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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이태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공간 디자이너 김치호
2012년 이태원 해밀톤 호텔 뒷골목에 문을 연 디스트릭트(Dstrict)는 펍과 라운지, 클럽이 한 건물에 모여 전에 없던 ‘밤 문화’에 불을 지핀 곳이다. 청담동에서나 볼 법한 멋쟁이들을 이태원에 모여들게 하고, 유럽풍 펍 프로스트(Prost)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섹시한 분위기의 글램(Glam)으로 올라가면 라운지에서 자연스럽게 춤을 추게끔 만들었다. 웅장함과 이국적인 멋, 글래머러스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인테리어는 단순한 바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디스트릭트의 공간 디자인을 맡았던 치호앤파트너스 김치호 대표는 이후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업 공간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바와 펍, 클럽 디자인계를 대표하는 리더로 활약하며 비원(B One)부터 피자무쪼(Pizza Muzzo), 코리안 타파스 앤 다이닝 바 루(LU:), 이제 막 문을 연 컨템퍼러리 이탈리아 캐주얼 파인 다이닝 섹션 A까지 이슈가 되는 공간을 창조해냈다. 내로라하는 파티에서는 늘 그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도 즐길 줄 아는 디자이너 김치호에게 한국의 클럽 & 바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비원 입구. 세 가지 톤으로 이루어진 초록색 타일은, 수소문 끝에 이천의 도예 작가를 알게 돼 극적으로 자체 제작한 것.


<월페이퍼>가 선정한 모스트 원티드 디자이너 15인이라는 수식어가 한동안 따라다녔다. 해외에서 처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로 안다.
오래전이다. 2001년쯤.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현지에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일단 유럽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디자이너가 많지 않았고, 떠오르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도 뽑혔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일할 생각이었지,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맨 처음 서울에 오게 된 건 2002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디자이너스 초이스 부문에 초청을 받아서였다. 2001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가해 개인전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서울디자인페스티벌과 리빙디자인페어를 총괄하던 디자인하우스 신승원 디렉터가 내 전시를 보고 서울에서 연락을 해왔다. 초대전에서 테크노젤을 소재로 여배우의 방이라는 콘셉트의 공간을 선보였다. 젤라틴으로 가구와 조명을 만들었는데 당시 반응이 꽤 좋았다. 그러고는 바로 제1회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첫 아트 디렉터를 맡게 됐다. 그게 서울에서 처음 의뢰받아 한 일이었다. 이후 4~5년 정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와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다.

이태원의 디스트릭트를 오픈하던 당시가 생각난다.
유럽식 외관과 아치형 창문, 높은 천장, 거대한 바와 바 위의 장식 등이 정말 대단했다. 클라이언트인 MYK는 현재 포카사 델리 카페부터 피자무쪼, 비원 라운지 클럽, 프로스트 펍 & 그릴, 글램 라운지, 레스토랑 섹션 A까지 이태원 일대를 주름잡는 막강한 다이닝 & 호스피탤러티 엔터테인먼트 그룹이기도 하다. MYK의 박정근 대표를 만난 건 내가 주최한 연말 파티에서였다. 당시 박 대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공간이 하나 있는데 결정이 나면 디자인 관련해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전화가 왔다. 지금의 디스트릭트 자리였다. 당시 MYK는 1층에 있는 프로스트 펍 & 그릴만 운영할 생각이었다. 현장을 보러 갔는데 2층이 층고가 더 높고 근사해서 매력적인 연출이 가능할 것 같았다. 1층과 2층을 모두 임대해 각기 다른 느낌으로 공간을 만들고, 2층은 파티를 할 수 있는 라운지로 사용할 것을 제안해 일이 커졌다.

글램 중앙부의 바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전까지는 국내에 바가 그렇게 중앙에 자리한 라운지나 클럽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바는 벽 쪽에 붙어 있든지, ㄱ자이든지, 한쪽에 몰려 있다. 왜 그런 줄 아나? 한국 사람들은 앉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외국에는 펍이든 바든 서서 마시는 사람이 많지만, 2012년 오픈 당시에는 한국 사람들은 서 있으면 왠지 어색함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바 길이는 곧 매출과 비례하기에 최대한 길게, 그리고 상호적인 시각적 연계성이 있게 디자인했다. 공간에 사람들이 서 있어야 할 모티브를 주고, 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 있는다. 글램 이전에는 사실 파티가 가능한 라운지가 없었다. 바에서 서서 춤추는 사람도 많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는 글램이 기존의 바 문화에도 변화를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는 사람들이 바에서 서서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것을 자연스러워하지 않나.

