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촬영했다.
공간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현재는 계원예술대학교 전시디자인과 외래 교수이자 전시디자인 스튜디오 ‘TBD(To Be Determined)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비롯한 해외 문화원에서 전시디자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mhl_0717
“ 모든 전시는 반드시 끝이 있고, 끝나면 다시 볼 수 없다. 전시가 끝나면 싹 허물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다시 또 허무는 과정을 지켜볼 때면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전시 디자이너로 10년 넘게 일했고, 앞으로도 전시 디자인만 할 예정이라고. 한 우물만 파는 이유는?
8년 넘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매번 같은 공간을 디자인해도 기획자가 다르고 작가와 작품이 다르기 때문에 늘 새로운 일처럼 흥미로웠다. 동일한 작가의 전시라도 기획자에 따라 부각시키는 내용이 다르고, 또 관람객에게 전달할 때 어떤 시각적 장치를 배치하느냐에 따라서도 인상이 달라진다. 여기서 매력을 느꼈다. 세상에 똑같은 전시는 없다는 것. 모든 전시는 반드시 끝이 있고, 끝나면 다시 볼 수 없다. 전시가 끝나면 싹 허물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다시 또 허무는 과정을 지켜볼 때면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마치 만다라를 그리는 과정처럼 들린다. 전시 디자인이 그림이라면 스케치북과 그려야 할 도형까지 모두 정해진 이후에 시작되는 그림인 것 같다.
통상적인 프로세스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큐레이터가 작품 선정을 모두 끝낸 이후에 나를 찾을 때도 있고, 작품 선정부터 함께 하길 원할 때도 있다.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체크하는 것이 전시 공간과 작품 수인 것은 맞다. 작품이 공간에 들어갔을 때 어떤 호흡과 속도를 부여할지 가늠하기 위해서다. 기획자가 쓴 글을 공간에 옮겨다 놓는 것이 나의 일이고, 언제나 상상 속 공간과 현실의 공간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므로 공간 대비 작품의 볼륨을 파악해 적절한 작품 수를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충돌은 없나?
충돌까진 아닌데, 어쨌든 협의 과정은 필수다. 이 과정을 두고 기획자와 전시 디자이너 사이에서 밈처럼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 〈Family of Man〉(1955)을 준비하던 기획자 슈타이켄과 전시 디자이너 폴 루돌프의 이야기다. 기획자는 전시 공간에 사진 3000점을 걸겠다고 했고, 디자이너는 350점,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집어넣는다면 400점까지 가능하다고 옥신각신했단다. 결국 실제로 전시된 것은 500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뉴욕이나 서울이나 기획자와 전시 디자이너의 의견이 상충하는 부분은 비슷한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박이소: 기록과 기억〉(2018). iF 디자인 어워드 2019 전시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사진 장준호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반구대 바위그림: 고래의 여행〉(2020). 사진 이민희
에디터와 편집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라는 고집과 ‘빽빽해서 안 읽힌다’는 방어, 그 사이의 팽팽함이 존재한다.
기시감이 느껴진다.(웃음) 기획자와 작품 수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제가 들고 서 있겠습니다” 하고 우스갯소리를 할 때도 있다. 내 방어의 이유는 얼마간의 거리가 확보되어야 분위기도 조성되고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관람객도 ‘소화’를 좀 해야 다음 작품, 그다음 작품으로 감상을 이어가지 않겠나.
작품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전시 디자인과 관객을 배려하는 전시 디자인은 상충할까?
나는 그 두 가지가 대립되는 요건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전시 주체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공동으로 마르셀 뒤샹의 회고전을 주최한 적이 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소장품을 대거 공개하는 전시로, 필라델피아의 설치 전문가들이 직접 작업했는데 전시 환경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당시 전시하는 마르셀 뒤샹의 작품 중 지류가 많았는데, 이를 보호하기 위해 전시장 조도를 아주 낮게 요구했고, 관객의 사진 촬영도 금지되었다. 당시는 2018년으로 전시장에서 사진 촬영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도 말이다. 작품 라벨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우려될 만큼 낮은 조도로 전시가 진행됐다. 이를 두고 전시의 극적인 연출을 위한 과잉 장치라는 외부의 지적이 있었는데, 필라델피아 미술관 측이 철저한 작품 보존을 최우선으로 내세운 결과였다.
전시 디자인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조금이라도 돋보이면 그 합당함에 대해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에 대한 전시 디자이너의 생각은 어떤가?
‘다행이다. 이 영역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 튄다는 비난이 생기고, 어떤 논쟁이 생겨서 질타를 받는다는 건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 물론 쓴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누군가 전시 디자인에 의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반가울 따름이다. 1960년대 MoMA 자료를 보면 화려한 전시 디자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닥에 깐 카펫 타일의 소재부터 벽면, 가벽, 폴대 등 지금 보면 과한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딱 좋은 디자인이다. 지금은 그들도 반드시 밋밋함을 피해야 한다거나 관람객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부담에서 상당히 벗어난 듯한데 아마도 ‘과잉의 시기’를 거쳤기에 지금의 ‘담백한 시기’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다른 전시를 보러 가면 전시 디자이너가 욕심부리지 않은 것이 느껴질 때 ‘잘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우리는 전시 디자인을 좀 더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단계를 건너뛴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본다.
