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그로헤의 ‘그린 비전’.
자이스의 카메라 렌즈 시리즈.
피닉스디자인(이하 피닉스)에서 ‘팀’의 개념은 물리적으로 머무는 공간만을 의미한다. 물론 많은 디자이너가 매일 한 공간으로 함께 출근해서 일하고 네트워킹하기 때문에 자신이 일하는 오피스에 대한 소속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피닉스의 세 오피스는 매주 원격으로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에 따라 소속에 관계없이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한다. 나도 소속은 뮌헨 팀이지만, 서울과 상하이를 오가며 구성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일하고 있다(이 글도 서울에서 시작해 상하이에서 마무리했다).
이 외에도 사내에서 주최하는 여러 행사와 교육, 커뮤니티형 소모임 등을 통해 대륙을 넘어 교류하는 것은 피닉스에서 이미 익숙한 일상이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출근하지 않고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인프라가 완비된 상황에서 세 오피스를 구분하는 물리적 제한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첨단 기술 외에도 피닉스를 하나로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조직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문화를 지키고, 구성원들을 즐겁게 뛰어놀게 만드는 비법 일곱 가지를 내 일과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LG디스플레이의 ‘OLED SHELF’.
샤오미의 90GO 슈트케이스.
1 월요 미팅(Monday Meeting, MoMe)
월요 미팅은 모든 구성원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한자리에 모여 한 주를 시작하는 공식 행사다. 매주 모든 오피스가 번갈아 호스트가 되어 각 팀의 최신 프로젝트와 국가·도시별 최신 트렌드를 소개하고, 회사 전체에 적용하는 HR, IT, 신규 프로젝트와 사내 이벤트를 공유한다. 하지만 정보를 나누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화면 너머 보이는 동료들의 웃는 모습, 다른 팀의 프로젝트를 기꺼이 칭찬하는 박수 세례일 것이다. 아무리 업무 일정이 바빠도 모든 구성원들이 기꺼이 MoMe에 참여해 각자의 월요일을 하나로 연결한다.
2 팀 미팅Team Meeting
MoMe가 끝나면 수석 디자이너로서 뮌헨 팀 미팅에 원격으로 접속한다. 화면 속에는 오피스가 아닌 집에서 접속한 동료들이 여럿 보인다. 현재 팀 단위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논의와 금주의 중요한 이벤트, 발표 일정, 오피스 방문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결혼을 앞둔 동료를 위한 서프라이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다 보니 상하이 팀과 진행 중인 프로젝트 미팅 시간이 다가온다.
델리 오피스 프린터 시리즈.
3 프로젝트 미팅Project Meeting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안에 마련된 화상회의실에 입장하면 상하이 소속 동료들과의 회의가 시작된다. 주제는 글로벌 시장에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중국의 대형 브랜드 프로젝트 리뷰다. 상하이 팀이 주축이지만, 글로벌한 관점에서의 전략과 경험이 요구되어 내가 제품 디자인 경험 총괄을 맡게 되었다. 프로젝트 리드를 맡은 시니어 디자이너가 공유한 화면을 따라가며 미로(알파벳 M 참고)의 보드에 정리된 사용자 리서치 결과를 확인한다. 이후 준비된 피드백을 전달하면 동료 중 한 명이 미로 보드 위의 가상 노트에 내용을 정리하는데, 아주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영감이 떠올라 레퍼런스가 될 만한 브랜드 이미지와 웹사이트를 보드에 드래그한다. 내 포스팅에 엄지를 치켜올리는 이모지가 달린다. 이후 시니어 디자이너가 만든 발표 자료를 마이크로소프트 기반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하고 링크는 미로 보드에 붙여 넣는다. 미팅을 마친 뒤 동료들로부터 공유받은 링크를 열었더니 실시간으로 작업 중인 동료들의 아바타 커서가 보인다. 지난해부터 가능해진 고마운 기능이다.
