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찬 대신증권 브랜드전략실 이사. 뉴욕 프랫 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KUO 디자인, O 디자인 그룹 등 뉴욕의 디자인 전문 회사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2006년 현대카드에 입사하며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을 구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2012년 대신증권으로 이직한 후 대신증권의 브랜드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김봉찬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린드버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이 일해보고 싶은 디자이너가 있다면?
디터 람스.
최근 들어 당신을 가장 거슬리게 하는 것은?
소화전의 궁서체.
2019년 당신이 주목하는 것은?
디자인 실명제.
현대카드가 금융 시장에 새 지평을 열기 전까지 금융과 디자인을 한데 묶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금융은 이성, 디자인은 감성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이 적잖이 작용했을 터. 하지만 오늘날 금융권에서 디자인을 논하는 일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현대카드, IBK하나은행, 대신증권의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됐다. 탄탄한 논리를 갖춘 금융사가 고객의 마음을 훔치는 감성과 조형성을 포용했을 때 훌륭한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신증권 김봉찬 이사는 국내 금융 시장에 ‘디자인’이라는 석 자를 각인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2006년 현대카드의 ‘1호 정규직 디자이너’로 입사한 그는 사내에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이 자리를 잡는 데 이바지했다. 그는 2012년 대신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회사의 브랜드를 총괄하게 됐는데 당시 현대카드 디자인의 아성을 감안해보면 그의 행보는 다소 의외였다. “현대카드에서도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불모지 같은 회사에서 처음부터 디자인을 일구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금융권의 특성상 유형보다는 무형의 상품을 디자인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증권은 4대 금융(은행, 보험, 카드, 증권) 가운데 일반인과 가장 멀찍이 떨어져 있는 분야 아닌가. 여러모로 어려운 길을 택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난제가 오히려 그의 구미를 당겼다. ‘허들을 낮추고 일반인에게 증권이 가깝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스스로에게 내린 미션이었다. 김봉찬 이사는 대신증권 합류 직후 진행한 증권 애플리케이션 ‘크레온’의 브랜드 및 사용성 리뉴얼로 2013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위너를 수상했다. 당시로는 드물게 UX·UI 개념을 금융 서비스에 적극 도입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후에도 그가 이끄는 대신증권 브랜드전략실은 대내외적으로 꾸준히 디자인의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사옥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사옥 5층에 마련한 직원 복지 공간에서 그의 기획력이 돋보인다. 김봉찬 이사와 당시 건축 설계를 맡은 B&A 디자인(대표 배대용)은 도서관, 카페, 로비, 강당, 회의실 등 복합 기능을 갖춘 이곳을 개방형 공간으로 구성했다. 무빙월과 계단형으로 접히는 의자 디자인으로 공간의 효용성을 극대화한 점이 눈길을 끈다. “판교 일대를 돌며 여러 회사를 리서치했는데 통상 강당 사용률이 30%를 밑돌더군요. 간헐적으로 사용하는 죽은 공간이 아닌, 상황에 따라 변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구조적인 본질을 파악해 효율성을 찾고 이를 통해 솔루션을 제시한다는 그의 디자인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2017년에는 회사의 종이 쇼핑백을 에코백으로 전면 교체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코팅된 종이 가방이 친환경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로모션용으로 무분별하게 제작하는 일회성 에코백이라면 친환경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 제작 단가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이를 제안했을 때 경영진도 적극 찬성을 했어요. 단, 한 가지 조건을 달았는데 제작 단가를 종이 백 수준에 맞추라는 것이었죠.(웃음)” 얼핏 미션 임파서블 같았지만 김봉찬 이사는 전국 의류 창고를 돌며 수집한 자투리 원단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원가 분석 결과 패브릭이 제작 비용의 70~80%를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투리 원단으로 비용을 최소화한 것이다. 또 모던한 디자인으로, 들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가방을 제작했다. 반응이 좋았던 것은 당연지사. 물론 이러한 소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디자인과 브랜딩이 금융사의 수익과 직결되느냐는 이들의 의구심에 김봉찬 이사는 ‘커리어와 실력 그리고 숫자가 가장 확실한 답’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객관화된 지표로 브랜드의 힘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밀한 관찰과 탄탄한 리서치를 바탕에 둔 그의 디자인은 2019년에도 큰(大) 믿음(信)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대신증권의 에코백
자투리 원단을 활용해 제작 단가를 종이 백 수준에 맞췄다. 여러 색상의 원단을 랜덤으로 사용해 다양한 디자인이 나왔다.
대신증권 사원증
직원의 사진과 이름을 후면에 배치한 게 특징이다. 이는 사원들이 사원증에 명함을 꽂거나 뒤집어서 갖고 다니는 등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노출시키기 꺼려하는 데에서 착안한 것이다.
핸드메이드 한정판 지갑 ‘대신 월렛’
대신증권 창립 56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이탈리아 부테로 가죽을 이용해 새들 스티치 방식으로 제작했는데 대신증권의 헤리티지를 고급 가죽의 속성과 매칭시킨 것이다. 공개 6일 만에 제작한 500개가 전량 소진됐다.
크레온
오작동률을 낮추기 위해 버튼 크기를 56픽셀 이상으로 설계하는 등 사용자 편의를 고려해 디자인했다. 머니 트래킹 서비스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이 디자인은 현재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권 금융사에 수출하고 있다.
대신증권 사옥 5층
2016년 12월부터 사용하고 있는 저동의 대신증권 신사옥. 건축은 B&A 디자인이 맡았다. 중심부에 라이브러리를 두고 전반적으로 개방감 있는 공간을 연출했다. 접었을 때 계단의 일부가 되는 강당 의자는 김봉찬 이사가 직접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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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e +바이라인 : 글 최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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