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인
1960년생.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직후 여원사에서 발행했던 <여원>의 편집 디자이너로 잡지 디자인계에 들어섰다. 이후 안그라픽스, 중앙일보사를 거친 뒤 여성지 월간 <오픈>의 창간 작업에 참여하면서 아트 디렉터가 됐다. 1992년 국내 최초의 라이선스 패션지인 <엘르>, 1996년 <보그>의 창간 아트 디렉터로 일했으며 1999년 독립해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했다. 2000년 <FL더스타일>과 <코스모폴리탄>, 2002년 <노블리안>, 2003년 <인스타일> <코스모 걸> <라네즈 걸>, 2004년 <플로체>와 <싱글즈>, 2005년 <애비뉴엘>, 2006년 <헤렌>, 2007년 <루엘>, 2009년 <제이룩> 창간 작업과 디자인을 도맡아 진행했고 2001년 , 2002년 <보그 걸>, 2003년 <얼루어>, 2004년 의 디자인 컨설팅을 주도했다. 현재는 <싱글즈> <코스모폴리탄> <헤렌> <쎄씨> <나일론> <제이룩>의 편집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대학 시절 각종 광고 공모전을 휩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때는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면 광고 회사에 들어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공모전 분야도 광고밖에 없었고요. 학교다닐 때는 별 생각이 없잖아요.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보기도 하고. 운이 좋아서 상을 많이 타다 보니 광고쪽으로 가야 하나 생각도 잠시 했지만, 편집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워낙 컸기 때문에 크게 고민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언제부터 잡지 편집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석금호 산돌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의 수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워낙 책과 글자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요. 당시 디자이너들은 글자 크기를 키우고 줄이는 정도에만 관심이 있었지 서체에 대한 깊은 지식은 별로 없었거든요. 졸업 후 취직하려고 보니 잡지사가 여원사와 주부생활사 딱 두 곳 있었어요. 마침 여원사에서 진행하는 공채에 합격해 <여원>의 편집 디자이너로 입사했습니다.1 1992년 11월 <엘르> 창간호
당시 표지 디자인을 제작할 여건이 안 되어서 <엘르>의 콘셉트인 ‘young & dynamic’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진 작가이자 미국판 <엘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길 벤시몬 사진을 그대로 사용했다.
2 1996년 8월 <보그> 창간호
콘셉트는 ‘엘레강스’였다. 한국판 창간을 알리고자 슈퍼모델을 초빙하고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혀 촬영했다. 모델과 의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흰 배경으로 촬영했으며 타이포그래피가 이미지 위에 걸치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3 1991년 2월 <오픈> 창간호
‘제대로 된 여성지’라는 콘셉트를 내세운 <오픈>은 기존 여성지와 차별화를 위해 임팩트 있는 포맷과 전신 모델 사진, 제목글을 표지에 넣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4 2002년 6월호 <노블> 창간호
디자인 콘셉트는 ‘아방가르드’였다. 표지 제호부터 내지 타이포그래피까지 육각 형태의 서체를 이용해 당시로서는 젊고 파격적인 스타일의 레이아웃과 이미지를 선보이는 멤버십 매거진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여원사는 비교적 짧게 다니셨네요.
사실 여원사에서는 해고됐습니다. 1987년은 국내 첫 출판 노조가 태동하던 시기였어요. 여원사도 그 중심이 된 곳 중 하나였고요. 그때는 경영자, 편집자에게 디자이너는 도안사에 가까운 업무로 인식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직급 체계가 기자들하고 달랐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기도 했고, 또 막내의 위치에 있다 보니 거의 등 떠밀리듯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디자이너 노조 대표가 됐죠. 결국 노조 사람들이 해고될 때 잘렸어요.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과 대접이 회사 경영자의 일방적인 지침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마음 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대외적으로 평등과 민주를 주장하는 동료 기자들이 디자이너의 권위 신장에 대해서는 모르쇠 하니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노조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공감하거나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는 사람이 드물었고요. 디자이너의 지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고 마음고생했던 게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1년 만에 해고당해 충격이 커서 더 기억에 남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웃음) 이후 안그라픽스와 중앙일보사를 거쳐 월간 <오픈>의 팀장으로 옮겼습니다. 팀장이 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인 서른 살쯤이었어요. 겁이 없고 욕심은 많았던 시절,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1992년에 국내 첫 라이선스지였던 <엘르>의 아트 디렉터가 되었습니다.
