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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 산책자를 위한 도시 건축 사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관람객을 위해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절대 전시를 몰아 보지 말라는 것이다. 서울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이 도시를 천천히 거닐고, 음미하며, 곱씹을 때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삼청동, 광화문 나들이 길에 〈현장프로젝트〉를 거쳐 가도 좋고, 서울광장에서 약속 상대를 기다리다 불쑥 〈게스트시티전〉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스쳐 가듯 본 한두 작품을 곱씹으며 서울에 관해 자문자답하거나, 다시 전시장을 방문해 또 다른 도시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행사의 묘미다. 건축가의 언어가 나와 다소 다르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니까. 그래도 왠지 모를 장벽이 느껴진다면 이 사전을 들춰보기를 추천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오밀조밀한 정보가 어려운 건축 전시의 문턱을 사뿐히 넘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일련의 개발
A Series of Developments
서울은 태생부터 계획도시였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개국 당시 새 도읍 건설을 강력 추진했는데, 천도 후보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풍수지리였다. 이 도시의 본모습이 산과 물길, 그리고 성곽이 어우러진 생태 도시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종의 개성 환도로 잠시 쇠락기에 접어들었던 옛 서울, 한양은 1405년 태종의 한양 환도로 다시금 활력을 띠기 시작했다. 태종은 역사 속에서 형제를 숙청하고 왕위에 오른 잔혹한 군주로 묘사되곤 하지만 도시계획가로서는 탁월한 성취를 보였다. 그는 시전행랑을 건설해 간선도로 구획을 확정하고 개천 정비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또 세종을 세자로 책봉한 후 한동안 미뤄두었던 토목 공사를 진행했다. 이때 그는 토목 공사가 백성을 괴롭게 하는 일이지만 중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제때 끝내 세자가 민심을 얻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러 변곡점을 겪으면서도 도시는 자연과의 조화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고도성장기 시절 불명확한 사회적 공동 가치 아래 진행한 지구 단위 계획과 단기 도시계획으로 ‘땅의 도시’ 서울의 모습이 무색해졌다. 〈도시의 승리〉를 쓴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에 대해 “인류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든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했다. 오늘날 서울에 사는 우리도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것은 그동안 무분별한 개발 과정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봐온 까닭일 것이다.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정면으로 주시한 주제이기도 하다.




메가시티의 연결
Bridging the Megacity
메가시티란 행정구역상 구분돼 있으나 생활, 경제 등이 기능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거대도시를 뜻한다. 지난 세기 일본의 경제 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그의 책 〈국경 없는 글로벌 경제 시대〉에서 기존 국가 대신 지역 국가(region states)가 세계경제를 조직화하는 새로운 경제 단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오늘날 메가시티의 부상을 예견한 것이었다. 하지만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는 법. 오늘날 전 세계 메가시티는 점점 높아지는 범죄율, 식수 부족과 대기오염, 일부 지역의 슬럼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승자독식 경향에 따른 빈부 격차 심화 등 정신적, 물리적 단절 문제가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글로벌 스튜디오〉의 주제를 ‘메가시티의 연결’로 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터. 전시에 참여한 전 세계 30여 개 대학교 학생들은 ‘한강을 품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 조건을 살펴보고 연결성, 지속 가능성, 도시와 자연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3개의 다리를 제안했다. 노을공원, 노들섬, 서울숲 인근에서 한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3개의 다리는 물리적 연결을 넘어 도시의 필수적인 연장선으로, 일상의 분주한 삶과 고요한 자연을 연결하고 교차시키는 촉매제다. 보행자, 자전거, 소형 전기 자동차 등 소프트 트래픽을 위한 AI 기반의 도로부터 생물 다양성과 녹지화를 사려 깊게 고려한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전시 자체가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학생들을 한데 모으는 역동적인 플랫폼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지면이 없는 도시: 홍콩 가이드북
Cities without Ground: A Hong Kong Guidebook
지면을 확보하기 어려운 초고밀 도시의 의미와 역할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홍콩을 리서치한 아담 프램프튼, 조나단 D. 솔로몬, 클라라 웡은 이 도시를 ‘지면이 없는 도시’로 정의한다. 가파른 경사면에 건물을 지었기에 도시에 지표면은 물론 ‘지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이는 홍콩의 도시 건축에서 밀도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들은 이 지면이 없는 도시가 고밀도 현상에 대응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홍콩을 대중교통 노선과 보행자 도로, 쇼핑몰과 사무실 로비가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연속된 내부를 가진 도시로 파악한 것. 극한의 제약 조건은 오히려 홍콩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전시회와 시위가 벌어지는 쇼핑몰, 가사 노동자들이 모이는 보행로, 레스토랑과 댄스홀이 되는 거리 등이 광장 같은 안정적인 지면을 대신하며 공공 공간의 생존력과 견고함을 보여준다. 〈게스트시티전〉에 ‘지면이 없는 도시’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드로잉들은 입체적으로 구현된 홍콩의 새로운 지면을 보여주며 도시의 거점이 어떻게 연결되고 활용되는지 일러준다.



