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전공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팬택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HS애드 내 브랜드 컨설팅 조직 OTR의 디자인 디렉터로 근무했다. 2018년 김지윤스튜디오를 창업했고 그해부터 건국대학교 산업 디자인학과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jiyounkim.com
유닉스 일렉트로닉스 테이크아웃 4 시리즈 Z세대를 타깃으로 한 포터블 고데기에 스포티한 감성을 더해 디자인했다. 디자인 김지윤, 이한나, 이도경
스튜디오를 차리기 전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오래 일했다.
11년 이상 회사를 다녔으니 경험치를 충분히 쌓은 편이다. 첫 직장은 팬택이었는데 해외 디자인 팀에서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모바일 디바이스를 디자인하는 일을 했다. 당시 많은 양산 프로젝트를 맡으며 엔지니어들과 협업하고 결과물의 성과를 분석하는 경험을 5년여간 쌓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가구나 리빙 제품을 디자인해 전시하거나 외주 작업을 맡기도 했다.
팬택 퇴사 후 바로 스튜디오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HS애드 내 OTR이라는 컨설팅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이현종 대표의 제안으로 디자인 디렉터로 합류하게 됐다. 당시 비즈니스 툴로서의 디자인과 브랜드에 많은 관심이 있어 eMBA 과정에서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브랜드와 마케팅 메시지를 다루는 광고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제품의 형태나 CMF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한발 나아가 디자인과 다양한 비즈니스 툴을 융합하고 브랜드를 다듬는 등 통합적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겸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퇴사 후 정식으로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포트폴리오에서 코스메틱 제품을 다수 디자인한 점이 눈에 띈다.
코스메틱 외에도 다양한 영역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대기업의 가전 및 전자 디바이스의 경우 의사 결정 구조가 세분화되어 있고 수많은 부서와 협업해야 하기 때문에 초기 선행 디자인 프로젝트가 출시로 연결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코스메틱 분야는 출시를 명확한 목표로 잡고 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클라이언트 측에서 선공개하거나 출시되었을 때만 포트폴리오로 사용하기 때문에 웹사이트상에서 상대적으로 코스메틱 제품이 많이 보여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브랜드 전략 수립부터 제품화까지 전 단계를 클라이언트와 협업해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뷰티 영역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나는 산업군에 따라 카테고리를 나누기보다 디자인 대상을 하나의 오브젝트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항상 ‘우리가 디자인하는 대상이 지구의 자원을 소모하면서까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다시 말해 디자인 대상의 형태나 색, 마케팅 용어의 맥락적 당위성, 그러니까 존재 이유를 찾는 일에 몰두한다.
차홍 볼륨 컬러 제품과 패키지에서 브랜드 철학이 느껴진다. 디자인 김지윤, 이도경, 임재혁
그렇다면 흥미로운 브랜드 스토리를 개발한 사례가 있나?
테이크아웃은 유닉스의 미니 고데기 브랜드로, USB 형태의 전원 케이블을 사용해 집 밖에서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대의 제품이다. 소형화한 제품 특성상 일반 고데기에 비해 퍼포먼스가 약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이용해 ‘예뻐지기 위해 쓰는 제품’이 아닌 ‘자기 관리를 위한 제품’이라는 새로운 맥락을 만들었다. 자신감 넘치는 쿨한 느낌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주고자 한 것이다.
이전 버전에 비해 제품의 컬러와 형태가 심플해졌다.
형태와 컬러, 마케팅 전략은 제품 콘셉트가 명확해지면 맥락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지하철 역사 화장실이나 교실 뒤쪽 거울 앞에서 헤어스타일을 꾸미는 데 사용하는 미용 도구가 아니라 스무 살 대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강의실에 다다랐을 때 잠시 머리를 정돈하는 자기 관리 제품이라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새로운 브랜드 페르소나에 맞추고자 했다. 이에 따라 독특하지만 직관적이고 단순한 형태와 러닝화 끈을 연상시키는 스트랩 디테일, 제품별 컬러 등이 결정됐다. 5종의 제품 패키지에는 ‘너만의 것을 찾아봐’,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어’, ‘언제나 당당하게’, ‘우리만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너의 가능성을 열어둬’와 같은 문구가 인쇄되었는데 새로 정립한 콘셉트에 맞춰 유닉스 마케팅 팀과 함께 고안한 것이다. 처음에는 제품 디자인에서 출발했지만 새로운 브랜드 당위성을 만들어내면서 패키지와 마케팅 전략까지 프로젝트 범위를 확장시킨 케이스였다.