<엘르>를 창간하면서는 잡지 편집 디자인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본사에서 <엘르> 아트 디렉터가 방한해 직접 가르쳐주기도 했고요. 사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잡지를 만들었던 사람들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책을 경제적으로 만들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을 배웠죠. 레이아웃을 하는 방식부터 편집부와의 관계 조율 부분까지. 새로운 시스템을 배워가며 한거라 잡지 창간 작업 중에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첫 라이선스지였으니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1990년대 초반의 여성지 기사는 통속적인 것이 많았고 기자들은 대부분 남자였어요. 기사가 아니라 거의 소설 수준이었죠. 그중 인테리어 분야를 담당하는 여기자 한두 명이 화보를 찍어 오는 게 다였죠. <엘르>에 들어오면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작업을 해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경영진이 디자이너를 한 명만 뽑으라는 거예요. 말도 안된다면서 어떻게 한 명만 뽑냐고 했더니, 해외판 <엘르>의 영어를 한글로만 바꾸면 다 되는데 굳이 디자이너가 필요하냐는 거예요. 레이아웃 샘플도 있고 디자인도 이렇게 좋은데 무슨 디자이너를 또 뽑느냐는 얘기였죠. 그들에게 필요한 건 디자이너가 아니라 오퍼레이터였던 거 같아요. 설득하는 데 진짜 애먹었어요.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여전히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계신 분들이 종종 있다는 거죠.
1996년 두산 매거진에 입사해서 <보그> 창간 작업을 하셨어요. 이후 독립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 기억으로 그곳은 업무 환경이 무척 좋은 곳이었습니다. 좋은 환경에 안주하다 보면 스스로 나태해질까 봐 노파심이 들더군요. 그때 마침 <엘르> 창간할 때 편집장이었던, 현재 더북컴퍼니 신소희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FL더스타일>창간 준비를 하는데 라이선스지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1999년 마흔 살에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를 차려 독립하면서 창간 작업으로 <FL더스타일>을 맡았습니다.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란 이름이 독특합니다.
당시에는 제일기획, 금강기획, 인성기획, 이런 식으로 ‘OO기획’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유행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이름은 지은 사람 말고는 아무에게도 의미가 없거든요. 쉽게 기억하는 게 제일 좋겠다 싶었습니다. 별 의미는 없고 누구나 좋아하는 바나나, 그래서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가 됐어요.
창간 경험이 아주 많으시네요.
그러게요. 2004년 <쎄씨>를 리뉴얼한 것 외에는 모두 창간 작업이었네요.
창간과 리뉴얼 디자인을 진행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창간 작업을 훨씬 더 많이 해서 정확히 비교하긴 어렵네요. 그런데 제 경험으로는 창간이 더 수월한 것 같아요. 대개 매체가 잘되는데 리뉴얼하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잘 안 되니까 더 팔기 위해 리뉴얼을 단행한단 말이에요. 왜 안 되는지 요인 분석을 해보는데, 팀별로 입장이 다 달라요. 광고팀 만나면 편집팀에서 협조를 안 해줘서 힘들다 하고, 편집팀은 또 나름대로 디자인이 부족해서 그렇다 하고요. 그런데 저희는 외부에서 디자인을 하는 회사 잖아요. 원인 분석을 해서 해결 방법을 찾아 볼까 싶다가도 내부 직원이 아니니까 난국을 헤쳐나갈 권한도 책임도 없는 거예요. 게다가 국내에서는 디자인 컨설팅을 한다는 게 참 어려워요. 말로는 디자인이 중요하고 저의 경험을 높이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각 팀에서 자신들의 권한이나 이익을 양보하거나 조금이라도 손해 보려고 하지를 않거든요. 오히려 창간호면 책임은 무거워도 처음부터 만들어나가는 거니까 괜찮죠. 리뉴얼할 때 정말 전적으로 권한을 위임해주는 회사는 아직 못 만나 봤습니다.(웃음)
잡지 디자이너든 기자든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바로 마감입니다. 일전에 국내 잡지 마감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신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숙제죠. 가장 힘든 것이 인력난이에요. 아시다시피 이 업계는 여자분이 많은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시점이 경력이 무르익었을 때거든요. 그때 전후로 많이 그만둬요. 새로운 목표를 위해 연수를 가기도 하고요. 27년간 잡지를 만드는 동안 힘들게 마감하는 시스템, 그것 하나만 안 변했어요. 27년 전 여원사 다닐 때랑 정말 똑같아요. 이 업계는 사람이 재산이고 노하우인데 그게 쌓이지 않으니까 회사 경영 차원에서도 힘들겠지만 업계 전반적으로도 문제거든요. 라이선스지 만들 때 홍콩이나 호주 사무실을 방문해보기도 했는데, 한국만 이런 시스템이더라고요. 이게 수십 년 동안 개선이 안 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문제는 정말 오너들이 앞장서서 개혁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일까요? 요즘에는 잡지 편집을 하겠다는 디자이너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급여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고, 야근 등 근무 방식이 고되니까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런 사이클 안에서 육체적으로 지치고, 편집팀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와중에 사소하게, 간혹 크게 부딪히는 것을 반복하면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지는 거죠. 독립해서 회사를 차린 지 14년이 됐지만 그간 단가 인상은 거의 없었어요. 당연히 근무 조건이 크게 좋아지질 않아요. 그러니 자부심이 강한 요즘 디자이너들에게 선망의 직업은 아닌 거 같아요. 단순해요. 돈 많이 주고 일하기 좋으면 사람들이 오는 거고 그게 안 되면 안 오는 거죠. 이게 결국은 업계에 전반적인 악영향을 줄 테지만,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그런 것보다는 눈앞 비용 절감이 더 중요할 테죠.