©Adam Mørk
도르테 만드루프 A/S
Dorte Mandrup A/S
덴마크 여성 건축가 도르테 만드루프가 운영하는 건축사 사무소. 2017년에 설계한 바덴해 박물관(The Wadden Sea Center)으로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전에 참여한다. 도르테 만드루프는 조각과 자연과학을 공부한 건축가라는 점이 독특한데, 이런 영향 때문인지 예술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스타일이 특징이다. 이곳 사무소만의 개성도 확실하다. 입지와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독창적 형태를 도출한다. 최근 설계한 그린란드의 일룰리사트 아이스피오르 센터Ilulissat Icefjord Centre와 노르웨이 고래 관찰 박물관(The Whale)이 대표적이다. 

두 곳 모두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공유한다는 점, 나지막한 유선형 외관 등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지형을 이루듯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는 점에서 건축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도르테 만드루프 A/S는 사명에 환경 문제 해결을 명시할 정도로 친환경 공간 설계를 고민하는 곳이다. 지난해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속 가능한 국제 건축 대상(Global Award for Sustainable Architecture)을 수상하기도 했다.



©Ensamble Studio
앙상블 스튜디오
Ensamble Studio
스페인 건축가 안톤 가르시아아브릴 Antohn García-Abril과 데보라 메사Débora Messa가 2000년에 설립한 건축사 사무소다.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전개하는데 최근 들어 바위, 구름 등 자연물의 형태를 본뜬 설치물 작업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조형성에 천착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앙상블 스튜디오는 건축 실험에 누구보다 앞선 태도로 임하고 있다. 설계와 시공 과정의 혁신을 목표로 스타트업 워호WoHo를 설립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회사를 세운지 불과 3년밖에 안 됐지만 새로운 설계 기술에 대한 구상은 이미 200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독자적인 모듈 시스템 개발이다. 블록을 조립하듯 쉽고 빠르게 시공할 수 있도록 공간을 부품화했다. 워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건설 비용이 기존 대비 20% 이상, 납품 기간은 50%, 탄소 발자국은 최대 70%까지 줄일 수 있다. 앙상블 스튜디오는 건축설계 기술을 전문으로 연구·개발하는 앙상블 파브리카Ensamble Fabrica도 운영 중이다. 올해 비엔날레 주제전에서는 다년간 축적한 설계 및 시공 기술 노하우와 남다른 관점을 바탕으로 참여한 땅의 집 ‘칸 테라Ca’n Terra’를 공개한다.


플렉서블 어바니즘
Flexible Urbanism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와 더 큰 규모로 건물이 세워지며 도시 건축의 복잡성과 특수성을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계획은 행정 권력의 규제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플렉서블 어바니즘은 국가 제도나 규정이 도시계획을 독점하며 결정하는 톱다운 방식이 아닌 시민, 건축가, 개발사와 각 분야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상향식 체계를 말한다. 올해 비엔날레에서 소개하는 크고 작은 마스터플랜을 보면 이런 체계로의 전환이 얼마나 시급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도시가 얼마나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로 성장하는지, 오늘날 도시 건축의 수요가 어떤 거버넌스를 요구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주제전 파트 2. 도시〉를 기획한 천의영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서 서울의 미래상을 제안하고 공유하는 디지털 어반 플랫폼 SAUP(Seoul Architecture & Urbanism Platform)를 구축한다. 해외 각국의 선진 사례를 참고해 도시 프로그램을 유연하게 재구조화하고, 플렉서블 어버니즘과 용적률, 건폐율 인센티브에 기초해 시민, 기업, 공공이 함께 제안하는 도시의 미래상을 디지털 인터랙티브 방식으로 전시한다.