아모레퍼시픽의 메이크온 페이셜 부스팅 스파 온스팀, 캡슐 미스트, 쿨 미스트가 나오면서 피부에 전용 제품을 함유한 수분을 공급하는 기기다. 디자인 김지윤, 임재혁
차홍 볼륨 컬러Curler는 같은 고데기 제품군인데도 무드 앤 톤이 확연히 다르다.
테이크아웃이 자기 관리 도구라는 콘셉트로 접근했다면 차홍 프로젝트는 진정으로 아름다워지기 위한 도구의 관점으로 풀어냈다. 차홍이 헤어숍에서 시작한 브랜드인 만큼 뷰티 전문가들의 관점으로 만든 디바이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소재 선정이나 피니싱 완성도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ESG를 중시하는 차홍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식물성 생분해 비닐, 본드 접착을 없앤 골지 박스를 패키지에 활용하는 등 고객 경험 곳곳에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피부 케어를 위한 뷰티 디바이스 디자인도 맡았다.
아모레퍼시픽에서 전개하는 뷰티 디바이스 전문 브랜드 메이크온과 협업해 ‘페이셜 부스팅 스파’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뷰티 디바이스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도록 서랍 등에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늘 손에 닿는 곳에 둘 수 있는 형태로 제품을 디자인하고자 했다. ‘기술과 감성의 조화’라는 메이크온의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수증기의 조사 각도, 직관적인 UI, 화장대 위에서 제품이 차지하는 부피 등 기능적 측면을 고려하는 동시에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이도록 감성적이면서도 절제된 조형 문법을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에어 쿠션 4세대 용기뿐만 아니라 패키지 박스에도 투톤 개념을 계승했다. 디자인 김지윤, 이한나
LG생활건강 프레시안의 에그라이크 파운데이션 비건 메이크업 브랜드다운 CMF와 형태를 용기에 적용했다. 디자인 김지윤, 이도경, 윤수정
CMF 측면을 고려한 디자인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아이오페 에어 쿠션은 2008년 주차 스탬프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쿠션 타입 파운데이션으로 아모레퍼시픽 전체 브랜드 중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에어 쿠션 4세대 디자인 리뉴얼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기능성과 혁신성을 대변하는 아이오페 브랜드를 드러내기 위해 기하학적으로 빈틈없이 완벽한 쿠션을 디자인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용기의 어퍼(뚜껑)와 로우(본체) 부분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면서 양쪽을 연결하는 부위에 파인 홈이 심플하게 보이도록 간격을 맞추고, 안쪽 거울의 접합부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등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또 용기 전면에서 보이는 아이오페 로고를 프린팅 방식이 아닌 음각으로 처리하고 투톤 스프레이 마감을 했다. 제품의 곱고 균일한 입자에서 비롯된 가벼운 제형을 강조하기 위해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한편 LG생활건강의 비건 메이크업 브랜드 프레시안의 에그라이크 파운데이션은 매끈한 피부와 깐 달걀이라는 메타포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구형의 캡 디자인과 달걀을 연상시키는 CMF를 적용했다.
요즘 뷰티 디자인의 트렌드를 꼽아보자면?
단순히 화장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코스메틱 산업을 하나의 문화로 보고 접근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브랜드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 자체를 상품으로 보는 관점으로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눈에 띄는 특이한 조형과 화려한 장식보다는 브랜드를 관통하는 맥락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추세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융합하며 차별화된 방향을 모색하는 여러 브랜드들의 행보를 흥미롭게 주시하고 있다.
혹시 직접 뷰티 브랜드를 출시할 계획이 있는지?
고민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웃음) 디자인과 제조는 전혀 다른 문제다. 엔드 유저인 소비자를 바로 만나는 일에 대한 사업적인 부담이 있다. 아직은 우리가 하고 싶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튜디오의 색을 디자인을 통해 드러내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당장은 브랜드를 론칭하기보다는 가구나 제품 디자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간 디자인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쪽에 더 관심이 있다.
- 오브젝트를 위한 당위성 찾기 김지윤스튜디오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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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스튜디오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성격의 산업 디자인 전문 회사다. BAT, 아메리칸스탠다드, LG전자, 아모레퍼시픽 등 여러 기업과 협업하며 다양한 디자인 영역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결을 묻자 김지윤 대표는 제품의 카테고리를 구분하기보다 넓은 의미에서 오브젝트를 디자인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에게 디자인이란 브랜드를 바탕으로 각 대상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맥락적 당위성을 찾아내는 집요한 과정이다.Share +바이라인 : 글 서민경 기자 인물 사진 윤선웅(에스플러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