1 2012년 1월호 <싱글즈> 표지와 내지 디자인(아트 디렉터: 임재경, 디자이너: 조광미)
다른 여성지에 비해 뷰티 기사의 차별화에 초점을 맞춘 잡지답게 정보 기사와 친절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2 2012년 6월호 <코스모폴리탄> 표지, 2012년 3월호 <코스모캠퍼스> 표지와 내지 디자인(아트 디렉터: 김수아, 디자이너: 안정은)
<코스모폴리탄>은 그만의 표지 모델 포즈, 표정, 색상, 커버 라인의 위치까지 가이드 라인이 엄격한 편에 속하는 라이선스지다. <코스모캠퍼스>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을 타깃으로 배포되는 타블로이드판이다.
3 2012년 3월호 <나일론> 표지와 내지 디자인(아트 디렉터: 김수아, 디자이너: 김주영, 안지은)
2011년 9월 리뉴얼한 디자인이 반영된 <나일론>의 편집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플레이나 그래픽 요소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4 2011년 4월호 <애비뉴엘> 표지와 내지 디자인(아트 디렉터: 김수아, 디자이너: 안지은)
<애비뉴엘>의 표지는 그 달의 메인 테마를 콘셉트로 진행한다. 2011년 4월호는 ‘에코 이슈’를 주제로 만들었다. ‘갤러리’ 컬럼은 메인 테마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풀어내는 대표적인 페이지로, 다양한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출하는데 한 몫 한다고.
패션지 화보처럼 비주얼의 비중이 높은 기사는 기자, 사진가, 스타일리스트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나요?
아쉽게도 기획이 어느 정도 잡히고 대략적인 비주얼이 완성된 상태에서 도와주는 개념이지 처음부터 이끌어가지는 못해요. 기자들이 패션, 뷰티 등 협찬 업체와 사진가까지 섭외하고 기본적인 세팅이 이루어진 단계에서 참여하게 되지, 주도적으로 한다는 게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우리처럼 외부 스튜디오인 경우에는요. 기본적으로 잡지가 판매 수익이 약하잖아요. 광고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업체와의 협찬 관계 비중이 너무 큰 거예요. 복잡다단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학교에서 배울 때처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렵겠지만, 디자이너도 좋은 의견을 낸다면 충분히 함께 기획하고 이끌어갈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요.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겠죠. 디자이너들도 자기가 해낸 일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데, 그것도 결국 말로 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모르겠는데 저 때만 해도 그런 훈련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감각이 좋으면 디자인 잘하는 것으로 여겼지, 선진국처럼 자기가 나서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으니까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이너들은 더 많이 공부하고 인문학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그걸 감수하게끔 설득하는 능력이 디자이너에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당연히 디자인도 안전하고 보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죠. 핑계 댈 것도 없이 역량의 문제예요.
종종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다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조율하나요?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처럼 외부에서 디자인을 하는 경우와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이런 갈등 상황을 대하는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인 경우는 다투다가도 결국 동료이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풀어지잖아요. 우리는 좀 더 애절하다고 할까요?(웃음) 매년 계약 갱신이 걸려 있기 때문이죠. 저희도 목소리를 높일 때도 있고 다투기도 하지만 심해지면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수 있어요. 외부 디자이너와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장단점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네요.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지만 소신껏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외부 디자이너인 경우에는 결정적인 순간에 밀릴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요. 반면 클라이언트 작업에 대한 트레이닝이 이루어진다는 부분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속성이 클라이언트 잡에 있다고 보거든요. 단기적으로 보면 인하우스가 안정적이라 마음이 편한 부분은 있지만, 디자이너 개인으로 볼 때는 외부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하고 부딪쳐가며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이렇게 많은 잡지 디자인을 하다 보면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 내부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생길 것 같습니다.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갖추려면 초기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요. 요즘엔 특별한 라이선스지 외에는 창간을 잘 안 합니다. IMF와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잡지 출판 관리자가 편집자 출신에서 경영 혹은 재무 쪽 출신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과거에는 금세 망할지언정 실험적인 잡지가 계속 창간되는 등 시장 자체가 활력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아무도 그런 시도를 안 해요. 재무 분야 전문 경영진을 영입하는 것은 나름대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저 같은 업계 토박이들은 예전의 꿈과 모험의 시기가 그립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업계가 정체되어 있어요.