장소의 혼
Genius Loci
안도 다다오는 ‘건축은 터를 읽는 일’이라고 했다. 건축 현상학 분야의 핵심 이론가인 크리스찬 노베르그슐츠Christian Norberg- Schulz는 이를 ‘장소의 혼’이라 했다. 1979년 출간한 책 〈장소의 혼: 건축의 현상학을 위하여〉에서 “건축의 의무는 장소의 의미를 만들어내 그 땅에서 인간이 거주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이를 ‘인간의 근본적 필요 욕구’라고 말했다. 이는 조병수 총감독이 이번 비엔날레 주제로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을 제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건축은 자연의 인지를 규정하는 행위다. 현대 도시는 수많은 건물을 짓고 허무는 과정에서 자연을 느끼기 힘든 곳으로 쇠락했다. 이 현상이 계속되면 자연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라며 무릇 건축이란 ‘사람이 자연을 인지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어떤 것을 디자인하기보다는 땅 고유의 성격이 고스란히 느껴지도록 만들자는 얘기다. 우리 선조들 또한 장소의 혼을 느끼며 건축물을 지었다. 좋은 땅이 있으면 그곳에 집을 짓지 않고, 땅 자체를 느낄 수 있도록 살짝 비켜난 터에 집을 지었다. 땅의 정취, 땅의 기운을 막지 않기 위해서다. 조병수 총감독이 큐레이터로 참여한 〈주제전 파트 1. 건축〉에서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한강
Han River
한강은 건축가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장소다. 조병수 감독이 큐레이터를 맡은 〈서울 100년 마스터플랜전〉은 한강 변의 다층적 대지 활용과 녹화 방식을 제안한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덮는 한강 변 공원, 녹지 축으로 연결한 도심 생태계, 자연 합일적 스카이라인, 다층화된 녹화 언덕, 도시 건축으로서의 한강 다리 등 여러 유형의 구체적 계획안은 생각해볼 만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편 〈주제전 파트 2. 도시〉에 참가하는 어반에이전시는 ‘한강, 그리고 새로운 밀도’를 통해 서울의 도시화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한강에 주목한다.

어반에이전시에 따르면 과거 한강은 지금보다 더 자연스레 굽이치는 형태로 노들섬, 선유도, 밤섬 외에도 많은 섬이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밀도를 가지고 있었던 한강이 수위 범람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간선도로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점차 균질화됐다. 그 결과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1km 너비의 균일한 폭을 이룬 강이 조성됐다. 오늘날 한강은 강남과 강북을 가르고, 이는 두 지역 간 사회, 경제적 단절의 가속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진공 상태의 한강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에 어반에이전시는 연결성을 강화한 한강을 꿈꿨다. 직선적 보행교 대신 한강을 가로지르는 동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자동차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이동하는 녹색 보행 네트워크를 제안한다.



©조병수
상호 의존성
Interdependent
‘땅의 건축’은 낮춤과 스밈을 통한 상호 의존적 건축을 말한다. 주변을 제압하거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건축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며 대지의 조건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건축, 그리하여 주변과 어우러져 우리의 몸과 마음이 편하게 거주하도록 이끄는 고유함의 건축, 서로에 대한 깨달음의 건축이다. 달라이 라마는 1998년에 출간한 책 〈고요함을 향한 길(The Path to Tranquility〉에서 “국가, 인간, 동물, 세상의 모든 것은 관계성에서 비롯되며 많은 문제가 이에 대한 인지 부족에서 기인하다”라며 상호 의존성의 중요함에 대해 설파했다. 조병수 총감독은 달라이 라마의 주장에 적극 동조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궁극적 지향점은 산길, 물길, 바람길에 담긴 상호 의존적 관계를 깨닫는 것이다. 건축과 사람,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을 만들자는 메시지다.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땅의 건축’과 이런 건축이 모여 만들어진 ‘땅의 도시’가 궁금하다면 주제전을 특히 눈여겨보자.