다양한 클럽과 바 프로젝트에 공통적인 기본 원칙이 있다면?
MYK의 박정근 대표가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자기가 정말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어느 도시를 갔을 때 꼭 어디를 가보라고 해서 가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데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그런 곳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외국에서 셀럽들이 서울에 오면 ‘여기 가서 한번 놀아봐라’ 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명소 말이다. 그러려면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소재의 진정성과 깊이감을 위해 최대한 자연 소재를 사용하고 마감의 퀄리티를 높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소품이 공간의 스토리와 부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글램의 바 위에 있는 거대한 샹들리에는 이해 못 할 정도로 비싼 가격이지만, 아르누보 시대의 오리지널이다.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소장품이다. 오리지널을 쓰는 이유는 그게 ‘진정한 멋’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결국 사람에 의해 완성되지만 사람을 담는 그릇도 멋있어야 한다. 그게 반드시 럭셔리한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원하는 콘셉트와 방향을 정하고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클럽 문화의 정신이기도 하다.

클럽 디자인은 여느 리테일이나 F&B 공간 디자인과 무엇이 다른가?
클럽은 감성과 에너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공감각적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서 다양한 공간 전략은 물론이고 청각적 장치에 대한 노하우와 특수 조명, 그리고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까지 철저하게 전략적인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 안에 감동의 폭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다양한 장치가 접목되어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디자이너 김치호가 만드는 공간은 왠지 글래머러스하고 섹시한 느낌이 강하다.
그럴 수 있다. 일단 섹시한 걸 좋아한다. 나 자신은 섹시하지 않을지 몰라도.(웃음) 그런데 섹시하다는 건 사람들을 매력에 빠지게 하는 중요한 셀링 포인트다. 사람들이 섹시하다고 느낄 수 있게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사람은 글래머러스한 공간에 가면 뭔가 우아하게 행동한다. 공간에 사람들이 잘 적응하고 녹아들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부여잡고 있지 않고 풀어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홀에는 스탠딩 테이블을 두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거나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글램의 여자 화장실. 블랙과 골드 컬러로 화장실도 매우 글래머러스하게 꾸몄다.


연속된 아치형의 큰 창문과 빈티지한 벽돌로 외관을 꾸몄다. 유럽의 오래된 창고나 공장을 개조해 만든 힙한 바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글램을 섹시하게 만드는 것은 조명과 소재라고 할 수 있나?
사실 그 이상으로 여러 가지 전략이 내포되어 있다. 우선 공간에도 기승전결이 필요하다. 어느 공간에 처음 들어섰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들어섰을 때 주목받는지, 소외받는지에 따라 공간에 대한 첫 느낌이 달라진다. 글램은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이 60cm 정도 높아진다. 들어서면서 마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듯한, 무대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진입 동선, 공간 안에서 높낮이 차이를 어떻게 두느냐도 공간을 섹시하게 만드는 포인트다. VIP 공간에도 그런 전략이 있다. 독립된 공간이지만 완전히 격리되지는 않는 파티션 구조가 그렇다. 파티션 뒤에 앉아 있으면 더 섹시한 느낌이 든다. 사극에서도 발이 쳐진 뒤쪽에 앉아 있으면 더 귀해 보이지 않나. 같은 이치다. 다른 공간에서 VIP 존이 보이면서도 완전히 노출되지는 않는 구조. 바가 있는 메인 홀보다 조금 높은 위치의, 테두리는 있으면서 파티션이 낮은 자리도 그렇다. 테두리 안에 있어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소외받지 않는 구조도 중요하다.