잡지 디자인을 하면서 롤모델로 생각하는 분이 있나요?
<하퍼스 바자>의 전설적인 아트 디렉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Alexey Brodovitch)와 <보그>의 아트 디렉터 알렉산더 리버만 (Alexander Liberman), 그 두 사람이 롤모델입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고요.
잡지 아트 디렉터가 영감을 받기 위해 보는 잡지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최근 들어서는 <모노클>을 자주 봅니다. 일단 내용이 충실하고 전달도 직관적으로 잘되거든요. 과거에는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디자인에 눈이 더 갔는데, 이제는 잡지 본래 목적인 ‘정보 전달’에 충실한 잡지가 보기 좋더라고요.
다른 잡지를 보고 영감을 얻는 것과 모방하는 것의 간극이 애매합니다.
제대로 모방하려면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이미지에 영상까지, 지금은 좋은 시각 자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잖아요. 그렇다고 과거에 비해 훌륭한 디자인이 많이 나오느냐,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흉내도 잘 따라 하는 사람이나 하죠. 모방을 한다는 건 굉장히 큰 역량이고, 그걸 잘하면 결국 자기 것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방을 장려하는 건 결코 아니고요.(웃음)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에서 현재 진행하는 잡지는 모두 여성 패션지입니다. 연령대나 선호 문화 등에 따라 타깃이 다양할 것 같은데, 각 잡지에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요?
예전 잡지는 연령대가 다양한 층으로 세분화되어 있었어요. 과거 <쎄씨>는 10대들이 보는 하이틴 잡지에 가까웠죠. 그런데 지금은 평균 연령이 24세예요. 최근 독자 조사를 해보니까 패션지 타깃층이 다 한두 살 차이더라고요. 차이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러니 디자인하기도 힘들어요. 연령 차이가 나면 여러 가지 차별 요소를 끌어낼 수 있어서 작업하기가 수월할 텐데 연령대가 중첩되어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독자 간의 지역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종종 매체 편집장들은 특정 잡지가 잘되면 그렇게 만들어달라고 해요. 디자인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골치 아파요. 국내 잡지가 다양화되지 못한 것도 한 요인이겠죠. 광고를 많이 하는 인터내셔널 브랜드의 타깃층이 주로 20대 초·중반인데 잡지 타깃 연령층도 여기에 비슷하게 맞추지 못하면 광고가 안 들어와서 살아남지를 못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매체가 광고에 절대적으로 의지한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독차층 폭이 좁아지고 잡지 성격도 비슷해지는 거죠.
1 <노블> 창간호 내지 페이지 데칼코마니 기법을 이용해 진행한 이 패션 화보는 1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2 2011년 12월호 <쎄씨> 표지.
3 2012년 6월호 <헤렌> 표지.
4 <퍼스트룩> 표지.
5 2012년 3월호 <코스모맨> 표지.
국내 패션지인 <싱글즈>의 경우 그간 해오던 라이선스지와 디자인 콘셉트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싱글즈>는 라이선스가 아니라 순수 국내 잡지다 보니 제호 등의 모든 텍스트가 한글이에요. 다른 라이선스지와 어떻게 다르게 만들 것이냐를 많이 고민했는데, 내용적으로는 뷰티 분야를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라이선스지가 뷰티 기사를 패셔너블하게 이미지 중심으로 다뤘다면 <싱글즈>는 정보 중심으로 다뤄보자 했던 거죠. 디자인도 거기에 맞춰서 설명적이고 친절하게. 당시 국내 잡지를 창간한다는 게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일이었거든요. 라이선스지보다 설명적이고 친절한 기사와 정직한 디자인이 독자들에게 먹힌거죠.
<코스모폴리탄>은 어땠나요?