지 오터슨 스튜디오
Ji Otterson Studio
한국 출신 건축가 지예원과 미국의 라이언 오터슨Ryan Otterson이 이끄는 건축 스튜디오. 건축, 파사드 디자인, 도시 디자인, 마스터플랜 설계, 에너지 컨설팅 등 다양한 스케일의 건축을 아우른다. 서울과 보스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에너지와 재료 연구를 통해 작업을 전개하며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자 한다. 사람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동시에 건축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는 새로운 유형의 디자인을 탐구한다. 올해 〈서울 100년 마스터플랜전〉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고밀 녹색 주거 유형을 탐구했다. 지 오터슨 스튜디오가 제시한 비전은 지형지물로 바람을 막고 태양열을 활용해 서울을 생태 도시로 되돌리자는 것. 용산구 이촌동 일대의 주거 문제를 다루면서 한강과 도시의 공간적 관계를 탐구했다. 한편 〈서울 100년 마스터플랜전〉에는 지 오터슨 스튜디오 외에도 50여 팀의 작가들이 참여해 땅의 다층적 활용과 유기성을 고려한 기본 마스터플랜을 제시한다.




김치앤칩스
Kimchi And Chips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컬렉티브로, 손미미와 엘리엇 우즈가 2009년에 결성했다. 각각 한국과 영국 출신인 이들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사이드 메뉴인 김치와 감자튀김에서 힌트를 얻어 그룹명을 지었다. 손미미는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엘리엇 우즈는 이미지와 실재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들은 예술, 과학, 철학을 서로 다른 학문으로 보지 않는다. 동일한 지형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대안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세 분야를 복합적으로 활용해 작품을 구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치앤칩스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ZKM 미디어 예술센터, 서머싯 하우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ACC 광주,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리조네이트 페스티벌 등에 전시했으며 동시대 예술과 기술 두 영역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마당에서는 해와 달에서 내려온 빛이 얼음 결정에 반사돼 하늘에 원형의 띠를 형성하는 광학 현상인 ‘헤일로’를 99개의 로보틱 거울 모듈과 미스트, 태양, 바람을 활용해 인공적으로 생성했다.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현장프로젝트〉 작가로 참여하는 김치앤칩스는 수천 개의 물리적 포털을 통해 100년 후 서울의 모습을 구현하는 파빌리온 ‘리월드Reworld’를 2160개의 다이아몬드 컷 마이크로 프리즘을 활용해 선보인다.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이들의 실험을 다시금 접할 기회다.



©최용준

Land
“땅 이야기는 땅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이야기이고, 땅을 스치며 일어난 바람의 이야기이며, 땅을 배경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의 이야기이자, 빗물의 이야기인 동시에, 사람들이 떠들어내는 소리의 이야기이다. 또 만물이 소생하는 잉태의 이야기이면서, 지속 가능한 건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들은 곧 땅에서 떼어놓을 수 없고, 떼어놓을 수 없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뒤엉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은 우주만큼 방대해서 내가 어떻게 관찰하고 설명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시간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마다 제각각 다르게 이해되고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땅속의 집, 땅으로의 집〉 - 조병수