4 커뮤니티 미팅Community Meeting
피닉스에서는 업무를 위한 미팅 외에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심사에 따라 소모임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중 하나가 산업 디자이너들이 모여 최신 트렌드나 전문 스킬 등에 대한 지식과 의견을 나누는 ‘아이디 커뮤니티ID Community’다. 피닉스 내에 산업 디자이너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소모임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사용자 경험과 인터랙션을 주제로 한 UX·UI 커뮤니티, 브랜드·디자인 전략과 리서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브랜드 디자인 커뮤니티,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모인 서스테이너빌리티 커뮤니티, 다양한 주제를 글로 표현하는 라이팅 클럽 등이 있다. 전문 지식을 깊게 나누자는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이러한 활동은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료들, 서로 다른 오피스에 속한 동료들끼리도 꾸준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연결점이 되어준다. 잇따른 회의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니,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채널을 통해 외부 미팅 때문에 참석 못 한 아이디 커뮤니티의 지난 회의 녹화본이 도착해 있었다. 시차에 상관없이 구성원들을 연결시켜주는 기술에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MoMe.
프로젝트 미팅.
5 런치 토크Lunch Talk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영감의 원천은 대부분 회사 울타리 밖에 존재한다. 그래서 피닉스는 종종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슈투트가르트와 뮌헨 오피스가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런치 토크로 불리지만 상하이에서는 애프터눈 토크쯤 되겠다. 연사로는 요즘 주목받는 모빌리티 서비스 브랜드의 매니저, 재생 플라스틱 기술 발명가, 소통 전문가 등 다양하다. 어떤 구성원이든 자신이 네트워킹 과정에서 알게 된 전문가를 자유롭게 초대해 런치 토크를 주관할 수 있다.
6 디자인 서클Design Circle
피닉스만의 특별한 전통인 디자인 서클은 프로젝트 진행 도중에 해당 프로젝트 경험이 없는 동료들을 초대해 그들로부터 솔직한 의견을 듣는 과정이다.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을 듣거나, 클라이언트 미팅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면서 발표 방식이나 자료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이름이 상징하듯 직급과 경력에 관계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스폰지처럼 흡수하도록 돕는 장치다. 낮은 직급의 디자이너는 의견을 가감 없이 표현할 기회를 얻고, 베테랑 디자이너는 새로운 시선과 의견을 얻는다.
런치 토크.
미로를 활용해 진행한 아이디 커뮤니티 소모임.
7 스피릿 링크Spirit Link
세 오피스를 하나로 모으는 장치 중에는 스피릿 링크도 있다. 매년 각 팀별로 무기명 투표를 거쳐 한 명씩 뽑는 동료를 일컫는데, 팀 내에서 가장 소통을 잘하고 주변을 잘 챙길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다. 구성원들이 직장 생활 중 고충과 개선점 등을 팀별 스피릿 링크에게 전달하면, 이들이 정기 모임을 통해 무기명으로 고충을 논의한 후 임원들에게 개선 방안을 요청한다. 팬데믹 기간 동안 강력해진 사내 위생 규정 때문에 직원들의 피로가 누적되던 때, 스피릿 링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임원들에게 방침 개정을 요구한 바 있다. 또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상하이가 장기간 록다운되어 동료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때, 도움을 줄 방안을 고민한 것도 스피릿 링크였다.
이 외에도 근무 환경 개선, 교육 및 장비에 대한 투자, 복리후생 등 다양한 고민이 스피릿 링크를 통해 전달된다. 전 세계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을 피닉스라는 이름으로 뭉치게 하려면 빠르고 안전한 클라우드 서버와 안정적인 화상회의 시스템 등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피드백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거나 존경이 없다면 의견들은 허공에 부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닉스가 하나의 브랜드로서 세 도시의 디자이너들에게 공통된 소속감을 부여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는 이유다.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도록 만드는 피닉스의 문화는 뛰어난 IT 시스템보다 훨씬 값지다.
피닉스디자인 수석 디자이너
양성철
2008년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2009년 독일 뮌헨의 디자인 에이전시 파일럿피시Pilotfish에 입사했다. 인턴부터 시작해 디자이너, 디렉터를 거쳐 대표까지 역임했다. 2018년부터는 피닉스디자인 수석 디자이너로 합류해 유럽과 아시아의 다양한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뮌헨 디자인팀을 이끌고 있다.
글 양성철 피닉스디자인 수석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