<코스모폴리탄> 직전에 작업했던 라이선스지가 <보그>였는데, <보그>는 나라마다 정책이 달라요. <보그> 미국판은 저널리즘에 가깝고, 이탈리아판은 스타일리시하고 예술적인 것을 추구 하거든요. 디자이너에게 서체부터 그리드 등 모든 디자인적 요소에 대한 재량권을 줬죠. 전체적인 콘셉트 정도만 같이 가면 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코스모폴리탄>은 굉장히 제약이 심했어요. 우리가 이렇게까지 간섭을 받아가면서 해야 되나 할 정도로 심했어요.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코스모폴리탄>이 <보그>와는 또 다르게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너무 뚜렷해서 답답했던 부분이 많았지만, 가이드를 따라 하는 게 결코 해가 되는 거 같지는 않아요. 모두 타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죠. 매뉴얼을 허투루 만들지는 않으니까요. 그것을 배워둔 뒤 나중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을 때 응용하면 되는 거니까. 디자이너 입장에서 전혀 괴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나쁜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편집자로서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기사도 중요하지만 정보밭인 뉴스 기사 모음 페이지 등을 효과적으로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노력한 티가 안 난다고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지만요.(웃음)
멋있고 희귀한 서체와 훌륭한 사진을 갖고 디자인하는 것은 대학생들도 잘해요. 감각만 있으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거죠. 디자인을 잘한다는 것은 뉴스모음처럼 별다른 임팩트가 없는 시각적인 요소를 활용해 잘 전달하는 능력도 포함됩니다. 그게 좋은 기술이고, 능력이에요. 또 제일 중요하면서도 제일 어렵기도 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저도 그랬지만) 고참들이 그런 페이지를 디자인하기를 꺼려합니다. 정말 어려운 페이지는 막내들이 도맡아 하는 꼴이 된 거죠. 그러고 보니 이것도 27년 전이랑 똑같네요. 디자이너만 탓할 일은 아닌 게, 편집자나 독자도 화려한 페이지의 디자인만 관심을 갖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아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세상이 그렇다고 해도, 디자이너라면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디자인의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도 종이 매체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오래전부터 거론되어온 종이 매체의 위기에 대한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모바일이나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현재는 모바일 <코스모폴리탄> 디자인을 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헤렌>과 <쎄씨>의 모바일 작업도 했습니다. 짧게 경험해본 결과, 지면 편집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 결국 모바일 디자인도 잘하겠더라고요. 인터랙티브 기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경험과 감각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디자인 자체의 속성이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조바심을 느끼기도 했는데 지금은 좀 차분해진 거 같아요. 특별한 위기 의식도 없고요. 요즘은 케이블 TV나 신문 같은 매체도 모두 매거진화되었어요. 모바일도 매체 중 하나일 뿐이예요.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은 언제 어떤 매체의 디자인을 해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편집 디자이너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까지도 곁에 두고 읽는 책이 있습니다. 1980년대 제품 디자인이나 편집 디자인은 지금보다 더 ‘팔기 위한’ 상업적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저에게 사람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이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어요. 또 앨렌 헐버트의 <퍼블리케이션 디자인>은 유명 잡지를 예로 들어 왜 그 디자인이 좋은지에 대해 이미지 자료와 함께 잘 설명해놓은
책으로 역시 제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정통 디자인’이나 ‘디자인 원리’ 같은 디자인 개론에 대한 책이 많아서 실무에 적용하기에는 조금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 두 권의 책은 저에게 실무 교과서 같았던 책입니다. 편집 디자인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잡지 아트 디렉터의 이상적인 모습은 뭘까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처럼 사진가를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가 돼야 이상적인 아트 디렉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진 위에 타이포그래피를 얹혔을 때 온전히 아트 디렉터의 것이 되는데 그게 쉽지는 않죠. 실제로 사진가를 컨트롤한다는 건 시안을 협의한다는 정도지 그 이상은 힘들거든요. 풀어야 할 숙제이고. <월페이퍼>나
<판타스틱맨>처럼 디자이너가 발행인이 되는 매체가 아닌 다음에야 어려워요. 그렇게 시스템이 변하는 것이 제 꿈 중의 하나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같아요
- 한국 패션 잡지의 디자인 컨설턴트 김성인
-
국내에서 발행되는 패션지를 떠올려보라. 1986년부터 27년간 잡지 편집 디자인이라는 한 우물만 파온 김성인 대표의 손을 거친 패션지는 당신이 지금 당장 말할 수 있는 몇 개의 패션지 숫자보다 월등히 많다. 그럼에도 김성인 바나나 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자신의 장점이라고는 ‘그저 오래 해온 것뿐’이라며 겸손해했다. 한국 패션 잡지의 디자인 컨설턴트를 자임해 온 그의 입을 빌려 만나는 국내 패션지 창간기를 통해 잡지 편집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바람을 엿볼 수 있었다.Share +바이라인 : 신정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2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