모나쉬 어반 랩
Monash MUrban Lab
호주의 대도시는 자연환경의 제약으로 주로 해안가에 위치하는데, 토지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어 저밀 주거지를 형성했다. 대도시가 흔히 겪는 고밀도 주거난 문제에서 한발 멀어질 수 있었던 이유다. 그 때문일까? 멜버른은 〈이코노미스트〉에서 발표하는 살기 좋은 도시 지표에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 동안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이 도시에도 급격한 인구 증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민자와 호주 내 다른 지역 인구가 유입된 것이 주요 원인이다. 멜버른은 이를 수용하기 위해 외연의 팽창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도시개발의 수요와 커뮤니티 기반 시설 공급의 필요성이 함께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모나쉬 대학교 부설 연구소 모나쉬 어반 랩Monash Urban Lab은 〈게스트시티전〉에서 현재 지반 조건을 기준 삼아 건축, 조경, 도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지속 가능하고 다양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지반을 활용하고 생성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일련의 연구를 바탕으로 멜버른의 ‘땅’의 진화와 그것이 일반 도시 유형학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면밀히 탐구한다. 여기서 우리는 도시 재생 및 신도시 개발에서 기반 시설의 부재가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니켄세케이
Nikken Sekkei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설계 사무소이자 세계 3대 도시 건축 설계 회사 중 하나다. 1900년대 창업 이래 지난 123년 동안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유명한 건축물의 설계를 맡으며 도심 개발에 주력해왔다. 도쿄 도심인 마루노우치와 시부야 개발을 주도했으며, 도쿄 타워, 도쿄 돔, 도쿄 스카이 트리 등 일본인이라면 모두 알 만한 건축물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서울 삼성동무역센터도 니켄세케이 작품이다. 니켄세케이는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도시의 건전한 미래 만들기에 공헌하고자 2010년부터 역·도시 일체 개발 연구회를 발족해 활동하고 있다. 연구를 통해 심도 있고 미래지향적인 역·도시 개발을 제안하는 것은 물론 출판, 강연 등 대외 활동으로 오랜 시간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디자인에 근간을 두고 도시와 건축을 형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지난 행적과 나아갈 방향은 이번 비엔날레 〈게스트시티전〉에서 엿볼 수 있다.




원시티스테이트
One City State
세계는 점점 더 규모 경쟁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모여 살며 그중 20% 이상은 거대도시에서 거주한다. 그리고 생산의 2/3 이상이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도시의 연합체 같은 메가리전mega-region(*)개념이 형성된 배경이다. 놀랄 것도 없다. 글로벌 강대국들이 경제를 견인한 지 오래다. 천의영 큐레이터가 “서울도 메가리전에 대항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가 기획한 〈주제전 파트 2. 도시〉의 일환인 〈원시티스테이트〉는 도시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민국의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탐구한다.

AI의 도움을 받아 데이터 마이닝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미래 도시 건축의 키워드는 크게 ‘교통 물류’, ‘디지털 변환’, ‘탄소 중립’, ‘인구 변화’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천의영은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드러나는 메가리전 현상을 통해 인구가 감소하고 지역이 소멸해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 및 기후 재앙의 미래 변환 속에서,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그린 네트워크를 강화해 효율적인 생태 도시 연합으로 발전하는 것, 〈원시티스테이트〉의 핵심이다.

(*)산업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도시 연결 권역. 사회 기반 시설을 공유한다.



‘자유를 위한 제안’. ©KCAP
패러럴 그라운즈
Parallel Grounds
올해 비엔날레는 ‘서울의 지형을 회복하자’와 ‘자연을 누릴 수 있도록 도시를 재구성하자’라는 큰 줄기로 이어진다. 이 지향점의 전제는 결국 밀도를 집약시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염상훈, 임진영 큐레이터는 〈게스트시티전〉의 전시명을 〈패러럴 그라운즈〉로 설정했다. 도시의 밀도를 높이면서도 활력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밀집의 방식을 소개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여러 층을 수직적으로 쌓기보다는 밀도와 공공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 도시의 활력을 만드는 것이다. 22팀의 참여 작가는 그라운드의 성격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이를 재구성한 도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용적률 거래를 통해 도시의 개발과 보존의 해법을 찾은 사례, 밀도와 형태를 다루는 새로운 제안, 강이나 바다 위에 새로운 땅을 조성하는 정책 등을 통해 우리가 도시 환경에서 함께 생각해볼 여섯 가지 질문을 던진다. 각 질문은 전시의 소주제이기도 하다.

