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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공간을 다루는 젊은 디자이너의 자세 라보토리 Labotory


정진호(왼쪽)와 박기민. 라보토리 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과에서 함께 공부한 박기민과 정진호가 2016년 결성한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다. 2012년 졸업 후 박기민은 스튜디오 엘아이티를 직접 운영했고 정진호는 스튜디오 베이스에서 실무를 쌓다가 대학 시절 함께 꿈을 이루자는 서로의 약속을 다시 떠올리며 라보토리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꿈이 현실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가겠다는 지향점을 갖고 기능과 영역을 넘나들며 총체적인 공간 디자인을 실현하고 있다. www.labotory.com
라보토리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박) 삶의 현상들을 더욱 섬세하게 바라보게 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메시지. (정) 일상의 발견에서 감명받은 것을 내면에 투영시켜 전달하는 매개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박)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전해주는 ECM. (정) 몰스킨. 몰스킨의 섬세한 감성은 문구를 뛰어넘어 문화로 비쳐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이 일해보고 싶은 디자이너가 있다면?
(박) 마르틴 마르지엘라. 그가 추구하는 팀워크란 무엇인지 알고싶다. (정) 조르조 모란디. 평범한 대상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최근 들어 당신을 가장 거슬리게 하는 것은?
(박)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는 사람들(나 포함). (정) 본질보다 장식이 전체를 지배하는 것.

2019년 당신이 주목하는 것은?
(박)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가기 위해 사유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 (정) 좋은 공간, 좋은 디자이너, 좋은 남편 같은, ‘좋은 것’에 대한 의미 찾기.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말은 우리 주변의 현상에 대한 감각적 무지와 아둔함에 철퇴를 가하는 명언이다. 아주 밀접하고 일상적이어서 포착되지 않는 것들, 그 현상들의 소중함과 특별함은 결국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새로운 시각과 표현으로 발견해내는 것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아니었다면 무진의 명물이 안개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경험했을까. 결국 그런 발견은 섬세한 시각과 곤두선 예술적 감각에 의해 이루어진다. 2016년에 결성된 라보토리가 전하는 디자인은 바로 이것이다. “저희는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사물의 디자인을 넘어 그곳을 채우는 감정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얼핏 디자이너의 지나친 욕심이나 과장된 수사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것은 진정성 있는 노력과 시선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된다. 인터뷰 내내 이런 자리라면 당연히 등장해야 할 인테리어, 기능, 형태, 색채 등의 디자인 용어는 뒷전이었고 그보다는 뉘앙스, 음악, 향기, 햇살, 일상과 같은 문학적이고도 감성적인 단어가 한 시간을 빼곡하게 채웠다. 과연 이런 단어 선택이 이제 3년째에 접어든 30대 중반의 디자이너 둘과 나눈 대화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라보토리는 공간 디자인 분야가 지닌 일회성과 트렌디함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이나 창조적인 저항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공간 디자인을 넘어서 좀 더 확장된 영역을 다루려고 해요. 공간에 담아야 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것이죠.” 그들은 공간을 감정의 총체로 규정하면서 여기서 발생하는 공감각적 경험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한남동 카페 오리앙떼에 대해 설명할 때도 디테일, 기능과 조형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곳의 향기와 햇살, 소리와 음악, 그리고 장소의 감성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이곳은 차분한 동양의 정취를 담고자 했어요. 작은 물소리와 함께 솔 향기가 공간을 채우고, 늦은 아침 이곳에 떨어지는 햇살 아래서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경험을 의도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의도하고 연출한 시각적 경험이 미세한 소리와 음악과 어떻게 어울릴지를 고민했죠.” 한편 도심 한옥이 모여 있는 익선동에서 그들은 골목 풍경을 어떻게 내부화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3년 전 익선동 골목은 폐쇄적인 한옥 구조 때문에 내부와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서울 커피에서는 한옥의 외벽을 투명하게 만들어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시도했어요. 최근에는 이런 상황이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되어 오히려 거리가 혼탁해진 것 같지만요. 그래서 최근 익선동에 맥주 바인 칼리가리 브루잉을 디자인할 때는 반대로 적당히 가리는 방법을 취했죠.” 인터뷰 말미에 라보토리의 두 멤버에게 디자이너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공격적으로 물었다. “결국 우리의 생활과 삶이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과 진정성 있게 맞닿아 있어야 일에서도 ‘공간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의 생활에서 생각과 행동이 바뀌면
디자인도 달라질 수 있어요.” 본인의 디자인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의 생활부터 디자인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그들에게 고유한 디자인 스타일이나 확고한 디자인 매뉴얼을 기대하는 건 우스운 일일 수 있다. 그들에게 디자인이란 우리 주변의 사소한 현상과 일상적인 감정을 재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형체와 색이 없는 안개 같은 걸 말이다.




오리앙떼
아무도 없을 것 같은 한남동의 한 막다른 골목길, 그것도 다가구주택 반지하에 들어선 카페. 안으로 들어선 순간 작지만 새로운 감각의 세계가 펼쳐진다. ©최용준




더일마
청담스퀘어 1층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 패션 브랜드 더일마 매장. 청담동 거리의 분위기와 흐름이 자연스럽게 매장 안쪽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다. ©최용준




뷰티인보우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들어선 편집숍 뷰티 인 보우. 백화점의 혼잡함을 가리기 위해 안쪽으로 아늑한 공간을 조성했다. ©최용준




칼리가리 브루잉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익선동의 감성 펍. 한옥이 지닌 동양적인 정취는 살리면서도 새로운 재료와 소재를 사용해 생동감 있는 마당 풍경을 만들었다. ©최용준




서울 커피
익선동 도심 한옥의 폐쇄적인 외벽을 과감하게 털어내 내부의 풍경을 골목으로 끄집어냈다. ©최용준




사뿐 플래그십 스토어
가로수길에 위치한 여성 수제화 전문점 사뿐. 밝은 색상과 부드러운 곡선의 사용이 매장 입구에서부터 내부 모서리, 가구와 소품까지 일관성 있게 적용되었다. ©최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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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박성진(사이트 앤 페이지 디렉터), 편집 오상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