전략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보이는 섹시함이 아니라 감성의 섹시함을 건드리는 것이다. 중앙의 큰 바에 모여 있다가 사람들이 화장실을 가려면 유난히 좁은 통로를 거쳐야 한다.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트래픽을 일부러 만들어둔 건데, 그 과정에서 좋건 싫건 다른 사람과 부딪히고 접촉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를 관찰하게 되고, ‘호기심’이라는 중요한 감정의 포인트를 경험하게 된다. 바나 클럽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심리적이고도 아이러니한 동선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야 이런 숨겨진 전략을 모르니까, 일단 섹시한 조명이나 빛에 더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을까? 벨벳이나 가죽 같은 소재도 그렇고.
글램의 컬러는 모노톤이다. 주요 톤은 블랙이고 다크 그레이를 많이 썼다. 블랙 톤 대리석의 차분한 느낌이나 메탈 컬러는 사람을 더 시크하고 돋보이게 만든다. 조도도 한껏 낮췄다. 빛은 동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간을 만들 때마다 빛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직접조명이 아닌 간접조명으로 자연스럽게 동선을 표시한다. 또한 소재 중에는 빛을 먹는 소재가 있고 뿜어내는 소재가 있다. 빛이 벽을 타고 올라가게 하고 싶을 때는 반사성이 강한 소재를 쓰면 안 된다. 소재에도 적당한 텍스처가 있어야 한다. 결국 비싼 소재를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빛과 어울리는 적합한 소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글램이 생기고 난 후 글램을 모티브로 한 비슷한 라운지 바가 전국적으로 생겨났다. 비슷한 디자인을 의뢰한 클라이언트도 많았을 것 같다.
어떤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고 에너지가 모이게 하려면 그 공간만이 가진 배경, 콘텐츠, 전략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그걸 무시하고 ‘이게 유행이니 이렇게 만들어달라’, ‘이걸 많이 쓰던데 우리도 쓰자’라는 식의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고통스럽다. 공간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어디 가도 들을 수 없는 음악이 있다든지, 어디 가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칵테일이 있다든지 하는 식 말이다. 인테리어를 마감재를 규정하고 단순히 멋을 부리는 전략으로 해석하지 않고, 공간을 아우르는 콘텐츠와 각자의 진정한 색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모두가 일류가 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외의 좋아하는 클럽이 있다면 어디인가?
베를린의 베르크하인(Berghain). 베르크하인은 테크노 음악의 성지로 불린다.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꼽히며, 금요일 밤에 들어가서 일요일에 나오는 곳이다. 물론 하룻밤만 놀고 오는 사람도 많다. 사운드 시스템도 최고를 자랑한다. 두세 시간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줄이 길고, 기다리는 사람 중 반 정도는 퇴짜를 맞는다. 멋을 잔뜩 부리고 갈수록 들어갈 수 없으며,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구글에는 베르크하인 들어가는 법, 도어 폴리시에 대한 검색어가 수두룩할 정도다.


글램의 VIP 테이블 자리. 발을 친 것처럼 바깥쪽이 내다보이는 파티션 구조를 활용해 독립적이면서도 04 소외된 느낌을 받지 않도록 했다.

역시 그곳은 너무 하드 코어인데…. 비교 가능한 클럽이 더 이상 없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강력한 에너지와 메시지가 있는 클럽을 좋아한다. 베르크하인에는 경계가 없고 금기가 없고, 음악에 대해서도 항상 놀라는 곳이다. 어느 도시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진보적인 음악이 가득하다. 클럽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만 정확히 전달된다면 곧 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엔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대형 클럽이 성행과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는 진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유행이나 흐름에 반응하기보다는 깊이 있는 음악이나 철학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기지가 필요하다.

베르크하인은 입장하기가 너무 힘든 클럽으로도 유명하지 않나. 다른 도시에서 한 곳을 추천한다면?
런던의 패브릭(Fabric). 전설로 통하는 클럽이다. 패브릭은 들어가면 공간을 보기 힘들다. 너무 어두워서. 사람을 보기도 힘들고. 하지만 음악만 느끼면 된다. 맹목적으로 음악에 심취해서 가는 클럽이다. 나를 발산하고 오롯이 음악에 충실할 수 있는 클럽이다. 다른 목적, 예를 들면 여자를 만나겠다거나 뭐 그런 생각을 하고 가기에는 음악이 너무 세다. 진짜 클럽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시나 음악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술은 좀 있어야겠지.

작업을 위한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여행이다. 여행만큼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건 없다. 솔직히 평생 여행만 하면서 살고 싶다. 여행을 통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 태도를 접하고 거기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현재 진행 중인 다른 공간 디자인을 소개해달라.
방콕에 복합 공간을 만들고 있다. 현재 70% 정도 완성된 상태다. 방콕의 유명 클럽 거리인 RCA 거리에 새로운 쇼핑몰이 오픈하는데 그 옥상에 들어서는 복합 공간이다. YG리퍼블릭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이 루프톱에 고깃집도 있고, 펍도 있고, 주점도 있고, 클럽도 있는 식이다. 클럽만 완공하면 거의 다 끝난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공간 디자인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극도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클럽도 그런 공간이긴 한데, 해봤으니까. 교회 같은 종교적인 공간을 디자인해보고 싶다. 교회에서 경험하는 경건함, 신성함 같은 느낌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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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인터뷰·글: 이동미 <타임아웃서울>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