〈패러럴 그라운즈〉에서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각 사례의 사회·정치·법·행적적 배경을 함께 얘기한다는 것이다. 또 이미 실현했거나 실현 중인 작업에 주목해 그 과정과 실제 작동 방식을 공유한다. 염상훈과 임진영은 도시의 다양한 민, 관, 시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다양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결과물만 주목하기보다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율해온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패러럴 그라운즈〉에서는 거대하고 지난한 프로젝트, 화려한 랜드마크 너머를 들여다봄으로써 도시 공간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에 대한 세심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조병수
100년 후 서울에 관한 질문들 Q
Questions about Seoul for 100 Years from Now
〈서울 100년 마스터플랜전〉은 50여 팀의 참여 작가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100년 후 서울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제안하는 전시다. 큐레이터 조병수 총감독은 “서울이 가진 자연, 지형적 요소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환경적 자원이며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유산이다. 많은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들이 무분별한 개발로 도시가 망가졌고 앞으로 더 망가질 것에 대해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렇다 할 획기적인 대책이나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도시계획의 장기적 발판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시는 다음 질문을 던진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덮는 한강 변 공원을 조성할 수 있을까? 한강 상부의 새로운 브리지 도시 건축이 가능할까? 다층화된 언덕형 녹화 도시를 만든다면? 자연 합일적 스카이라인과 도시 경관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녹지 축을 연결해 중심 상업지의 건축물을 존치하거나 재생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고밀 녹색 주거 형태는 어떤 것일까? 서울의 자연경관 요소들을 연결해 서울그린링을 조성할 수 있을까? 건축가들의 답변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카르도 블루머
Riccardo Blumer
〈현장프로젝트〉 참여 작가인 리카르도 블루머는 밀라노 공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마리오 보타 건축 사무소에서 일했다. 또 ‘블루머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그룹으로 활동하며 상설 및 특별 전시, 강의, 콘퍼런스, 세미나를 기획하고 ‘디자인과 건축의 물리적 실천’을 고안했다. 라레게라 체어Laleggera Chair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는 건축, 인테리어, 전시, 가구 등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관람객과의 교감을 시도하는 그의 전시 프로젝트는 여러 차례 화제를 낳았다. 멘드리시오 건축 아카데미아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물리적 경계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월Wall’은 비눗방울로 11m 길이의 벽을 만드는 대형 설치 작품으로 2018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초청되었다. 비눗방울 용액에 담겨 있는 길이 1m 막대 11개를 기계 동력으로 건져 올려 2m 높이의 투명한 벽을 만드는 원리로, 관람객은 비눗방울을 터뜨리면서 적극적으로 작품과 소통했다.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도 그는 멘드리시오 건축 아카데미아와 협업한 인터랙티브 작품을 소개한다. 건축 스튜디오 스토커 리Stocker Lee의 공동 창업가 이동준과 진행한 지난해 가을 학기 수업에서 이탈리아 USI, 스위스 멘드리시오 건축 아카데미아 학생들과 함께 완성한 ‘사운드 오브 아키텍처Sound of Architecture’다. 23개의 유닛이 선형 대열을 이룬 긴 터널 속을 거닐며 공간, 빛, 배경음악 사이의 독특한 연결성을 느낄 수 있다.



©Sebastian Curi
세바스찬 큐리
Sebastian Curi
아르헨티나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키 비주얼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았다. 화려하고 밝은 색상과 만화를 연상케 하는 인물 스케치가 특징인 그는 애플, 어도비, 나이키 등 영역을 막론하고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 여러 차례 협업했다. 2021년 공개한 ‘록다운 시리즈’에서 그만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국 전역의 대대적인 봉쇄령으로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작업한 작품들로,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된 감정과 감각에서 영감을 받아 드로잉 작업을 했다. 보이지 않는 좁은 공간에 갇힌 듯 몸을 구부리고 있지만,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태연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언뜻 낙천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경향은 이번 비엔날레의 키 비주얼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어딘가를 향해 큰 보폭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의 형상으로 역동성과 들뜬 분위기를 표현했다. 평소 그의 작품처럼 손을 강조한 일러스트레이션도 선보였는데, 두 손을 맞잡은 모습에서 집 형태가 떠오르도록 한 점이 흥미롭다. 일반인에게 어려울 수 있는 건축과 도시의 추상적 개념을 간결하게 은유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재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그래픽 디자인 총괄은 워크룸이, 모션 그래픽은 델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맡았다.


