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Design News
디자인이라는 창으로 브랜드와 호흡하기 푸른이미지 윤정일
이름은 기질과 성향을 품고 있다고 했던가. 윤정일 대표가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 ‘푸른이미지’의 시작도 그랬다. 하늘과 들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맑고 푸른 정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자는 디자인 철학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전문가다운 통찰력과 다년간의 트렌드 분석을 통해 쌓은 데이터를 클라이언트에게 제시해왔다. 브랜드 DNA를 완벽히 이해하고 통합해 견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주고 비주얼 컨설팅까지 진행하고 있다. 기교보다 진정성 있는 태도로 브랜드의 본질을 꿰뚫는 푸른이미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대의 추이를 살피는 혜안으로 일찍이 브랜딩 회사를 일군 전술가.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 시각정보디자인학과(구 생활미술과) 동문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푸른이미지를 설립했다. 제품, 브랜드, 공간 등 다양한 영역의 프로젝트를 맡으며 30여 년간 브랜드 DNA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분석해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고 있다. 푸른이미지는 CJ, 롯데, 아모레퍼시픽 등 유수의 기업들이 꾸준히 찾는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브랜딩업계의 거목과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purunimage.co.kr

슬밋 거침새 없이 길고 곧은 모양새를 뜻하는 순우리말 ‘슬밋하다’에서 이름을 따온 ‘슬밋’은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내면을 지닌 한국 여성, 나아가 한국 문화를 표현하고자 하는 브랜드다. 프로젝트 리더 윤정일 브랜딩, 브랜드 아이덴티티 및 패키지 디자인 최지이, 박지혜, 김민희, 오연희, 육세은, 정종민, 이지원, 강민숙
푸른이미지의 시작이 궁금하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한 지 30년이 되어간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 진출에 여러모로 제약이 많던 시기였다. 회사를 다닐 경우 자의든 타의든 잠시 일을 그만두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지 않나. 좋아하는 디자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기업이 시각적 상징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감각의 기업 이미지까지 창출하는 작업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브랜딩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지 않던 시절에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준 대학 은사이자 선배였던 이영희 교수의 응원이 컸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과 비주얼 컨설팅뿐만 아니라 일러스트 작업도 내부에서 직접 진행한다. 푸른이미지의 강점을 꼽자면?
오랜 기간 브랜드 리뉴얼 및 업데이트 관리가 필요한 브랜드를 위해 일관적인 디자인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컨설팅하고 있다. 일러스트나 패턴 작업 등을 내부에서 소화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스페셜 에디션이나 시즌 리미티드 에디션 등 다양한 제품 특성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게 우리만의 강점이다. 불필요한 의사 소통을 줄이고 명확한 콘셉트에 입각해 클라이언트와 합을 맞춰오고 있다.

오랜 시간 디자인 분야에 몸담고 일해오며 업계 동향과 최근 변화의 흐름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다면?
예전에는 디자인 의뢰가 개별적으로 들어오다 보니 각개전투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브랜딩보다는 네이밍, 로고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공간 디자인, 광고 디자인 등 한 가지만 짚어 요청하는 클라이언트가 많았다는 뜻이다.

이 경우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더라도, 프로젝트의 주체가 되는 사람의 역할이 흔들리면 완성도 있는 브랜딩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은 여러 디자인 요소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브랜딩’이란 개념이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서고 있는 듯하다. 이에 따라 큰 기업부터 개인 사업자까지 프로젝트 전체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훌륭한 브랜딩을 하는 조직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자극도 받는다. 긍정적인 경쟁 구도라고 생각한다.





슬밋 한국의 프리미엄 원료를 바탕으로 피부뿐만 아니라 피부의 결, 향, 색, 라이프스타일까지 관리하는 종합 뷰티를 지향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나타냈다. 한국 문화의 가치와 브랜드 출시를 목표로 브랜드 콘셉트부터 브랜드 아이덴티티, 제품, 비주얼 브랜딩을 진행하며 새로운 문화 플랫폼을 만들고자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결국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주는 게 브랜딩이 아닐까? 중요한 점은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타깃의 ‘Human Value’와 ‘Economical Value’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업과 브랜드의 디자인을 해오면서 푸른이미지의 정체성이 선명한 디자인을 시도해보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다. 디렉팅을 넘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할 때는 좀 더 주관을 반영한 심미적 가치에 방점을 두고 작업한다.

