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진 세종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민음사에서 1년간 북 디자이너로 일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프레클스를 운영하며 퀴어 잡지 <뒤로>와 햇빛 총서를 발행하고 있다. 반성매매 인권 행동 이룸에서 나온 <청량리: 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의 북 디자인, 공연기획자 박다함의 파티 포스터 ‘미친다’, 패션 브랜드 아조바이아조Ajobyajo 캠페인 등을 디자인했다. leedozin.kr
이도진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내 친구들과 삶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 중 하나.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발렌시아가 2019 S/S(콕 집어 ‘이번 시즌’의 발렌시아가가 좋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이 일해보고 싶은 디자이너가 있다면?
박철희. 물론 엄청 싸우겠지만 정말 좋은 결과물을 만들 자신이 있다.
최근 들어 당신을 가장 거슬리게 하는 것은?
<뒤로> 3호 제작 중 퀴어 잡지라는 것을 안 인쇄소가 돌연 계약을 취소한 일.
2019년 당신이 주목하는 것은?
발렌시아가의 행보.
2015년 6월 서울시청 광장에서 최초로 대규모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다. 2000년에 시작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대학로를 시작으로 을지로, 홍대, 신촌 등지로 자리를 옮기며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그렇게 10년 넘게 진행해온 축제가 2015년에 갑자기 주목을 받은 건 서울시청 광장이라는 장소, 서울의 심장부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 성별 등의 이유로 광장 사용에 차별을 두지 않겠다는 서울시의 차별 금지 조항과 LGBT를 반대하는 정치 세력, 시민들의 항의가 부딪히며 한국의 퀴어 문화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논란은 오히려 성 소수자들에게 기회였고 목소리를 키울 수 있게 한 발판이 됐다. 같은 해 9월 이태원에 문을 연 LGBT 전문 서점 ‘햇빛 서점’이 신호탄을 터트리며 음지 문화로 인식되던 퀴어 문화가 서서히 양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바통을 이어받은 게 퀴어 잡지 <뒤로Duiro>였다. <뒤로> 발행인이자 디자이너인 이도진은 “성 소수자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해야겠다’ 싶어 <뒤로>를 기획했죠”라고 말했다. 1년에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한 호씩 발행하는 이 잡지는 성 소수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화보, 인터뷰 등을 담는다. ‘군대’를 시작으로 ‘혼인’, ‘반려동물’까지 총 3호를 발행했는데 각 주제는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LGBT 관점에서 진지하게 풀어내고자 선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군대’ 편은 2015년 ‘군형법 동성애 처벌 조항’ 폐지에 대한 이슈를 다루었고 ‘혼인’ 편은 변화하는 대만과 일본의 생활동반자법 등을 통해 변화하는 가족 형태와 시대상을 조망한 것이다. 앞선 두 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풀어낸 ‘반려동물’ 편은 소수자이기에 받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뒤로>의 기사를 읽다 보면 ‘퀴어 잡지’라는 수식을 의식하기보다 그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인간상과 그들의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때론 몽환적인, 때론 섹시하거나 귀여운 화보와 일러스트레이션은 보는 재미를 주고 진솔하게 전하는 글에 설득력을 더한다. 물론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종류의 잡지를 발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화제성과는 별개로 <뒤로>를 한 번 발행할 때마다 이도진은 몇백만원씩 빚을 지게 된다. 게다가 아직은 (성 소수자들조차) 이러한 문화를 겉으로 드러내고 향유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매체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잡지를 놓치 않는 건 <뒤로>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성 소수자 문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통의 창구이기 때문. 매 호를 준비할 때마다 새로운 필자와 포토그래퍼를 발굴하고자 애쓰는 건 이 잡지를 통해 의미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도진은 <뒤로> 외에도 출판사에서 북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을 살려 단행본 ‘햇빛 총서’를 기획했다. 판화가 히로카와 다케시의 작품을 표지로 사용한 <목사 아들 게이>와 <남창 일기>는 성 소수자 내에서도 좀처럼 발화되지 않는 첨예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 프레클스를 운영하며 ‘생계형 디자이너’로도 활동한다. 삶은 6인분의 소면을 재료로 디자인한 뮤직 파티 포스터, 카드 낱장을 자유롭게 끼워 조형물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한 사진가 모모미의 ‘프린티드 글로우’,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활용해 디자인한 ‘서울인기 2017’ 페스티벌 포스터 등 다채로운 표현 방식이 눈길을 끈다. 특정 스타일을 추구하며 예상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을 탐구하고 실험하는 그의 자세가 인상적이다. 잡지 발행인으로, 단행본 기획자로, 그래픽 디자이너로 성 소수자의 소통 창구가 되고 싶다는 그로 인해 2019년 한국 디자인계는 무지개 빛깔만큼이나 다종다양해질 것이다.
<뒤로>
2016년부터 매년 한 권씩 발행하는 퀴어 잡지. ‘군대’, ‘혼인’, ‘반려동물’을 주제로 현재까지 총 3권이 나왔다. 앞으로 온라인 쪽을 강화하는 한편 오프라인 잡지는 화보 중심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서울인기 2017 포스터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포스터.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전달하고자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했다.
햇빛 총서 <목사 아들 게이> <남창 일기>
성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쉽게 다뤄지지 않는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는 핸드북 시리즈. 시리즈 전권을 모았을 때 색상 스펙트럼처럼 보일 수 있도록 컬러 콘셉트를 잡았다. 표지 그림은 판화가 히로카와 다케시의 작품.
미친다 2016·2018 포스터
공연기획자 박다함이 기획하는 비정기 음악 파티 포스터. 2016년 포스터의 경우 디자인 스튜디오 씨오엠의 도움을 받아 LED 스트립으로 일본어와 한글이 뒤섞인 레터링을 제작해 배치했다. 2018년 포스터는 소면을 삶아서 ‘미친다’ 글씨를 만들어 초여름 한국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프린티드 글로우
사진가 모모미의 엽서와 포스터, 조립형 사진 카드다. 카드 낱장을 끼워 조형물을 만들 수 있다.
혼인평권
‘혼인평권(婚姻平權)’은 LGBT의 평등한 혼인을 위해 대만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구호다. <뒤로>는 2017년 주제 ‘혼인’에 맞춰 이 구호가 새겨진 숄더백을 제작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그해 5월에는 대만 헌법재판소가 동성 결혼 금지는 위헌이라고 결론 내렸는데 <뒤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혼인평권 숄더백 2차 제작을 진행했다.
<청량리: 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
청량리에 거주하던 성매매 여성들과 이들을 돕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표지에 광택 코팅과 흰색 박을 사용해 작은 손때조차 도드라져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 관련 기사
- 2019 월간 <디자인>이 주목한 디자이너 13팀
- CFC
- tpmj
- 김봉찬 Bongchan Kim
- 라보토리 Labotory
- 레지나표 Rejina Pyo
- 오늘의풍경 Scenery of Today
- 이도진 Dozin Lee
- 조인혁 Inhyuk Jo
- 최경국 Gyeongguk Grey Choe
- 카우카우 Cow Cow
- 팩토리 콜렉티브 Factory Collective
- 페시 PESI
- 프롬헨스 Fromhence
- 한국 퀴어 문화를 발신하는 디자이너 이도진 Dozin Lee
-
Share +바이라인 : 글 박은영, 편집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