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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ITM유이화건축 유이화


2001년 이타미준건축사무소 서울지사를 열었지만 이미 10대 때부터 아버지 이타미 준(유동룡)와 함께 건축 현장을 누볐다. 이를 통해 더욱 깊고 세밀한 부분까지 살피는 시선과 설계자로서 문제를 파고들어 매끈하게 다듬는 법을 키웠다. 현재 ITM유이화건축 대표로, 서원밸리 골프클럽하우스, 용두동 아주 좋은 꿈터, 제일 전기 사옥, 이노이즈 사옥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1년 ‘오보에힐스’로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 주거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itmarch.com081






(순서대로) 파주시에 위치한 ‘서원밸리 골프클럽하우스’. ⓒ남궁선, 서울 등촌동에 위치한 ‘제일전기공업 사옥’. ⓒ김재윤, 서울 사당동에 위치한 오피스 시설 ‘JH 타워’. ⓒ신경섭
최근 개봉한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향한 관심이 뜨거웠다.
영화를 만든 정다운 감독을 처음 만난 게 벌써 8년 전이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그해 가을에 봤으니까. 정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운을 뗐는데 어쩐지 신뢰가 갔다. 역시나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같은 속도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모습에 감동했다. 나는 단지 자료를 전하고 이야기를 거들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분들이 이타미 준이라는 건축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사무소를 열었을 때는 이타미준건축연구소라는 이름이었다.
2001년 가을에 개소했다. 처음에는 이타미준건축연구소 서울지사였다. 내가 건축가로 살아가는 길에 아버지가 항상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이타미 준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 일본 회사란 이미지가 강해 ITM 건축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유이화’를 넣었다. 요즘에는 클라이언트나 협업사에서 유이화 사무소라고 불러준다.(웃음)

어렸을 때부터 건축 현장을 따라다녔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한국 현장에 나갈 때면 늘 쫓아다니며 통역하는 일을 맡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랬다. 아버지의 감정과 판단을 현장에 전달하고, 설득하고 이해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건축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참 설레었는데 나중에 내 디자인으로 그런 설렘을 또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건축가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펄쩍 뛰며 말도 못하게 반대하셨다. 당신이 매일을 투쟁하듯이 살고, 훌륭한 건축가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단련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각오 없이는 건축가를 하지 말라 하셨다. 결국 고집을 부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로 유학까지 떠났는데,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오셔서 모형으로 둘러싸인 어둡고 비좁은 내 숙소를 보시고는 “넌 내가 말려도 할 놈이구나” 하고 인정해주셨다. 그 후로는 내가 건축 그만둔다고 할까 봐 눈치를 보셨다.(웃음)

ITM유이화건축은 내부에 건축과 인테리어 전문 팀이 있다.
학부 시절 실내 환경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때의 경험이 세밀하게 컬러와 조형 등의 미적 감각을 체득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더 풍요로운 디테일을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프로젝트를 맡을 때 ‘실내외 디자인을 모두 우리 사무소가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사무소 내에도 실내 설계팀과 건축 설계팀이 같이 있다. 나는 인테리어가 치장에서 머물지 않고 공간을 규정하는 역할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와 외부가 어떻게 연결될지 건축과 인테리어 사이의 피드백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울 합정동의 이노이즈 사옥. UX 디자인 회사의 업무 특성상 직원들의 자유로운 소통이 중요했다. 중심에 계단을 두고 양측의 공간을 스킵 플로어 방식으로 구성해 시각적 교류가 일어나는 방식을 택했다. ⓒ신경섭


JH 타워는 15층짜리 오피스 시설이다. 복잡한 도시 풍경 안에서 조용히 자리 잡길 바라며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로 재료를 단순화했고, 면과 면이 만나는 부분, 재료와 재료가 이어지는 부분의 디테일 디자인을 특별히 신경 썼다. ⓒ신경섭


‘서원밸리 골프클럽하우스’ 실내. 골프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에 따라 시원한 공간감을 확보해 한층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이타미 준의 유작으로, 그가 남긴 스케치를 바탕으로 유이화가 주도해 완공한 프로젝트다. ⓒ석정민


서울 평창동의 ‘오보에 힐스’는 18가구로 이루어진 타운하우스다. 지형의 흐름에 따라 길을 내고 건물을 앉혔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풍경과 건물의 조화로움이었다. 이타미 준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설계를 진행했다. ⓒSato Shinichi


오보에 힐스 실내에서 바라본 전망. 시원하게 창을 내어 바깥 풍경이 실내 깊숙이 들어오도록 했다. 실내 마감재로 목재를 사용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Sato Shinichi
그런 시선은 끝내 디테일의 완성으로 이어지겠다.
결국 이용자의 눈에 가장 쉽게 띄고, 가깝게 만져지는 건 디테일에 있다. 그런 부분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아버지에게 배웠다. 나도 훈련받았다.(웃음) 창문 프레임의 두께, 커튼과 천장이 만나는 부분, 계단참, 손잡이, 어느 하나 뺄 수 없다. 우리 사무소가 가장 잘하는 일 또한 디테일을 좇아가는 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도면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그린다. 시간도 그만큼 걸린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클라이언트에게 설계 기간이 적어도 6개월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단순히 도면을 많이 그리는 게 아니라 예산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을 위해 제대로 꼼꼼하게 살피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건축가의 업을 경험했기에 일을 할 때도 남다르게 여겨지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의 힘을 믿는다. 급하게 미싱질해서 대량생산한 옷과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해 지은 옷은 에너지가 완전히 다르다. 하물며 건축은 어떻겠나. 건물 안에서 사람이 살고, 또 그 건물과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반자적 관계다. 그래서 건축은 힘을 가져야 한다. 건물이 가지는 힘은 설계자가 만들고, 이는 어디까지 얼마나 세밀하게 디자인했느냐로 정해진다.

건축가로서의 마음가짐을 특히 강조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특히 건축가가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고, 긴장하며 깨어 있어야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정신적인 사치를 강조했다. 돈이 없어 끼니를 대충 때울지언정 제대로 맛을 낸 커피 한잔에 고독하게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사색하지 않는 디자이너는 자기 세계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나도 그 말을 믿는다.

때로는 이타미 준이 함께 등장하지 않는, 유이화 혼자만의 오롯한 세계를 만들고 싶지 않나?
아버지께 배운 건 내 몸에 녹아 있는 기본일 뿐 바깥으로 드러나는 건 ‘내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넘어서야 되지 않겠느냐’고 간혹 묻는 사람이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다. 왜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하나? 디자인이란 신체에서 나오는 행위다. 그러니까 내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 가령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교류하는 사람까지도 모두 디자인이란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살아온 환경과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니 우리의 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시대에서 내 일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버지가 남긴 말씀에 따라 제주도에 건축 학교와 기념관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기념관의 경우 재원을 마련하면서 진행해야 하기에 확답할 수 없어도 내년 봄에 착공하는 걸 목표로 한다. 한편 건축가로서 욕심나는 건 리조트 설계 프로젝트다. ‘쉼’이란 주제로 주거, 레저, 문화에 대한 고민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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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윤솔희 프리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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