전시 〈다비드 자맹: 프로방스에서 온 댄디 보이〉(2023). 사진 한국경제신문
2020년 하반기부터 프리랜서로 일했다. 독립 후 가장 처음 디자인한 전시는 무엇이었나? 인하우스 디자이너와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차이가 느껴졌나?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의 특별전 〈반구대 바위 그림: 고래의 여행〉이다. 기관의 울타리를 벗어나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확 달라진 진행 속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지 않으니 즉각적이었던 의사소통이 여러 단계로 쪼개졌다. 이제부터는 내 이름을 걸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보호막 없는 혼자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장 감리 보던 날이 생각난다. 먼지 폴폴 날리는 시공 현장에서부터 덜 무서워지더라. 오래 알고 지낸 목공 반장님, 작업자들이 믹스 커피를 타 마시는 익숙한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느껴졌다. “민희 씨 왜 이제 왔어? 얼른 커피 마셔” 하는 반장님 인사를 들으니 ‘앞으로도 이 사람들과 계속 전시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해볼 만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얼마 전에는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린 다비드 자맹의 회화 전시도 디자인했다. 상업 공간에서의 전시는 미술관, 박물관과 많이 다른가?
아무래도 국공립 기관의 전시는 보다 관념적이고, 교육적인 측면이 훨씬 강조된다. 작가의 어떤 부분을 조명할지, 어떤 메시지를 명확히 할지 고민하고 컬러 하나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전시가 국공립 기관 전시 같을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독립 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전시에 대한 이해도가 모두 다르고, 그 과정에서 나도 처음 해보는 제안과 설득이 많아진다. 상업 공간은 전시에 오는 관람객의 경험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오고 싶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사진에도 잘 나와야 한다. 내가 디자인한 전시에 사람이 많이 다녀가면 그것도 기쁘겠지만, 그렇다고 전시장 전체를 포토존으로 만들거나 빽빽하게 작품 수만 채워 전시 경험을 해치는 디자인은 하고 싶지 않다. 예산이라는 현실적인 부분과도 한창 전쟁 중이다. 기관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고정된 예산이 있었지만 이제는 제작비에 대비해 디자인을 가늠해야 한다. 집기의 마감 정도, 새롭게 제작할 것과 다시 쓸 수 있는 것 등 적당한 포기와 반드시 지켜야 할 마지노선 그 사이에서 아이디어를 낸다.
현재 계원예술대학교의 전시디자인과에서 강의한다. 강의 내용이 궁금한데.
간단히 말하면 전시 디자인의 기획과 연출이다. 전시 하나를 완성하기 위한 전체 과정과 전시의 콘텐츠를 시각화하는 방법에 대한 공부다. 수업에서 언제나 강조하는 것은 매너다. 전시 또한 많은 사람과 함께 협업해야만 한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분야를 존중하는 디자이너가 되길 바라고 또 그들도 존중받길 바란다. 실무 경험 전에는 두 역할 사이에 위계가 있다는 인식을 갖기 쉬운데 실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동등하게 일한다는 것도 알린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전시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2023). 낮은 높이의 좌대를 설치해 관람객이 조각 작품을 자세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장준호
전시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학생은 많은 편인가?
많다. 전시 기획자와 전시 디자이너를 헷갈려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사실은 그 때문에 매번 ‘이번 학기까지만 수업할까?’ 고민한다. 내 수업에 앉아 있는 모두가 전시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는데 이것을 가르치는 일이 무모한 희망만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전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문은 굉장히 좁다. 전시 디자인을 인하우스 형태로 진행하는 곳도 한국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정도다.
그럼에도 전시 디자인을 따로 가르치는 학과가 있기에 전시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강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맞는 말이다. 전시 디자인을 인지하는 곳, 필요로 하는 곳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요즘은 지방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잦다. 예전에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전시 디자인을 의뢰하고 싶어서 처음으로 예산을 따로 마련했다는 것이다. 전시 디자인과 전시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 같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민희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잘 만든 전시’란?
의미 없는 가벽이 없는 전시. 동선에 변화를 주기 위해 목공 벽을 세우는 건 예산을 무의미하게 쓰는 거다. 공간을 구획할 때 반드시 가벽을 세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패브릭을 이용하거나 바닥에 영역을 표시해 분할할 수도 있다. 물리적인 기존 장치에서 벗어나 좀 더 참신한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필연으로 가득 찬 전시, 상상만 해도 만족스럽다.
- 이민희 TBD 프로젝트 필연으로 가득 채운 일시적 공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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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모래성’을 검색해본 적 있는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래성이 무너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무너질 모래성으로 타지마할을 짓는 사람.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은 유한하고, 전시는 더욱 유한하다. 전시 디자이너는 이 끝을 알면서도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사람이다. 이민희는 전시 디자이너 중 보기 드물게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미술관, 박물관, 어린이 박물관 등 다양한 전시 공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모래성을 짓는다. 이민희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것은 ‘전시는 끝난다’라는 사실이 아니라 한정된 시공간을 기능과 의미의 장치로 채우는 데에 있다.Share +바이라인 : 글 박슬기 기자 인물 사진 김잔듸(516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