지형
Topography
땅의 건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조병수 총감독은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땅의 형상에 대한 지형적(topographical) 해석과 배려, 둘째, 그 땅의 자연환경과 생태계(ecological)에 대한 관찰과 배려, 마지막으로 그 지역의 사회문화적(social-cultural) 이해와 해석 그리고 배려다. 이때 지형을 해석하는 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체험을 이끌어내는 대지와의 관계 설정이다. 조병수는 이를 땅과 인간의 ‘몸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땅의 형상적, 생태적, 문화적 고려를 통해 서로에 관한 상호 의존성을 깨닫는 것을 ‘땅의 건축’이라 정의하며 이런 건축이 혹은 도시적 결과물이 모여 만들어진 곳을 ‘땅의 도시’라고 정의한다. 이를 위해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아가 커뮤니티를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 지형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이번 주제전에 주목해도 좋겠다.



어반 리버스 공동 창업자, ‘닉 웨슬리’

어반 리버스
Urban Rivers
어반 리버스는 시카고강의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단체다. 생태학자, 기업가 및 공무원을 비롯한 다양한 자원봉사자가 강을 혁신적인 서식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모금 활동과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 시카고시 개발부, 커뮤니티 그룹, 기업 및 지역 기업과 협력해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이 시민에게 어떠한 영감으로 다가설 수 있을지 고민해 도시의 장기적인 자산을 만든다. 궁극적으로 시민들이 강을 편안한 안식처로 인식하게끔 만들어 머물다 갈 수 있는 생태를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SOM과 함께 전개한 자연 습지 복원 프로젝트인 ‘와일드 마일’이 대표적이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생명체가 접근하지 않았던 강을 재활성화하는 프로젝트로, 산업화의 부정적 영향을 되돌리고 자연과 인간이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수로 중심의 도시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게스트시티전〉에서 이들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로힝야 문화 기념 센터. ©Rizvi Hassan
버내큘러
Vernacular
버내큘러란 단어는 1857년 건축가 조지 길버트 스콧George Gilbert Scott이 처음 사용하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문명화된 디자인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토착어’란 뜻의 ‘버내큘러’를 건축에 끌어들였다. 이후 20세기 중반, 모더니즘의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난 디자인이 주목받으며 버내큘러 건축의 가치도 다시금 떠오르게 되었다. 올해 비엔날레 주제전에서는 참여 작가들의 각기 다른 땅의 건축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지역적이고 토착적인 버내큘러 건축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워로필라는 NKD 하우스를 통해 다카르의 시멘트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리즈비 하산은 로힝야 문화 기념 센터를 통해 대나무를 엮는 난민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롱기 아키텍츠는 전기도 물도 사람도 없는 곳에 파차카막 주택을 지으며 버내큘러 건축을 온 감각으로 경험했다. 그는 “현장의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설계와 시공에 참여하는 모든 건설 노동자는 현지 인력이어야 한다. 건물의 모든 공간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라며 페루 현장에서 직접 돌을 만지며 체득한 사유를 들려준다.




물길
Waterways
땅의 도시는 땅과 물과 바람의 흐름을 잇는 도시를 말한다. 우리 선조가 600년 전 틀을 마련한 한양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북으로는 북악산과 북한산이 있어 겨울의 찬 바람을 막아주고, 남으로는 강이 흐르는 넓게 트인 공간(open space)이 자리해 여름의 시원한 바람을 받았다. 미래 도시는 이렇게 산의 녹지와 계곡물, 강과 샛강, 그 사이사이의 습지와 수변 공간, 나아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길을 적절히 활용해 더욱 쾌적하고 건강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핵심 메시지다. 서울은 전통 도시 구조와 현대 도시 구조의 충돌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100년간의 개발로 서울의 정체성인 산길, 물길, 바람길이 많이 훼손되었다. 지구 단위 계획 혹은 단기 도시계획으로 인해 도시의 균형과 조화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변화에 함몰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건축가들이 그리는 100년 후 서울의 모습은 산길, 물길, 바람길로 관통되고 연결되는 도시다. 관람객은 전시를 보며 주변 산세와 물길을 따라 시민에게 양질의 삶을 제공하는 고밀·고효율 도시인 서울을 상상하게 된다.