설화수부터 한율, 료 등 유독 한국적 정서가 담긴 뷰티 브랜드들과 작업을 많이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딩 작업은 무엇인가?
‘슬밋’이라는 뷰티 브랜드와의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다. ‘거침새 없이 길고 곧은 모양’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에서 착안한 브랜드명이 더욱 마음을 끌었다. 격조 높은 한국의 브랜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국문 로고 디자인은 한글 창제 20년 뒤 간행된 〈원각경언해〉를 기조로 작업했다. 이는 오늘날의 감각에도 부합되는 동시대성을 가지며 한글의 조형성과 심미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슬밋의 에피소드는 소나무에서 시작한다. 소나무는 척박한 사계절의 환경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스스로 균형미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문화적 상징과도 같다. 그런 면에서 브랜드가 지향하는 강인하고 섬세한 내면을 지닌 한국 여성의 아우라와 맞닿아 있다.



순플러스Soon Plus 순플러스 아이덴티티 구축과 비주얼 브랜딩 프로젝트. 프로바이오틱스와 pH 5.5가 만나 시너지를 만드는 그래픽 모티브로 브랜드의 특성을 전달하고, 심플한 라인으로 구성된 워드마크로 저자극 스킨케어 브랜드명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이미지를 제품에서도 느껴질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프로젝트 리더 윤정일 브랜드 아이덴티티, 패키지 디자인 이은정, 홍윤지, 김민희, 강민숙, 박지혜, 이지원, 최경하
뷰티 디자인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현재 산업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한때 제약, 패션, 주얼리, 엔터테인먼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피부과, 성형외과 등 여러 업종으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뷰티 제품의 브랜딩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각 산업군에 속한 분야의 특성에 맞게 브랜딩하기 위해 국내외 트렌드를 분석하고 경쟁사 조사 등을 하면서 해당 업종에 대한 간접적인 지식을 많이 쌓게 됐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마케팅, 유통과 같은 뷰티 시장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였다. 개인적으로 뷰티 제품의 브랜딩이야말로 디자인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심미적 만족감을 가득 채워주는 게 뷰티 디자인의 가장 큰 매력이다.

팬데믹 전후로 브랜딩업계에 생긴 변화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변화가 뷰티 디자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그동안 K-뷰티는 대기업 경쟁 구도 아래 중국으로의 대량 수출이 공식과도 같았다. 최근 얼어붙은 중국 시장 때문에 매출에 고심이 깊은 기업과 브랜드가 많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수출처와 세계 시장을 모색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정 국가의 시장을 겨냥한 대형 브랜드보다 글로벌 자본력을 갖추고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중소형 브랜드가 인기를 얻고 있다. 뚜렷한 정체성을 보유한 한국 브랜드의 저변이 상당히 넓어지고 있다.

다만 국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사한 콘셉트가 많아지고 있는데 차별화가 안 되는 디자인 콘셉트는 오히려 한국 뷰티 시장의 가능성을 좀먹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브랜딩을 다루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신념 있는 태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찬찬히 내실을 다져나가야 한다.



설화수 궁중 비누 한국의 신비로운 사계에서 영감을 받은 아름다운 향과 귀한 한방 원료를 담은 설화수 궁중 비누 컬렉션. 향을 대표하는 재료를 도트 패턴의 금박으로 표현했다. 프로젝트 리더 윤정일 패키지 디자인 및 일러스트 김은정


설화수 2016 실란 컬렉션 한국 전통 예술의 가치를 전하는 실란 컬렉션은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자개 공예를 재해석했다. 진주패에 수공예적 감성을 더해 비단 실타래 위에서 만개한 매화를 자개로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우아한 매화 꽃잎 모티브 위에 섬세한 금박, 홀로그램박 라인 그래픽으로 아름답고 영롱하게 표현했다. 프로젝트 리더 윤정일 패키지 디자인, 일러스트 김은정, 민효기
지금까지 브랜딩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렇다면 푸른이미지는 스스로 어떻게 브랜딩했다고 생각하나?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인간적인 것이고,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디자인 철학으로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을 전개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하루는 프로젝트를 함께 완수했던 클라이언트에게 “옷장의 수많은 옷 가운데 가장 자주 찾게 되는 옷 같다”라는 피드백을 들은 적이 있다. 격식을 차리는 자리든 캐주얼한 자리든 어디를 가도 환경과 잘 어우러지는 게 푸른이미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너무 색채가 짙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성격을 띠는 브랜딩 회사가 흔치 않다는 말을 듣고 확신을 얻게 됐다. 지금까지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푸른이미지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계 속 한국의 디자이너로서 아시아, 한국, 서울, 강남에 위치한 조그마한 점과 같은 존재이더라도 글로벌한 사고 체계를 가지고 조직을 운영해나가고 싶다. 한국 제품을 사용하는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와 정서를 느낄 수 있게끔 말이다. 자국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세계가 한국 디자인을 좋아하게끔 만들고 싶다. 우리에게 작은 일이란 없다. 그것이 모여 큰일을 이루니까.

Share +
바이라인 : 글 김세음 기자 인물 사진 윤선웅(에스플러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