰티 매장을 설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디자인으로 영리하게 풀어낸 리테일 숍에서 플라이밍고만의 감각이 드러난다. 김준호 소장과 황지연 대표를 통해 뷰티 공간의 최신 트렌드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다.Share +바이라인 : 글 오상희 객원 기자 담당 서민경 기자 인물 사진 윤선웅(에스플러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