시민을 위한 참여 프로그램
Xtra Program for Audience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전시 외에도 놓치기 아까운 참여 프로그램이 많다. 도슨트 투어, 만들기 체험 등은 건축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수준 높은 해설을 곁들인 다채로운 토크 프로그램. 일례로 〈게스트시티전〉은 담당 큐레이터를 주축으로 전시를 구성한 여섯 가지 질문에 관한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토크 프로그램이 건축 담론에 대한 정보를 직접적으로 제공한다면, 영화제는 흥미로운 영화로 관객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아시아 유일의 건축 영화제인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올해 ‘스케일Scale’을 슬로건으로 삼아 15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영화제로서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페터 춤토어, 반 시게루, 데이비드 치퍼필드 등 전설적인 건축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개성 있는 건축 영화들을 소개한다. 이 외에도 키 비주얼을 담은 굿즈를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 이벤트와 요가 클래스, 천체 관측 프로그램, 버스킹 등은 자칫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비엔날레를 대중적 행사로 확장시키는 데 이바지한다.




서울의 뜰·마당
Yard of Seoul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소는 역시나 열린송현녹지광장일 터. ‘송현松峴’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곳은 조선 시대 소나무 숲 구릉지로 경복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지리적으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의 중심축 기능을 하는 이곳은 사실 굴곡진 우리의 역사를 그대로 머금은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에는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들어서 있었고, 해방 후에는 40여 년간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였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며 이 부지는 무려 110년간 방치되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시민들이 다가갈 수 없는 금단의 땅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외딴섬처럼 존재했던 이곳이 ‘서울의 뜰’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서울시의 정비 사업을 거치면서부터다.

오랜 침묵을 깨고 2022년 10월 시민들의 휴식 장소로 재탄생한 열린송현녹지광장은 이번 행사의 주제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의 의미를 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비엔날레 개막에 앞서 지난 5월 이곳에서 공개한 주제관 ‘하늘 소’는 북악산, 인왕산 일대를 조망하는 휴식 공간으로, 한 달 만에 누적 방문객이 5만 명을 넘었다. 12m 높이의 이 구조물은 계단을 오르면서 주변 지형과 산세, 송현 부지와의 관계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설계한 조병수 총감독의 작품이다. ‘폐기물 없는 서울비엔날레’라는 목표에 맞춰 폐막 이후에도 구조물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조립, 해체, 확장, 축소가 용이한 금속 비계로 제작했다. 비엔날레 개막과 함께 ‘하늘 소’ 옆에 들어선 ‘땅 소’와 〈현장프로젝트〉 참여 작가들의 파빌리온을 볼 수 있다.


제로 웨이스트 전시 디자인
Zero Waste Exhibition Design
전시 디자인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지속 가능성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들어 국내외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전시 후 발생하는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장내 전시, 푸오리 살로네가 1년 반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지난 2021년 행사에서 분해와 재사용, 재활용이 가능한 모듈식 시스템 합판 벽으로 실험했다. 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도 지난해 전시 디자인 과정에서 포스터 제작을 생략하거나 가벽 대신 모듈형 파티션을 사용해 시류에 동참했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로 이어진다. 조병수 총감독의 제안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집기와 구조물을 디자인해 비엔날레가 끝난 뒤 다른 행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전시 디자인을 맡은 포스트스탠다즈는 분리와 조립이 용이하고, 구조물 표면에 크고 작은 충격으로 인한 흠집이 생기더라도 큰 이상이 없을 만한 자재를 선정해야 했다. 이에 스테인리스강을 적극 활용하고 용접 등 가공은 최소화했다. 좌대와 구조물 같은 각종 집기는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주연만큼 빛나는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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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월간 〈디자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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