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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러쉬 공동 창립자이자 제품 개발자 로웨나 버드
“히피, 액티비스트, 환경주의자,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똑 부러지는 친구.” 핸드메이드 코즈메틱 브랜드 러쉬의 공동 창립자 로웨나 버드(Rowena Bird)는 러쉬를 이렇게 묘사한다. 확연한 재생 능력이나 강력한 지속력을 내세우는 대개의 화장품 브랜드와 러쉬의 방향성은 확연히 다르다. 동물보호와 친환경은 1994년 창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러쉬를 이끄는 변치 않는 믿음이자 엄격한 원칙이다. 이러한 메시지와 긴밀히 연결된 제품과 인테리어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러쉬만의 자연스러운 브랜딩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5월 초 서울을 방문한 공동 창립자이자 제품 개발자 로웨나 버드에게 차별화된 제품과 디자인 전략에 대해 들었다.



“우리의 가치를 담은 캠페인이 곧 고유한 디자인이 된다.”
로웨나 버드(Rowena Bird) 1959년 영국 출생으로 러쉬의 오리지널 창립 멤버다. 1977년 러쉬의 전신인 ‘콘스탄틴 & 위어’의 원재료 연구 및 제품 개발자로 시작해 브랜드 ‘코즈메틱 투 고’의 뷰티 테라피스트로도 활동했다. 1994년 러쉬에 합류한 이래 울트라밤, 슈가스크럽, 오션솔트 등의 베스트셀러를 개발했고 러쉬 스파와 러쉬의 첫 번째 색조 라인 ‘이모셔널 브릴리언스’ 등의 최신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전 세계 러쉬 매장은 동일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느껴진다. 이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창립자들이 초기에 레몬과 계피 등의 원재료를 구매하던 영국의 재래시장 ‘런던 버로우 마켓 (Borough Market)’과 주변 상점에서 영감을 얻었다. 고체 입욕제는 나무 궤짝에 과일처럼 담아 두고, 비누는 덩어리째 쌓아두고 그램수로 잘라 유산지에 말아준다. 신선한 수산 시장 좌판을 연상시키는 얼음 위의 마스크 팩, 알록달록한 총천연색 디저트를 연상시키는 고체 샴푸와 젤리 등의 제품은 주방을 떠올리게 하는 그릇과 볼, 도마를 비치해 신선한 음식처럼 연출한다. 재활용 나무로 만든 투박한 느낌의 가구와 선반은 공동 창업자인 마크(Mark Constantine)가 좋아하는 당시 폴 스미스 매장에서 착안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친 나무로 만든 가구와 선명한 색감의 제품이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러우면서도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됐다.

화장품 브랜드로서 마법의 묘약이 담긴 듯한 아름다운 패키지가 없는데, 처음부터 없었나?
사항 처음에는 패키지를 제작할 자금이 충분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 형편에 맞는 형태로 제품을 생산했던 것이 좋은 반응을 얻고 나서 뒤돌아보니 우리의 고유 스타일이 돼있었다. 현재 러쉬 제품의 약 40%를 ‘네이키드’ 형태로 판매한다. 별도의 포장지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진열해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이 비누의 고유 향기를 즉각적으로 체험하고 색깔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고객이 좋은 의미를 이해하고, 오히려 과일 가게에서 직접 상품을 고르는 듯한 느낌을 재미있어한다. 이는 러쉬 매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인테리어 방식이자 우리가 환경을 위해 실행하는 캠페인이기도 하다.


최근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연 플래그십 스토어는 3층 규모에 9300㎡ 면적에 이른다. 러쉬 헤어 제품으로 머리를 샴푸하고 드라이어기까지 비치된 체험 존은 물론 스파와 갤러리까지 입점 해있다. 

러쉬의 디자인 조직에 대해 설명해달라.
러쉬코리아의 경우 총 251명의 직원 중 12명이 디자이너다. 하지만 직함에 관계없이 각 부서 담당자나 매장 스태프 등 누구의 아이디어도 자유롭게 디자인에 반영된다. 조직상으로는 매장 인테리어와 제품 디스플레이에 주력하는 비주얼 머천다이저(VMD), 인쇄물 디자인을 담당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온라인 홈페이지를 담당하는 웹 디자인 부문으로 나뉘는데 디자인팀은 특히 다른 모든 사업 부문과 긴밀히 협력한다. 원재료를 매장에 나란히 진열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재료를 직접 구매해 오는 크리에이티브 구매팀과의 협의가 필요하고, 선명한 색감이 매장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제품 개발자도 어떤 색상의 비주얼이 나올지에 대해 논의하는 식이다.

광고도, 연예인 기용도, 고급스러운 패키지도 없는 데다 대량생산이 어려운 핸드메이드로 제품을 만든다. 어떻게 이 과정을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나?
제품에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동물실험을 하는 원재료상과의 거래도 용납하지 않는 우리의 원칙은 결과적으로 희소성과 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안겨줬다. 한 예로 러쉬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과감히 포기했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해외 브랜드 제품은 중국 내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칙을 고수한 결과, 중국에 없는 신선한 브랜드라는 인식과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동참하는 이들 덕분에 중국 관광객이 많은 명동1가 매장이 지난해 전 세계 매출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초기 창업자들이 여전히 적극적으로 회사의 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회사 자체적으로 재료의 구매와 조향, 제작, 유통까지 맡는 점도 발빠른 수용력의 바탕이 된다. 이 모든 박자가 갖춰지면 영국의 경우 빠르면 2주 안에 신제품이 출시되기도 한다.


블랙 보드에 손으로 쓴 듯한 서체 또한 재래시장에서 상품 가격을 기재하는 방식에서 따왔다. 

‘러쉬의 직원들은 모두 훌륭한 캠페이너’ 라고 했다. 기업이 추구하는 일관성 있는 가치는 물론 멋지지만 너무 의견이 강하면 제품에 반감을 갖는 역효과도 생길 것 같다.
캠페인의 본래 목적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투우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분명 그들의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었기에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우리는 투우가 필요 이상으로 매우 잔인한 경기라고 판단했고 우리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성애자 인권을 옹호하는 글로벌 캠페인 ‘사인 오브 러브(Sign of Love)’는 한국에서도 종교 단체의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안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판단을 돕는 정보를 제공할 뿐이고 이런 사실을 지각하고도 우리 뜻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지난 4월 말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전 세계 러쉬 매장을 통틀어 가장 큰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고객의 경험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러쉬가 추구하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인가?
사실 우리는 비전이 없다. 20년 전 우리의 미래를 물었다면 ‘런던에 매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로 말하지 않았을까. 5개년 계획을 세워도 봤지만 1년 만에 해당 목표를 달성해버리면서 그런 계획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고, 우리의 새로운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설레어하는게 우리답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현재를 즐기기에 바쁘다. 벌써 크리스마스 관련 제품 개발이 한창이고 다음에는 밸렌타인데이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에 다른 브랜드가 우리 매장 옆에 커다란 매장을 낼 수도 있다. 우리가 믿는 윤리에 열정이 더해지면 살아남을 수 있고, 차곡차곡 모인 성과는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믿음을 갖는 이상 실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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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김은아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